살며 생각하며 (68) 썸네일형 리스트형 '코로나 19'로 인한 장기휴교 겨울방학이 끝난지 두달이 더 지났는 데도 아직 개학을 못하고 있다. 두달이 넘는 장기휴교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3과 고3에 한해 4월 9일에 개학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학교에는 등교하지 않고 SNS를 이용해서 수업을 하는 온라인 개학이다. 16일부터 초중고 전학년(초등 저학년 제외)이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학교에 등교할지 아직 미정이다. 2월부터 대유행을 시작한 '코로나 19'가 감염자수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언제 끝날지를 모르고 지리한 사회적 격리가 계속되고 있다. 대학도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아예 한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다는 학교들도 나왔다.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도 클 것이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혈기왕성한 나이에 활동공간이 제약되는 데..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동물을 사육해 보면 형제들끼리 장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아지라면 서로 엉켜 싸우는 동작을 하기도 하고 무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돼지 새끼들도 떼로 몰려 다니며 논다. TV에 나오는 동물의 새끼들도 형제들끼리 놀이를 한다. 놀이는 모든 동물들의 성장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란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형제들끼리 놀고, 또래와 함께 논다. 그런데 노는 것이 단순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동물들은 놀이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동작을 익힌다고 한다. 서로 뒹굴면서 물거나 할퀴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공격과 방어의 동작을 흉내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생존에 필요한 동작을 익히는 것이라고 한다. 유아들도 흉내와 놀이를 통해 .. 돌깨(50년전 '69년에 쓴 글) 돌깨 먼저 돌깨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참깨와 들깨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돌깨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당양서다. 나처럼 두메출신이 아니면 돌깨라는 말이 귀에 익숙할 리가 없다. 돌깨란 말이 내가 가진 사전에는 실.. 호떡의 추억 호떡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설탕을 넣어 구운 뜨거운 떡이다. 흑설탕외에 야채 등 다른 재료로 속을 만들기도 한다. 호떡은 찐빵, 국화빵, 붕어빵 등과 같이 값이 싸서 주머니가 가벼운 어린이, 청소년,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뜨거운 호떡은 별미다. 내가 처음 호떡을 먹어본 것은 고등학교 때다. 밀가루 반죽에 흑설탕을 넣고 갖 구워낸 호떡은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자주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어쩌다 한번 먹을 수 있는 나에게는 고급 음식이었다. 춘천 시청 앞길에서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호떡을 구워서 팔았는 데 맛이 좋왔다. 고교생 시절 처음 맛본 이래 아주.. 가짜(짝퉁)가 판치는 세상(2) 한 세대 전만 해도 물건을 살 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였다.그만큼 가짜 물건들이 넘쳐났다.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애용하던 볼펜이 모나미 153(monami 153)이었다.정품 모나미 볼펜은 볼펜이 다 닳을 때까지 글씨를 쓸 수 있었다.물론 글자의 획이 굴러진다거나 잉크의 찌꺼기가 묻어나오는 경우는 있었지만.그런데 가짜 모나미 볼펜은 조금 사용하면 글씨를 쓸 수 없었다.그러나 가짜 모나미 볼펜은 쉽게 구별을 할 수 있었다. 글자 표기가 mon으로 시작되지 않고 mor 등 상품명의 글자가 달랐기 때문이다.아마 상품명을 똑같이 적었을 때 받을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였을 것이다. 가짜 볼펜은 한 예일 뿐이고 의류, 화장품, 시계, 기계 부품, 약품 등 모든 상품.. 무관심의 강요와 늘어나는 고독 필자가 초중등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50년대 중반 - '60년대 중반)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농촌에 거주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같은 곳에서 살았고, 혈연관계로 얽히다 보니 서로를 잘알았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개인지를 알 정도로 이웃집에 대하여 잘알았고, 주로 마을 아낙들이 이용하는 우물가는 마을의 정보 교환의 場이었다. 마을 사람들 가정의 大小事에 관한 정보는 공유되었고, 결혼식이나 장례는 당사자만의 일이 아닌 마을 공동의 행사였다. 한 가정의 일은 마을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던 시대였다. 친족간에는 더 끈끈한 정이 오갔다. 명절이나 제사때 모일 때 집안 어른들은 조카나 손자 손녀에게 근황을 물었고, 필요시 조언을 해주었고 혼기에 찬 손 아래 사람에게 어른들은 결혼을 독촉하기도 하였다.. 가족이 된 반려견 반려견 인구가 1천만이라고 한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도 개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가구가 꽤많다. 반려견 전성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개는 인간의 동반자로 원시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오랜 벗을 떠나 보내며 효섭군. 자네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 몇년만인지 모르겠군. 아마 45년만일 것 같네. 자네가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우리는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지. 봉투에 군우 00-000로 시작되는 주소로 편지를 보냈지. 어떤 내용의 편지를 주고 받았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인생의 의미와 꿈에 .. 이전 1 2 3 4 5 6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