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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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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성 함께 쓰기에 대한 생각 부모 성 함께 쓰기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러 받았으니 공평한 것 같고 양성 평등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부계의 성을 붙이는 현 제도를 낡은 제도로 보고 가부장제 가족제도를 파괴하자는 의도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 양성 쓰기가 불가능한 것은 앞의 오단..
평범한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와 기억도 역사의 한 장면이다. 우리민족은 기록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미 삼국시대인 고구려와 백제에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 신라도 역사서가 있었을 것이다. 진위 논쟁이 있지만 환단고기는 고조선에 대한 역사서다.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에서는 실록을 기록하였다. 고려왕..
용감한(???) 자가 도로를 차지한다. 가장 용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화랑 관창을 용감하다고 하고, 계백장군이 용감하다고 한다. 을지문덕 장군이 용감했고, 신라의 화랑들이 용감했다고 배웠다. 왜일까? 이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의를 위해 싸웠기 때문..
제 30회 홍천군 서석면 면민체육대회를 참관하고 (2007년) 제 30회 서석면민 체육대회 및 동학운동 기념제가 개최되었다. 아침 8시 30분 동학군으로 분장한 학생들이 운동장까지 행진을 하였다. 격문이 적힌 깃발을 든 학생들과 죽창을 든 학생들이 동학군 복장을 하고 행진을 하였는 데 옷고름이나 대님을 맬 줄 몰라서 복장을 갖추는 데 시간이 ..
보고 싶은 사람 - 갑천의 신하사 집을 수리하려고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 된 편지 한통을 발견하였다. 1983년 횡성을 떠나 탄광지대인 정선 고한여중으로 부임하여 갔을 때 가장 먼저 받은 편지로 신 하사라는 분이 보낸 것이었다. 이 편지 겉봉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신 하사라는 분이 생각났다. 당시 횡성 갑천..
동창들 모임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2014년 들어 첫 동기들 모임에 나갔다. 춘천에 사는 동창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모임인데 20명 정도가 모여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나이를 먹어가며 회귀 본능이 작용하기도 하고 소속감을 통해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기도 하여 모임은 점점..
돈쓰기를 강요하는 사회 봉급때면 마이너스 통장이 상한선에 가까이 왔다갔다하는 스릴이 있는 생활이 몇달간 계속되고 있다. 지출내역을 곰곰이 따져 보면 확실히 씀씀이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불과 4년전만 하여도 없던 것이 우리집에는 많이 생겼다. 이런 것들이 없이 살려고 꽤 발버둥질을 쳤는 데 결국은 시류를 따르다 보니 생활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많은 지출을 하게 되었다.40년전 하루 세끼 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던 시절(지금도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임)을 경험하였던 나는 철이 조금 든 고등학교 시절  내가 커서 돈을 벌면 하루 세끼 밥을 먹고, 내집에서 살고 , 자식들 공부를 시킬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라지 않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우리 형제들이 아직 어렸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별세하신 까닭으로 어머니..
부쩍 늘어난 가정폭력 기사를 보고.... 전에는 교육의 수단으로 허용되던 체벌이 지금은 폭력으로 규정되었다. 교사가 학생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군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행하던 훈육이나 규율을 명분으로 한 체벌이나 기합은 폭력으로 규정되어 심한 경우 그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히 군이나 학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