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서울 강남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하철 역, 도로 등의 침수로 교통 대란이 일어나고
하수도 역류와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여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있고 인명 피해까지 보도되고 있다.
방학 중이라 학생들 등하교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번 물난리를 보면서 필자가 횡성 갑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인해 겪은 일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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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했던 횡성 갑천은 남한강 상류인 계천이 흐르는 곳이다.
개울은 맑고 깨끗하며 수량도 풍부하고 물 반 고기 반일 정도로 어족도 풍부한 하천이다.
그러나 홍수가 나면 흙탕물이 넓은 개울 바닥을 모두 덮으며 격류가 흐르는 범람 하천이 된다.
이곳에 중학교가 개교된 것은 1951년, 고등학교는 1966년이었다.
중고교가 병설되어 있었고 농촌지역 소규모 학교라 교사들도 중고교 수업을 모두 담당하였다.
학교는 면소재지 시가지가 있는 곳이 아닌 개울 건너에 있었다.
처음 학교가 개교되었을 때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없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예전에 개울을 건널 때 그러했듯이 징검다리나 섶다리를 건너 등교하였을 것이다.
문제는 비가 많이 내려 개울을 건널 수 없을 때다.
개교 초창기에 교사로 근무했던 지역이 고향인 교감 선생님이 전설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개울에 수표교처럼 수위를 측정하는 나무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비가 내리면 당번 학생이 나가서 지켜 보다가 수위가 표시선 이상으로 높아지면 학교에 알려 비상 종을 치고 학생들을 귀가시켰다고 한다.
등교할 때는 당직 교사가 개울에 나가 나무 기둥을 보고 수위가 표시선 아래로 내려갔으면 푸른 색 깃발을 내걸고 이를 보고 학생들은 개울을 건너 등교를 했다고 한다.
수위가 표시선보다 높으면 붉은 색 깃발을 내걸고 이 깃발이 걸리면 등교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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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갑천고교에 부임한 것은 1978년이었다.
이 때는 물론 차량이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놓여 더 이상 위와 같은 낭만은 전설로 전해질 뿐이었다.
부임하고 3년 후쯤인 1981년경 방학을 얼마 앞둔 7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집중호우가 횡성 지방에 내렸다.
지금은 횡성댐으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인 계천은 범람하여 흙탕물이 도도하게 흘렀다.
학교는 면소재지인 매일리에 있었고, 하천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따라 횡성 쪽으로 가면 지금은 횡성댐에 침수되어 사라진 마을인 구방리 화전리 중금리 부동리 포동리 등의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는 화성국민학교가 있었고 갑천국민학교, 명신 국민학교, 금성국민학교(당시 명칭) 등이 학구내 초등학교였다.
학교에서 위의 마을까지는 개울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서 갈 수가 있었다.
개울에 가까이 난 도로가 침수가 될 수 있고, 다리를 건너야 마을로 갈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해당 마을의 이장들에게서 학생들을 빨리 하교시켜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 상판 가까이까지 물이 차올랐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귀가시키기로 했다.
애들만 귀가시킬 수는 없었다.
젊은 남자 교사들이 인솔하여 귀가 시키기로 했다.
당시 30대 초반인 필자도 함께 학생들을 인솔하였다.
학생들은 질서있게 대열을 지어 교사들의 인솔을 받으며 십리 가까운 길을 걸어 갔다.
개울에 가까운 도로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산으로 우회를 해야 했다.
풀이나 나무를 헤치고 산으로 오르내리며 다시 도로로 진입해야 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길을 걷고 우회하기도 하며 마을이 있는 곳까지 갔다.
학부모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넘실거리는 흙탕물이 교량 상판에 닿을 듯 흐르고 있었다.
마을별로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고 가고, 개울 건너 애들이 모두 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을 확인하고
인솔했던 교사들은 학교로 돌아왔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출발을 했지만 비를 맞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다.
교장 선생님과 학교에 잔류했던 선생님들이 수고했다고 치하를 했다.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제자들과 함께 걸어 무사히 마을까지 데려다 주었다는 데 대해 뿌듯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벌써 40년도 더된 오래 전의 추억이 되었다.
어제 오늘 집중호우를 경험하며 40년전의 일이 생각났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비를 맞으며 제자들의 안전 귀가를 인솔했던 일은 지금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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