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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코로나 19'로 인한 장기휴교

겨울방학이 끝난지 두달이 더 지났는 데도 아직 개학을 못하고 있다.

두달이 넘는 장기휴교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중3과 고3에 한해 4월 9일에 개학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학교에는 등교하지 않고 SNS를 이용해서 수업을 하는 온라인 개학이다.

16일부터 초중고 전학년(초등 저학년 제외)이 온라인 개학을 한다고 한다.

언제부터 학교에 등교할지 아직 미정이다.

 

2월부터 대유행을 시작한 '코로나 19'가 감염자수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언제 끝날지를 모르고 지리한 사회적 격리가 계속되고 있다.

대학도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아예 한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다는 학교들도 나왔다.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받는 고통과 스트레스도 클 것이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혈기왕성한 나이에 활동공간이 제약되는 데서 오는 고통은 몹씨 클 것이다.

집안에 장시간 있는 데서 오는 부모와의 갈등도 클 것이다.

학사일정과 아이들의 특성으로 볼 때 개학을 하여 등교시키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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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56년부터 학교에 재학한 1973년까지, 교사로 재직한 1974년부터 2011년까지 전염병으로 인해

학교가 휴교를 했던 적도 있고, 집단 예방접종을 했던 적도 있고, 감염된 학생들에 대한 춣석 정지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교 3학년때인 1958년에 일본뇌염의 유행으로 학교가 장기휴교했던 적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2500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하는 데 2-3주간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살던 양구지역에는 뇌염이 오지를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던 우리는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장티프스나 콜레라 등의 유행으로 인해 예방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있는 데 언제였는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집단 예방 접종을 하거나 감염학생을 등교하지 않게 하는 등의 조치는 있었겠지만 장기간

휴교 조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필자는 예방주사를 맞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대학에 다닐 때인 '70년대 초의 기억이다.

콜레라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는 물론 집단 예방접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길거리나 대중교통 등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을 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보건소 직원 등이 나와서 행인을 붙잡고 예방접종을 한 증서를 보자고 하였다.

증서가 없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예방접종을 하고 증서를 주었다.

나는 예방주사를 맞기 싫어서 피해서 다녔다.

양구를 갈 일이 생겨 버스를 타고 양구에 갔는 데 검문소에서 흰 가운을 입고 적십자 완장을 찬 보건소 직원들이 올라와서

예방접종을 했다.

필자에게 예방접종을 했느냐고 물었다.

주사를 맞기 싫은 필자는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보건소 직원은 접종증서를 보자고 한다. 접종증서가 없으니 증서를 제시하지믈 못할 것은 분명.

직원은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했고 증서가 없는 나는 주사를 맞을 수밖에....

 

교사 발령을 받은 해인 '74년에도 코로나인지 장티프스인지 전염병이 유행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예방접종이 실시되었다.

수업을 하는 데 간호사들이 접종을 하러 교실에 들어왔다.

학생들에게 접종을 받을 준비를 시켰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가 생글생글 웃으며 "선생님부터 주사를 맞으셔야지요"라고 한다.

제자들 앞에서 맞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안맞는다고 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예방주사를 맞았다.

 

2000년 무렵 눈병이 대유행을 한적이 있었다.

어느 안과 권위자인 분이 병에 감염되더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고 실명이 되거나 할 위험은 없다고 했다.

학교에는 감염학생을 무조건 격리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학생들은 이를 호기로 판단하였다.

고의로 감염되는 애들이 생겼다.

필자가 근무하던 춘천 외곽지역의 작은 학교에도 감염자들이 발생하였다.

1학년 한 학급은 20명중 11명이 감염되어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애들이 와서 누구가 시내 학교 아이에게 5백원을 주고 눈을 비벼서 감염되었다고 제보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에게서 누구누구가 손으로 눈을 비벼 감염되었고....

그러다 보니 '코로나 19 ' 몇번 감염자가 누구에게서 감염되었고 몇번 환자에게 감염시켰고 하는 감염경로가 나오듯이 

눈병의 감염경로가 나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눈병에 감염된 녀석들이 성적이 낮은 녀석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시내 고등학교에서(당시는 고교 비평준화 시대) 성적 우수집단이 모인 학교는 감염자가 적었고 하위집단이 모인 학교는 감염자가

많은 웃지 못할 현상이 생기기도 하였다.

2-3주정도 소동을 피우던 눈병도 유행이 멈추고 정상화가 되었다.

 

 

더 한심했던 일은 그해 봄에 홍역이 유행한 일이 있었다.

대유행은 아니었지만 전국적으로 수백명의 감염자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홍역도 법정 전염병이라 감염되면 출석을 하지 않았고 결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해 봄이었다. 홍

역에 감염된 녀석이 학교에 등교하였다.

당시에는 아파도 등교하는 것이 모범학생으로 평가되던 시대였다.

이를 안 담임이 학생을 귀가조치하였다.

그런데 H라는 녀석이 홍역에 걸린 녀석의 코와 입에 자기 손을 비비고 자기의 코와 입을 만져서 원하는대로 홍역에 걸려

집에서 쉬는 한심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녀석이 완치되어 등교한 후 녀석의 생명을 건 모험을 질책하였다

 

그후 10년 가까이 지나 다시 눈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전에 겪었던 경험이 있어 감염자들을 도서관으로 격리시켜 비감염 학생과 접촉을 차단하고 등교를 시켰다.

감염되어도 등교를 해야 하니 고의감염을 하여 등교를 하지 않을 일이 없게 되어 소수의 감염에 그치고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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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사스라는 독감의 일종인 질병이 유입되었지만 성공적인 방역으로 소수의 감염자로 그치고 수습되었다.

2009년에 신종플루라는 질병이 유행된 적이 있었다.

76만명이 감염되어 270여명이 사망하였다.

감염자수는 많았지만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하여 희생자는 적은 편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던 홍천 서석에도 신종플루가 유입되었다.

교문에 보건담당 교사가 체온계를 가지고 일일이 체온을 측정하여 의증이 있는 학생을 귀가시켰다.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교사와 학생이 있는 등 교실의 모습도 달라졌다.

2학기 중간고사때와 감염시기가 겹쳤는 데 3학년 일부학생들이 내신 성적관계로 응시할 것을 고집하여

감염학생들을 보건실에 격리시키고 교사들도 마스크를 쓰고 감독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상은 필자가 재학시절과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의 전염병에 대한 기억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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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0일 '코로나 19'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후 한달 가까이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슈퍼감염자로 부터 새누리 교단 교회를 통한 슈퍼감염이 일어나고 2월 19일부터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폭발적 유행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대구 경북지역에서 압도적 비율의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새누리 교단 신도의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하였다.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과 자유한국당(매래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극우는 중국인을 봉쇄하지 않아 감염이 시작되었다고 연일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였다.

새누리 교단 신도의 감염이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는 데 극우보수는 무조건 중국을 봉쇄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게 감염의 책임이 있다고 하며 새누리 교단에는 면죄부를 주었다.

극우보수권이 방역의 모범으로 거론했던 미국과 일본의 감염의 폭발적 확산이 일어나며 상대적으로 정부의 효과적인 방역이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극우는 중국에서 인구의 40%가 감염되는 2차 대유행이 일어날 것이니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유행하는 '코로나 19'는 아주 영악한 질병이다.

초기에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감염자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바이러스를 전파시켜 감염확산 방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의 사망율도 높아 긴장감을 높히는 질병이다.

이 코로나의 전염력이 크고 치사율도 높아 세계 각국 정부는 방역에 온힘을 기우리고 있다.

북한은 아예 국경을 봉쇄하였다고 하는 데 많은 감염자가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공식적인 감염자는 없다고 방역의 성공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격리를 방역의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국민들도 이 사회적 격리에 적극 협조를 하고 있다.

 

각급 학교가 두달 가까이 휴교를 하였고, 개인이나 단체의 모임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필자가 관계하는 동창회나 친목회 등이 모두 취소된 것과 개인적인 만남이나 이동을 자제하는 것

도 정부의 방역 대책에 협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국민 대다수도 필자와 같은 방법으로 정부의 사회적 격리 대책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격리는 종교의 현장집회도 자제시키고 온라인 예배나 의식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개신교회의 일부가 현장예배 중지를 종교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다수의 교회는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여 감염예방에 협조하고 있다.

 

모든 각급학교가 휴교를 하고 있다.

휴교를 연장해 가며 개학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학교를 통한 감염확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다.

급한대로 9일부터 중3과 고3아 온러인 개학을 하고 16일부터 중고 전학년과 저학년을 제외한 초등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정상적인 개학을 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60여년 동안 질병으로 인한 휴교는 전에도 드물게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동안 휴교가 있었던 일은 없었다.

속히 코로나 19의 유행이 종료되고 학교가 정상화되어 학교에 학생들의 활기있는 모습이 보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