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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돌깨(50년전 '69년에 쓴 글)

돌깨


먼저 돌깨란 무엇인가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참깨와 들깨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돌깨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당양서다. 나처럼 두메출신이 아니면 돌깨라는 말이 귀에 익숙할 리가 없다.

돌깨란 말이 내가 가진 사전에는 실려있지 않아서 정확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들깨를 말한다.

들깨는 사람이 밭에다 심어서 가꾼 것이고 돌깨는 전해에 들깨밭이었던 곳에서 저절로 싹이 나서 자란 들깨를 말한다.


벌써 5년전의 일이다.(필자가 중3 때인 1964년)

부모님과 함께 화전밭을 가꿀 때의 이야기다.

밭 옆에 화전을 하던 묵밭이 있었다.

여기에 잡초들과 같이 돌깨들이 자라고 있었다.

들깨는 생활력이 강하기 때문에 잡초들과 같이 섞여서 자란다.

아무도 그 들깨를 가꾸지 않았다.

그러나 가을에는 그 깨를 벤다. 일체의 비료도 노동력도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들깨와 돌깨는 다른 점이 있다.

들깨는 충분히 여문 다음에 베어도 깨알이 잘 쏟아지지 않으나 돌깨는 쏟아지기 때문에 완전히 여물기 전에 베어야 한다.

그해 가을 꽤많은 돌깨를 수확할 수 있었다.


다음해 나는 고등학교 진학관계로 춘천으로 나왔고 도시의 소음 속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내가 농촌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흙의 냄새는 맡을 수가 없었따.


그러던 중 지난번 휴교때(삼선개헌 반대시위로 9개학부터 -10월 국민투표때까지 대학의 휴교)

나는 야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산비탈 묵밭에서 돌깨가 여물어 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사로잡혔다.

오래 전에 잊어버린 흙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돌깨의 이삭을 잡았다. 깨가 땅에 떨어진다.


이 시간까지 돌깨여 너는 얼마나 시달려 왔는가?

작년에 사람들이 거두던 때에 너는 소외되었다.  땅에 떨어졌다.

다른 깨들과는 달리 추운 겨울동안 차거운 땅위에서 겨울을 보내야 했다.

너는 겨울의 혹한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봄!  너는 네 몸이 썩어서 새로운 싹을 틔웠다.

그러나 너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그러나 너는 잡초들을 누르고 자라났다.

지독한 가물이 들었다. 땅이 말러서 먼지가 나게 되어 다른 풀들은 말라 시들었지만 너는 가뭄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다른 풀이 무성한 속에서도 너는 그들을 이기고 자랐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가지가 꺾어졌을 때에도 다시 태양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오직 열매를 맺기 위해 모든 역경을 이기고 너는 살아남았다.

이제 너는 인고(忍苦) 의 세월을 넘긴 자랑스러운 씨를 맺고 서있다.

탐스러운 꼬투리 속마다 씨앗을 가득 품고 자랑스럽게 서있다.

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찾는다.


*1969년 일기장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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