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39) 썸네일형 리스트형 60년 전(1965년)의 일기(1) 60년 전인 1965년은 필자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다.아래의 일기는 1965년 2월로 고등학교 입시를 치르고 중학교 졸업식을 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시기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입학을 기다리는 소년의 심정이 기록되어 있다.입학금을 이웃집에서 빌려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적 환경과 또래의 일상이 기술되어 있다.처음에는 매일같이 충실하게 일기를 썼으나 나중에는 용두사미 격이 되어 기록이 누락된 날이 있고 형식적으로 기록되는 등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원문에 충실하고자 했으나 한자나 표기법이 틀린 것은 바로잡았다.당시 거주하던 곳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창리./////////////////////////////////////////////////// 1965년 2월 15일(월)오늘 일기장을 구입했..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 주장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논쟁이 불붙어 있습니다.윤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미국에 대해서는 사대적 의존을, 일본에 대해서는 친밀감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외교에 있어서 상대국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나타나 보입니다.대통령의 일본인식에 대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뉴라이트 사관이라고 합니다.평가자에 따라 일본을 보는 뉴라이트 사관에 대해 스펙트럼이 다르겠지만 상식적인 견해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일제의 식민통치가 우리나라에 다소의 고통을 주었지만 미개한 나라를 개화시키고 근대화 시키고 근대국가로 발전시키는 순기능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조선왕조를 아주 부정적으로 봅니다. .. 술취한 채 등교하는 학생 지난 '60년대 - 70년대에 우리나라는 가난하였다.농업이 가장 주된 산업이고 시대에 따라 농민의 비율은 감소하였지만 '70년대 초만 하여도 절반 이상이 농민이었다.농업이 주업이었지만 먹을 것이 늘 부족하였다. 쌀을 비롯한 식량 생산은 항상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고 부족분은 수입을 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오는 원조에 의지해야 했다.미국은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는 우리에게 식량원조를 해 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식량원조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의중에 맞게 조종하는 수단이기도 했다.흉년이 들고 미국에서 원조가 순조롭지 않으면 식량부족이 심화되었다.신문에는 절량농가니 춘궁기니 하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굶주린 사람들의 참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오죽하면 삼대 거지라는 말이 돌기도 하였다. '깡통 찬 거지, 승용차 탄 거.. 강냉이 죽과 수입 쇠고기 아래의 글은 저의 블로그 친구 비오님의 글입니다.동 시대를 살았던 분이라 저의 경험과 같은 경험을 하였고 내용이 공감이 가서 모셔왔습니다./////////////////////////////////////////////////////////////////////// 아주 오래전 인터넷신문에 실었던 칼럼 한 꼭지- 강냉이죽과 수입 쇠고기 지난 한 해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인해 온 나라가 일대 홍역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국력을 소비해야 했다. 처음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광우병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점차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본래 외국에서의 촛불시위는 주로 정치나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의 의사 표현 방식으로 활용되며 침묵시위의 형태.. 큰 재난 뒤 예외없이 등장하는 음모론 큰 사고 뒤에는 예외없이 음모론이. 등장한다.나는 사고. 직후. 음모론이. 등장할. 것과 어떤 유형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는데 적중한 것이 북한 배후설과 좌파 연루설이다. 주가. 조작세력. 복귀하지 않은 블랙요원설도. 있다.대형사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것은 북한. 개입설이다. 세월호때도 이태원 참사때도 등장했다앞의 두 큰 사고 모두 보수정권에서. 일어났고. 이로 인해. 정부가 곤욕을 치르니.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북한이 개입한 것이다. 세월호에서는 전교조가 이태원에서는 민노총이. 이용되었다 이번. 제주 항공의 항공기. 사고가 북한이 개입했다고 하는 증거는. 사고순간을 촬영한 것이다.미리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촬영할 수 없는 영상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공.. 김형석 교수 사칭 가짜 칼럼이 온라인을 통해 쫙 퍼지다. 지난 해 성탄절이 지나고 아내가 친구에게 받았다는 김형석 교수님이 썼다는 글을 보여 주었습니다. 글의 내용으로 보나 문체로 볼 때 도저히 김형석 교수님의 글이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사실확인을 하기 위해 검색을 했으나 김형석 교수 사칭글로 보이는 글만 뜰 뿐 이에 대한 반론은 뜨지 않았습니다. 검색을 해나가던 중 저는 비상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고 탄핵 표결을 앞둔 전날 월간 조선과 김형석 교수님이 인터뷰한 기사를 찾았습니다.아마 월간 조선 기사를 근거로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튜브 방송에 올라온 것을 보고, 유튜버가 글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다시 혼돈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사진도 교수님의 음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짜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늘(1월 8일) 오마이 뉴스에서.. 시험을 못치른 학생의 질문에 답한 글 아래는 시험을 못 치른 학생의 질문에 답한 글입니다.------------------------------------------------- "일승일패는 병가상사(一勝一敗는 兵家常事, 한번 이기고 한번 지는 것은 군사상 보통 있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험에 적용하면 시험을 잘보고 못보는 일은 시험에 있어서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시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학창시절 시험은 고통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시험은 그간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고, 학습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확인할 수 있고, 학습방법이 적절했는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답변자인 필자 역시 학교에 다닐 때 수많은 시험을 치렀습니다. .. 졸업 앨범에서 사라지는 얼굴들 졸업 앨범은 학창 시절을 증언해주는 타임캡슐이다.졸업 앨범을 통해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당시의 학교 건물과 시설들, 수업장면과 행사모습 등을 볼 수 있다.아주 가끔은 앨범을 펴놓고 수십년 전으로 돌아가 당시의 내 모습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변화된 현실과 비교해 보기도 하며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졸업 앨범은 당시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료(史料)이기도 하다.필자는 모교의 구십년사 편찬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일제 강점기의 앨범을 통해 당시 선배들의 학창생활 모습은 물론 시대상을 알 수 있었다.수업활동이나 실습 소풍 수학여행 등 학사 활동 중에 찍힌 사진을 통해 당시 학교 교사와 부대 시설, 시가지의 모습이나 명승지의 모습을 알 수 있다.실제로 청평사 소풍 모습을.. 이전 1 2 3 4 ··· 6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