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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오늘 아침 아내와 같이 학곡리 밭에 갔다.

아내는 노지에 심은 고추가 쓰러지지 않게 쳐준 줄에 집게를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나는 참깨 포트를 심을 두둑을 만들고 흙을 고르고 멀칭을 하는 작업을 했다.

 

아내와 같이 밭에서 작업을 할 때는 대부분 분업을 한다.

모종 심기나 농작물 수확 고추 줄치기 등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도 대부분 세부 과정을 나누어 작업을 한다.

 

아내가 참깨 포트를 심고 나는 완두 콩을 땄다.

313일에 모종 포트에 씨앗을 넣고 331일에 심은 것을 오늘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파종에서 첫수확까지 90일 정도가 걸렸다.

올해는 완두 콩 작황이 좋와 15m정도 길이의 한 두둑에서 첫 수확으로 4.4kg을 수확했다.

331일에 심은 감자는 꽃이 만발했다가 지고 땅속에서 영글어 가고 있다.

열흘 후 하지 때면 맛을 보게 되고 7월 초면 수확을 하게 된다.

작년 115일과 19일에 심은 양파와 마늘은 당장 수확을 해도 될만큼 성숙했다.

6월이 되면서부터 마늘과 양파를 미리 조금씩 수확해다가 먹고 있다.

내 손으로 가꾸어서 먹는다는 즐거움이란?

 

하우스 안에 심은 옥수수가 며칠 전 개꼬리가 나오더니 토셍이가 생기기 시작한다.

곧 옥수수 수염이 나올 것이다.

옥수수 개꼬리가 나오고 한달 후면 수확이 가능하다니 75일경에는 수확을 하게 될 것이다.

이때가 어머니 추도일인데 동생들과 자식들과 함께 찐 옥수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자가 소비를 하려고 몇포기씩 심은 호박과 오이 토마토도 다음 주면 맛을 보게 될 것 같다.

넝쿨에 달린 호박과 오이가 커가고 있다.

멀리 가을을 바라보는 농작물도 있지만 이미 수확을 마친 농작물도 있고, 지금 수확을 하거나 곧 수확을 앞둔 농작물도 있다.

참깨와 같이 모종심기를 마친 농작물이 있는가 하면 줄콩과 같이 며칠 전에 파종을 한 것도 있고, 흰콩이나 서리태는 다음 주에 파종을 할 것이다.

봄에 새싹이 나면서부터 늦가을 된서리가 내릴 때까지 나의 농장은 심고 거두는 과정이 반복된다.

 

밭에서는 내 손으로 심고 가꾸는 농작물만 먹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밭 주변에서 저절로 자랐거나 이웃에게 얻었거나 다른 곳에서 옮겨다 심은 나물 등이 가꾸지도 않았는 데 저절로 자라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다.

냉이, 돌나물, , 참나물, 명이나물, , 방풍나물, 방가지(왕고들빼기), 머위, 두룹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른 봄 냉이는 식욕을 돋구는 먹거리고 쑥을 넣은 쑥떡이나 쑥개떡은 입을 호사시킨다.

돌나물 김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담가 주시던 별미였다.

이웃 밭과의 경계면 비닐 하우스 사이의 공터에서 자라는 돌나물로 김치를 담그면 별미다.

, 참나물, 명이나물에 삼겹살을 싸서 먹는 별미는 가꾸는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유아기와 유년기에 몸이 약했고 청소년기에도 체력이 약했던 내가 지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농사를 짓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로 시작되는 성인병이 찾아왔지만 관리하며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농사를 지으며 흘리는 땀과, 내 손으로 직접 가꾸어 먹는 건강한 먹거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품었던 희망과 꿈, 신기루를 잡으려고 앞만 보고 달렸던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은 마음 속에 아쉬움으로 남겨 놓고, 높게 잡았던 목표는 현실과 타협하여 낮추고 이미 이루고 잡은 것에 만족하며 살았던 장년기. 인생의 중반기인 장년기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며 가정과 일터 사이를 오가는 소시민의 삶을 살았다.

그러는 동안 자식들은 자랐고, 아내와 나는 나이를 먹어갔고 201137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퇴직하게 되었다.

 

퇴직하고 소득이 적고 가성비가 낮은 전업 농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2015년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인 지공(地空)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해부터 3년간 인터넷 관련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다.

덕분에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 보았고, 업무 실적 평가를 받았고, 사기업의 분위기를 조금은 체험하였다.

그러나 신체 기능의 하향곡선은 피할 수 없는 일로 영농과 회사일을 겸하는 것이 힘들어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다시 전업농이 되었다.

누군가 나이는 단순한 숫자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곳의 밭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힘에 버겁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도 힘든 작업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올해부터는 부득이 농장 한 곳을 다른 분께 맡기고 학곡리 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면적이 절반으로 줄었는 데도 투입되는 작업 시간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일을 세심(細心)하게 하는 원인도 있지만 신체 기능의 저하로 오랜 시간동안 집중을 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어렵고 작업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심고 가꾸고 거두고 나누는 농사 일을 손에서 놓치는 않을 것이다.

내가 짓고 있는 농사에 대한 경제성을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수확한 농산물을 시장 가격에 사먹는다고 가정하고 수확물(일부는 판매한 것 포함)의 가격을 계산하였다.

노동력 투입에 대한 것은 계산하지 않고 농사에 들어간 원가를 계산하였다.

종자와 모종, 밭을 가는 값, 자동차 유류대, 비료 퇴비 농약 등 농자재비를 계산하였다.

수입과 지출의 차액을 투입시간으로 나누었더니 시간 당 3천원이 되지 않았다.

최저 임금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성으로 따진다면 낙제점이다.

만약 농업이 주업이었다면 생계 유지도 곤란한 지경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어리석은 일을 계속할 것이다.

위의 계산에는 들어가지 않는 일을 할 장소와 일어나면 갈 곳이 있다는 것과 일을 하느라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건강이다.

또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제철을 따라 수확해서 먹는 싱싱한 먹거리와 이로 인한 건강 증진이다.

 

 

아침에 밭으로 출근해서 처음 하는 일이 밭을 둘러보는 것이다.

농작물을 꼼꼼히 살펴본다. 잘 자라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괴롭히는 놈은 없는지???

그리고 일을 시작한다.

간섭하거나 지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서두를 일도 없고 억지로 할 필요도 없다.

일을 하다가 힘들면 쉬거나 아니면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꿀잠을 자니 불면증과는 거리가 멀다.

 

소년시절의 야망도 젊은 시절 무엇인가 잡으려고 신기루를 향해 달렸던 일도 목표를 현실화시키고 낮추고 이미 이룬 것에 안주하며 반복되는 생활을 하며 가정에 대한 의무와 직장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살았던 장년기도 지나고 인생 후반기에 들어섰다.

누구도 흐르는 시간을 역류할 수 없고,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다.

인생 후반기를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행복은 많은 것을 성취하고 소유하며 높은 명예를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닌 먹고 마시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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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도서 2:24)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