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농사꾼 흉내내기

 

농촌에서 태어나서 컸어도 집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는지라 호미 한번 안잡아 보고 곱게(?) 큰 나는 학교와 집밖에는 모르고 살았다.

농고에 병설된 중학교를 다닌지라 학교에서는 작업을 많이 하였다. 김매기, 모심기, 벼베기, 퇴비베기 등등 실습지에서 많은 작업을 하였는 데 그때는 일하는 것이 상당히 싫고 불만스러웠다.

 

고등학교 진학관계로 춘천으로 이사 온뒤 40년간을 춘천에 근거를 두고 살았지만 채소 한포기 심을 땅을 소유하지 못하였던지라 농사지을 땅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공부를 합네 하고 가사 일 등에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인지라 부지런한 어머니가 동리의 빈터 이곳저곳을 파서 가꾸는 데에 구경 한번 가지 않았다.

 

교직생활을 한 후 10여년을 외지에서 떠돌다가 춘천으로 돌아 온 후에도 학교와 집을 오가는 개미 체바퀴 같은 생활은 계속되었다.

가을걷이를 할 때 어머니가 가꾸신 고구마 등을 운반하려면 할 수 없이 내 힘을 빌렸는 데 그때 어머니 앞에서는 한마디 못하고 아내에게 온갖 투덜대는 소리를 해가며 찡그린 얼굴로 리야카에 배추 등을 실어 날랐다.

 

1990년 지금 사는 석사동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도 어머니는 아파트 부근 빈터  이곳저곳을 파서 밭을 일구시고 들깨, 파, 무, 배추, 상추, 아욱 등을 가꾸셨다. 이러한 터밭 가꾸기는 어머니의 소일 거리였다.

아내는 어머니의 조수 노릇을 하면서 함께 농사를 지었는 데 1994년 여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가꾸시던 밭을 아내가 상속(?) 받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를 따라 농사일을 거들던 아내가(서울서 자라 농사를 전혀 몰랐음)어머니의 뒤를 이어 흙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수동적으로 마지 못해 어머니를 따라 다닌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농사일(?)을 하였다.

 

춘천에서 만기가 되어 다시 양구로 가서 몇년을 근무했는 데 주말에 집에 오면 땅을 파는 것 등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무서운 마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어길 힘이 없어 투덜대면서도 밭일을 거들었다.

농사짓던 공터가 개발이 되면 아내는 다른 곳을 물색하였고 그러면 나는 괭이와 삽을 가지고 그곳을 파헤쳐 밭을 만들어야 했다.

양구에서 6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99년 다시 춘천으로 들어왔다.

이해 아파트 인근의 공터를 100평이 넘게 개간하여 열몇가지가 되는 농작물을 가꾸었는 데 차츰 터밭 가꾸는 일에 나도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 그렇게 하였으면 효도라도 하였을 것을...

로데오 거리가 생기게 되어 그 터밭도 사라지고 거두리에 땅을 빌려서 마늘과 고추 등을 심어 가꾸었다.

고추, 마늘, 파, 배추 등 채소는 자급을 하여 유기농산물은 못되어도 저농약 농산물을 내 손으로 가꾸어 먹게는 되었는 데 올해에는 거두리 땅이 토개공에 수용되어 개발에 들어갔다.

 

할 수없이 지금 근무하는 학교 옆에 40평쯤 되는 땅을 얻어서 고추와 참깨를 심었다.

그리고, 학교 옆 빈집 울타리와 학교 교사 뒷편 울타리 부근에는 호박 구덩이를 30여개를 파고 유기질 비료를 묻고(인분이나 소똥을 밑거름으로 주어야 하는 데 구하기가 어려워 유기질 비료를 시비함) 호박 모종을 하였다.

일주일 전부터 호박을 수확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날은 몇개를 딸 때도 있었다.

이것을 동료 교직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한달 반 에 심은 고추도 자라서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였고 100대밖에 심지 못하였지만 풋고추를 따다가 먹기 시작하였다.

매일 점심식사를 하고는 농장(?)을 한바퀴 순시하는 것이 하루의 낙이 되었다.

어떤 때는 남들이 다 퇴근을 한 후 작업복을 갈아 입고 밭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주고 퇴근할 때도 있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고 거기에 생계를 건 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고 내 생활이 사치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겨우 손바닥만한 땅을 가지고 감히 농사운운할 말이 못된다는 것을 잘알지만 자투리 시간을 내어 농작물 가꾸기를 하는 것은 다른 어떤 취미생활에 비해도 못미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인생을 두 단계로 나누고 있다.

일차 직장에서 일하며 사는 제일의 인생과 일차 직장에서 은퇴한 후의 삶인 제 2의 인생  두 단계로.

나의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동기들이 일차 직장에서 은퇴를 시작하였고 나 역시 몇년 후에는 지금의 직장에서 물러나야 할 날이 오는 데 그후의 삶을 하는 일이 없이 등산이나 낚시나 여행을 다니면서 소일할 것인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여 보았다.

 

나날이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믿고 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구하기도 어려워지는 데 조그만 터밭을 가꾸어 수확한 농작물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며 흙에 애착을 가지고 살고 싶다.

그리고, "공부하여 남주나"라는 말을 듣고 컸는 데 지금까지 나를 먹여 살린 것이 지금의 전공과목이었다면 지금 옛날에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했던 공부를 시작하였는 데 이 공부는 배워서 남을 주는 공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05. 7. 5

'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0) 2013.09.02
호박 가꾸기   (0) 2013.08.29
고추 말리기  (0) 2013.08.27
나의 반려식물 호박  (0) 2013.08.21
잡초의 덕을 본 이야기   (0) 201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