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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망각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다.

2023년 10월 4일 일기

 

어제 이곳 시골훈장이라는 블로그 게시글에 박영*이라는 제자가 댓글을 올렸다.

그런데 댓글을 올린 제자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답글을 올리려고 제자에 대한 인적 사항을 알아보기 위해 교무수첩을 찾아보았다.

표지만 보고 알 수가 없어 교무수첩을 다 뒤졌다.

그러면서 교무수첩에 기록된 제자들의 이름을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담임을 하지 않고 수업만 들어간 경우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업을 할 때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당연할 수도 있다.

춘여중에서는 한 해에 400명 가까운 인원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으니 모두를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수십년의 세월이 대부분의 제자들을 망각의 세계로 격리한 것이다.

담임을 한 경우는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구서 담임했던 초기 제자들을 제외하고 그후에 담임한 제자들은 상당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특징이 있는 제자들은 기억이 뚜렷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은 자연현상이다.

망각은 동심원의 맨 바깥원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제자들의 경우 수업을 담당하던 당시부터 기억이 되지 않았던 제자들은 말할 것이 없다.

다음에는 단순히 이름만 기억했고 학년도가 바뀌며 전근을 갔거나 수업을 담당하지 않은 경우 기억은 1년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근무 당시 인연의 강도에 따라 약했던 제자부터 망각의 순서를 밟았을 것이다.

세월을 따라 흐르는 망각의 강은 많은 인연들을 강물에 흘려보냈다.

 

위의 제자의 동기들도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러 해 전에는 담임했던 제자들이 거의 기억이 났는 데 이번에 상당수가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놀랐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하루가 지나면 80%를 망각한다고 한다.

또 어떤 글에서 한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인원이 2천명이라고 한다.

38년간 내게 수업을 받은 제자가 6천명 정도가 되니 위의 이론에 따르면 기억용량을 초과한 것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 많은 주위의 인물을 잊어갈 것이다.

기억 속의 인물뿐이 아니라 현재 접촉이 가능한 인물들도 친소 관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인지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이 정도에서 머물 것이다.

 

망각이 어느 수준을 넘어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을 잊어 버리게 되는 것은 치매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인물들이 내 기억 속에서 떠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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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 위의 이야기를 했더니 자연적인 현상이니 그대로 수용하고 살자는 답변들을 했다.

그렇다 우리 또래에게 세월을 역류시킬 능력도 오는 세월을 막을 힘도 없다.

이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편안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게 부여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