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훈장의 뒤돌아 보기 (67) 썸네일형 리스트형 1990학년도 중학교 1학기 기말고사 성적 일람표 아래는 필자가 1990년 춘천시내 남자 중학교 3학년 2반을 담임했을 때 기말고사 성적 일람표 초안이다. 각 교과별 성적과 총점 평균 학급석차가 표기되어 있다. 재적은 8개 학급 451명이며 필자의 담임반 학생수는 57명이었다. 필자가 춘천에 전입한 1985학년도에는 67명의 학생을 담임하였던 것과 비교하면 5년 사이에 학급당 인원이 10명이나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 성적 일람표의 하단에는 교과의 총점과 평균이 기록되어 있다. 세월호의 총점과 가로줄의 총점의 합계가 맞으면 성적표의 오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성적 처리가 전산화되기 전이라(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필자가 재직하였던 학교에서는 1991년부터 성적처리가 전산화되었다) 그러나 숫자의 계산은 틀림이 없더라도 채점이나 이기를 할 때 오류가..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회고(回顧)와 단상(斷想) 국수본 본부장으로 내정되었던 고위 검찰 출신 정모 변호사가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재학당시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하는 사태가 있었다. 낙마할 시점이 공교롭게도 학교 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리에 방영되어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점이었다. 검찰 출신의 연이은 고위직 등용으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데 또 검찰 출신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국수본 본부장에 임용되는 것을 국민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려던 후보자의 아들이 고교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고, 아버지의 막강한 권력으로 이를 무마했다는 데 대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이 부족했고 소송을 통해 가해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고 노력했던 사실이 알려졌고, 피해자가 극단.. 교사 초임 발령을 받고 모교로 부임하다 1973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싶었으나 군입대가 9월로 예정되어 있어 병역필을 기본자격으로 하는 기업의 공채에 응시할 수가 없었다. 교직과정을 이수하였으나 농업계 자격증이라 교사채용을 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고 군입대를 할 때까지 허송을 할 수도 없었고. 고육책(苦肉策)으로 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군입대 전까지 할 일이 있고 제대를 하고도 돌아올 자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생 생활은 눈코 뜰 쌔없이 바빴다. 실험준비와 정리, 학부생 과제물 처리, 실험 보조 등... 정신없이 한 학기가 지나고 군에 입대하였다. 그러나 건강에 이상이 있어 귀향조치를 당하고 실의에 빠졌다. 다음 해에 다시 신검을 해서 입대 여부가 결정되는 데 병역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병역미필이니 취업에 제한을 .. 홍수로 학생들의 조기 귀가를 인솔하다 어제 오늘 서울 강남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역, 도로 등의 침수로 교통 대란이 일어나고 하수도 역류와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여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인명 피해까지 보도되고 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 등하교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번 물난리를 보면서 필자가 횡성 갑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인해 겪은 일들이 떠오른다. ////////////////////////////////////////////////////////////////////////////////// 필자가 근무했던 횡성 갑천은 남한강 상류인 계천이 흐르는 곳이다. 개울은 맑고 깨끗하며 수량도 풍부하고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어족도 풍부한 하.. 40년만에 제자에게 한 사과 교직을 떠난지가 11년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둑의 복기처럼 지난 시절의 삶의 과정을 돌아보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원상으로 돌이킬 수 없다. 돌아보면 잘한 선택을 하고 좋은 결과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쉽고 후회되는 일들도 많다. 교직생활을 할 때 교사가 해야 할 가장 큰 임무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의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수업목표에 다수의 학생들이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임시절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학습에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자극을 주면 학습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여 성적이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수업 중 어느 여학생이 건넨 쪽지 1974년에 중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37년간 재직하다가 2011년에 퇴직하였다. 근무하는 동안 보람이 있었던 일들도, 안타깝고 아쉬웠던 일들도 후회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작년 1월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책과 문서를 정리하다가 학습 지도안 사이에서 재미있는 쪽지를 한장 발견하였다. 아래의 쪽지는 1983-1984년 탄광지역인 지금은 카지노가 있는 정선 고한지역의 고한여중에 근무할 때의 쪽지다. 수업 중이었는 데 한 학생이 화장실에 다녀오게 해달라고 건넨 쪽지다.. 대변을 참을 수 없는 데 직접 말하자니 주목의 대상이 되어 망설여져고 고심을 하던 차에 필자가 필기를 하는 학생들을 돌아보다가 가까이 오니 쪽지를 써서 나에게 건넸을 것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의 그 여학생.. 내가 겪은 수학여행 사고 학창시절의 추억 중 가장 설레이는 것을 꼽는다면 다수는 수학여행을 말할 것이다.수학여행은 학교와 가정을 떠나 낯선 곳을 다니며 평소에 체험하지 못했던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을 설레이게 하는 행사였다.여행이 일상이 되고 외국에 다녀오는 것이 한 세대 전 시골에서 서울을 다녀오는 것보다 더 용이해진 현재와는 달리 '90년대 이전만 해도 집안 행사에 참여한다거나 친척 집에 다녀온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면 집을 떠나 멀리 갈 곳이 없는 아이들에게 수학여행은 분명 설레이는 일이었을 것이다.중3 때인 1964년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갔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비를 낼 수가 없었고 고등학교때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중고교 재학시절 수학여행을 한번도 가지 못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 1987년 6월 2021년 6월 29일, 오늘 방송과 인터넷 뉴스는 온통 대선 출마선언 후보 관련 소식을 전하기에 하루 종일 분주하였다. 1987년 6월 29일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단합된 행동에 집권당 대표자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0선언을 이끌어 낸 역사적인 날임을 알리는 주류 언론의 보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1987년 6월은 나에게 어떤 기억을 남겨주었을까? 한 세대도 더 지난 34년전의 기억을 끄집어 내보고자 한다. 1987년 필자는 춘천여자중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다. 1987년 새해 벽두부터 정국은 요동쳤다. 국민들의 직선제 개헌을 통한 민주화 요구에 전두환 정권은 4월 13일 현행 헌법을 고수하고 선거인단에 의한 체육관 선거를 치러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전두환의 고뇌에 ..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