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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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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쌀 심부름의 추억 1962년 필자는 중학생이 되었다.초등학교 시절 중학교에 가면 선생님도 무섭고 선배들도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래도 중학교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버지께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춘천중학교에 보내주겠다고 하셨다.큰댁이 춘천에 있었으니 춘천에 가면 큰댁에서 기거하며 학교에 다닐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아버지가 사오신 입학원서는 양구중학교의 원서였다.어린 마음에도 실망이 컸다. 잠자리에서 몰래 울었다.동면 지석리에서 양구읍까지는 15km정도는 되는 거리로 버스로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버스를 탈 기회가 별로 없었던 어린 소년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한다는 데 대해 기대를 했다.그러나 버스통학이 고생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정원의 두배는 태운 버스에 짐짝처럼 실려서 이동해야 ..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 초등 3학년 수매의 임기응변 순발력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지석리의 괸돌이라는 마을의 '60년대 초의 이야기다.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초까지 만 3년간 고인돌 마을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셋째 며느리던 어머니는 고부간의 사이가 아주 좋으셨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 늙은 청년들의 군대 입대 고인돌 마을을 양구군 동면 지석리의 한 마을이다. 양구에서 동면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후곡리 약수터 입구를 지나 대암중학교에 못미쳐 오른 편에 산을 끼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초등학교 5학년때 이 마을로 이사를 가서 중학교 2학년 봄까지 살았으니..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 이발사 할아버지와 가족들 요즈음 나이를 먹어 가서인지 최근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일들은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30호 가량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양구군 동면 지석리 고인돌 마을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는 마..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 딱딱이 소리 우리가 어렸을 적에 익숙했던 광경들이 어느때인가 사라져 버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했던 생활용구들이 박물관에를 가야 볼 수 있고 우리가 익숙하게 들었던 소리들이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防犯 딱딱이 소리도 어린 시절 겨울에 익숙하게 들었지만 지금은 사라져 들을..
고인돌 마을의 정초의 모습('60년대 초) 설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날이다. 특히 옛날에는 더 그랬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도 설은 즐거운 날로 기억이 된다. 모처럼 먹거리가 풍성한 날이 설날이다. 하루 세끼를 먹기도 바빴던 시절 비린 것은 거의 먹지를 못했다. 그런데 설날에는 특별한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떡이며 잡채며 네등분한 삶은 계란이며 생선찜 등 평소 먹지 못하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사탕이나 과자 등이 특별 배급되었다. 우리가 반공교육을 받을 때 북한에서는 일년에 돼지고기 세번을 배급받는다고 했는 데 그 시절 농촌의 보통 가정에서는 일년에 네다섯번 정도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그날은 설날과 추석과 마을에서 고사를 지내는 날, 할머니 생신날 정도였다. 또,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새옷을 입을 수 있는 ..
고인돌 마을 사람들 이야기 - 가마타고 시집오는 신부 관혼상제는 우리 조상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인간의 통과의례다. 그중 결혼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의례이다. 지금 관례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성년식이 관례에 해당하지만 일부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상례와 제례는 우리가 조상을 추모하는 경우에는 의미가 있지만 ..
보고 싶은 사람들 - 배씨 아저씨 부부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주었던 이웃, 잊을 수 없는 친구나 스승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보고 싶은 배씨 아저씨 부부는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만날 수 없는 분들이다. 지금 내 기억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