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대 - 70년대에 우리나라는 가난하였다.
농업이 가장 주된 산업이고 시대에 따라 농민의 비율은 감소하였지만 '70년대 초만 하여도 절반 이상이 농민이었다.
농업이 주업이었지만 먹을 것이 늘 부족하였다. 쌀을 비롯한 식량 생산은 항상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고 부족분은 수입을 하거나 미국으로부터 오는 원조에 의지해야 했다.
미국은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리는 우리에게 식량원조를 해 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식량원조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의중에 맞게 조종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흉년이 들고 미국에서 원조가 순조롭지 않으면 식량부족이 심화되었다.
신문에는 절량농가니 춘궁기니 하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굶주린 사람들의 참상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삼대 거지라는 말이 돌기도 하였다. '깡통 찬 거지, 승용차 탄 거지, 비행기 탄 거지' 이렇게 세 종류의 거지가 있다고 하였다.
깡통 찬 거지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구걸을 하는 거지다. 승용차 탄 거지는 기초 지자체 장이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에 절량농가가 많이 나와 식량이 부족하면 중앙정부로 식량배정을 읍소하러 가는 것을 말한다. 비행기 탄 거지는 식량 부족으로 기근이 발생하면 식량원조를 요청하러 장관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가는 것을 말했다.
이 시기 아침을 먹지 못하고 굶은 채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점심 시간에는 밖으로 나가 물로 배를 채웠다.
술지게미라는 것이 있었다. 막걸리를 담그어 발효가 끝나면 액체인 술을 분리하고 남은 찌꺼기를 말하였다.
필자도 술지게미 엿비지 등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 먹을 것이 없어서는 아니고 친구네 집이 술을 거르거나 엿을 고는 날 놀러갔다가 맛을 보았다.
술지게미나 엿비지는 먹을 것이 부족한 가난한 집에서는 대용식량이 되었다. 그런데 술지게미에는 알콜 성분이 남아있어 많이 먹으면 술을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70년대 초 필자가 대학에 재학 중일 때 강원일보에 난 기사가 생각난다.
식량이 부족하여 굶거나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어느 고등학교에 술이 취한 채 등교하는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고 등교하는 줄 알았는 데 담임 교사가 학생이 아침에 술지게미를 먹고 등교하는 사유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지역 신문에 보도되었다.
다른 하나의 사연은 '80년대 초 지역 신문에 보도된 기사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쓴 반성의 글이 보도되었다. 동해안 고성 지역에서 근무를 했는 데 담임을 한 6학년 남학생이 얼굴이 벌건 채로 등교를 했다고 한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겼고. 술취한 채 등교를 했다고 오해를 한 담임 교사는 학생을 심하게 혼내고 나무랐다고 한다. 다음 날부터 학생은 등교를 하지 않았고. 나중에 사유를 안 교사는 학생을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교사는 그 사건이 가슴 속에 큰 부담으로 남았다. 10년이 더 지난 후 그 제자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제자는 집을 나와 서울로 가서 기진 고생을 하며 성장하였고 공무원이 되어 생활을 한다고 했다. 교사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글을 썼다. 아마 처절한 반성을 함으로 그 교사는 10년 이상 그를 누르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리라 생각한다.
'70년대 중반 통일벼라는 맛은 좀 덜하지만 획기적인 생산량을 가진 통일벼가 재배되고 종자개량, 영농방법 개선 등으로 식량 생산이 늘어나고 수출 증대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며 식량사정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물론 아직 식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는 취약계층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들 대부분은 더 이상 식량부족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비만을 걱정하고 비만에서 오는 질병에 관싱믈 가지는 시대가 되었다.
비만을 예방하거나 치유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등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 중장년 층 이하의 세대는 굶주림을 경험하지 않고 성장한 단군 이래 첫 세대가 된 것이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여러 도전들을 잘 극복하여 왔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 직면하고 있디/
우리 다음 세대가 앞선 세대가 그러했듯이 도전에 절 대응하여 지금까지 이룬 번영을 이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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