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54) 썸네일형 리스트형 있지만 없는 것들(우리 시대의 아이러니) 아래는 시사 iN986호(2026.8)에사 가져온 "있지만 없는 것들"이라는 연작시인데 공감이 가서 옮겨 왔습니다.////////////////////////////////////// 있지만 없는 것들 집은 있지만 가족은 없고 가족은 있어도 가정은 많지 않나. 내가 미워하는 나는 많지만 내가 사랑사는 나는 많지 않다. 교실은 있지만 교육다운 교육이 없고학교는 있지만 삶을 위한 학습이 없다. 심장은 쉬지 않고 뛰고 있지만가슴이 설레는 순간은 많지 않고 뇌 영양제를 복용하지만 지혜가 늘어나지는 않으며 달려가기는 하는 데 가속도까지 붙는데어디로 왜 달려야 하는지 모른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든 데 사랑은 하지 않고 원수만 생각한다 감정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은 거의 없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농사일기(2016.8.10-16) 2016년은 10년 전의 일이다.아래는 10년 전인 2016년 8월 여름농사에 대한 기록이다.금년 봅 무릎 관절 수술로 어쩔 수 없이 농사에서 은퇴(?)를 하게 되았다.37년간 교사로 근무하고 퇴직하며 제 2의 직업으로 농사를 택하였다.농업 경영체로 등록을 하고 학곡리와 수동리 두곳에서 15냔간 전업농(?)으로 가성비 낮은 농사를 했다.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고 농약을 최소한 사용하며 나를 친환경 농업을 하느라 노력을 했다고 자부한다.그동언 쌀, 보리 등 주곡 작물을 제외하고 고추 무 배추 등 채소류는 대부분 자급을 하고 일부는 자식들과 일부는 형제들과 나누기도 하였다.농사는 이제 추억 속에 남게 되었다.농사를 지을 때 농사 일기를 썼다. 이것을 통해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추억을 되살려 보려 한다. 8월 .. 어느 잡지인이 본 1920년대 평양 기독교인의 모습 1920년대는 일제의 통치방법이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표면적인 변화를 보인 시대로 제한된 수의 언론기관(조선 동아일보의 창간 등)의 허가와 개벽 등 잡지의 발행 등을 허가하였다.또 하나뿐이지만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었고 제한된 수의 중등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초등학교도 증설하는 등 교육기회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여주어 일제의 통치방법이 강압일변도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개벽이라는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잡지가 1920년에 창간되어(1926년 폐간) 비교적 장기간 발생되었는 데 차상찬은 이때 개벽사에서 기자로 일을 한 분이다.차상찬(1888-1946)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잡지사 개벽을 비롯해 별건곤, 신여성, 어린이, 학생, 혜성 등 잡지의 기자로 활동했다. 개벽을 제외한 잡지는 단기간 발행후 폐간.. 을축년(1925년) 대홍수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서 을축년 가락(1925년 대홍수)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어른들은 "을축년 가락 때는 물이 어디어디까지 찼었다. 도로를 너머 어디까지 물이 찼었다" 등의 말씀을 하셨다.1925년의 대홍수에 대한 기억은 그때를 경험한 분들에게 깊이 각인이 되었었고 다음 세대에게 전설처럼 전해졌다. 당시의 자료를 조사하여 보면 1925년 대홍수는 한해에 네번이나 홍수가 있었고 전국 규모의 홍수였다고 한다.문학가인 수주 변영로 선생은 을축년 대홍수를 노아의 홍수와 같다고 표현하였다.언론은 60년만의 대홍수라고 했다.1925년 봄에는 무척 가물었다고 한다. 모내기를 못한 논이 많아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선 총독부는 만주에서 조를 수입해다가 대체작물로 파종하도록 했다고 한다.가뭄 끝에 단비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사람 잡아 먹는다는 귀신 소동 먾운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일을 사실이라고 믿을 때가 있다.1983년 7월 경에 중국에서 건너온 귀신 두마리가 사람을 잡아먹으며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설이 유포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무시해 버렸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공포를 느꼈다. 1983년 여름 나는 탄광지대인 정선군 고한여중에서 근무하고 있었다.여름방학을 앞둔 7월 어느날이었다. 수업시간에 어느 학생이 중국에서 건너온 귀신 두마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했다.내가 있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하자 다른 학생이 중국 귀신이 태백에서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했다. 이 괴소문은 전교생에게 쫙 퍼진 것 같았다.중국 귀신이 다음 날에는 함백산을 넘어.. 한일합병 임시 은사금 사용내역(강원도) 아래는 일제 강점기의 강원도 관련 자료입니다.일제는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홍보를 합니다.얼마나 조선의 문명 개화를 위해, 산업발전과 복리증진을 위해 노력했는가를 알리려 했습니다.홍보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 각종 통계자료를 발표했습니다.뉴라이트들은 이런 자료를 인용하여 일제가 조선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려왔습니다.그리고 각종 자료와 통계를 근거로 발표했다고 주장합니다.그런데 통계나 문헌자료들이 일제가 자신들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자료니 그들의 시각으로 작성된 자료입니다.이것을 비판적인 분석없이 그대로 그들의 시각에 따라 인용할 때 식민통치와 수탈을 위한 교육과 건설은 일제의 치적이 되고 이에 저항한 것은 선의를 무시한 시대에 역행한 것이 되고 맙니다.아래는 이들 자료의 일부입니다... 깡통 찬 거지, 승용차 탄 거지, 비행기 탄 거지. 60년대 초반 중학교 시절 어느 분이 학교에 와서 특강을 했다.60년도 더 전의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강사가 누구였는지, 어떤 내용의 강의를 했는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다만 우리나라에는 거지가 세 종류가 있는 데 깡통 찬 거지, 승용차 탄 거지, 비행기 탄 거지가 있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거지가 많았다.거지는 남루한 옷을 입고 깡통이나 자루를 가지고 마을 이집 저집을 다니며 밥이나 음식, 쌀, 소액의 돈을 동냥하였다. 춘천에서 양구 읍으로 들어가려면 송청리 다리를 건너야 했는 데 겨울철 다리 밑에는 상판과 교각에 의지해 짚을 엮어 만은 움막 집을 지은 거지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다. 교량의 상판이 눈과 비를 가려주고, 교각은 한 쪽 벽이 되어 주니 움막을 짓기에는 좋은 .. 전쟁터에서 생사를 가른 기가 막힌 우연 전쟁이나 재난의 와중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1950년 6.25 한국전쟁은 엄청난 민족적 재난으로 남북한의 민간인들과 참전 군인들(국군, 북한군, 중공군, 유엔군)이 희생되었다.확률에 의해서 우연에 의해서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생사가 엇갈렸다.이곳에 쓰는 글은 내가 직접 전해 들었거나 관련 내용이 수록된 책에 근거한 것이다.6.25 한국 전쟁은 전국 규모의 전쟁으로 38선에서 시작되어 낙동강 남쪽 일부만을 제외한 남한 지역 전체. 중국과 인접한 압록강 지역, 청진 이북의 함경북도 지역을 제외한 북한 전역이 전장이 되었다.전국 각지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당시를 살아가던 국민 대부분이 고통을 겪었다.희생자는 전투에 참전한 군인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남북의 이념전쟁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학살되고.. 이전 1 2 3 4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