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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잡초의 덕을 본 이야기

얼마 전 춘천에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누적 강수량이 500mm가 넘는 곳도 있었다.

처음에 내린 빗물은 땅에 스며들기도 하고, 식물이 흡수하기도 하여 강수량 전체가 개울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계속 비가 내리면 땅은 더 이상의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흘려 보내게 되어 적은 양의 비가 더 내리면

홍수를 만나게 된다.

춘천의 경우도 그랬다.

 

지난 7월14일 새벽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8시에 밖을 내다보니 공지천에 흐르는 물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교회에 가기 위해 9시 반쯤 집을 나섰다.

춘천 교육대학교 앞이 온통 황토색 물바다였다.

탄성이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보도 블럭이 길위에 떠다니고,

개울이 된 도로 위를 지나던 차들 중 시동이 꺼져서 사람이 내려서 밀고 가는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 내가 운전하는 차는 시동이 꺼지지 않고 시냇물이 된 도로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물이 불어 급류가 되고 차량이 떠내려 가고

의암호의 유람선 승강장이 급류에 떠내려 가다가 댐에 부딛치며 박살이 나는 모습이 나왔다.

21년만의 대홍수라고 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밭이 염려 되었지만 비가 오니 가볼 수가 없었다.

비가 그친 후에도 접근로의 사정이 어떤지를 몰라서 이웃의 밭 임자들에게 물어 보고서 밭에를 갔다.

두곳에 밭이 있는 데(편의상 제1 농장과 제2 농장이라고 지칭) 모두 산 밑에 있는 약간은 경사가 진 밭이다.

 

제1 농장의 경우 밭의 일부를 들깨 모종을 심으려고 갈아 놓았다.

밭을 간지 얼마 안되어 잡초도 없이 맨땅이 드러나 있었는 데 많은 비가 오자 밭의 곳곳이 깊이 파이며 토양이 유실되었다.

 

제2 농장의 경우 위의 농장보다 경사는 완만한 편이지만 위에 밭들이 있어 그곳의 물이 유입될 가능성이 있었다.

부동산에서 땅을 분할하여 팔 때 우리 밭과 위의 밭 사이에 도랑을 파서 위의 물이 우리 밭으로 흐르지 않게 차단을 시켰다.

도랑이 꽤 깊은 편이어서 위의 밭의 물이 우리 밭으로 내려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2 농장에 가보니 도랑이 밀려 온 토사에 묻히며 위의 밭에서 물이 우리 밭을 통해서 흘러 간 자국이 보였다.

마늘을 캐내고 김장 채소를 심으려는 밭두럭에는 비닐 멀칭은 그대로 있지만 멀칭한 밑으로 많은 양의 흙이 유실되어 있었다.

 

밭에 가로로 고랑을 만들어 멀칭을 하고 땅콩과 참외 옥수수 등을 심었는 데(자가 소비를 위해 다품종 소량 재배를 함)

군데군데 멀칭 속으로 물이 흘러가며 흙을 파냈으나 그 다음의 이랑에 걸려서 고랑에 을 퇴적시키면서 다음 이랑을 침식시키는 식으로 물이 흘러 갔다. 그러나 밭 고랑의 흙은 잡초 뿌리가 엉겨 있어서 파이지를 않았다.

가장 많은 양의 물이 흐른 곳은 밭을 구획짓는 세로로 난 고랑이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일을 하다보니 잡초를 당할 수가 없었다.

 

파를 심은 곳은 파밭인지 잡초밭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한번 제초작업을 하면 1주일도 되지 않아 다시 풀이 무성하게 올라온다.

장마로 밭에서 일을 하지 못하자 잡초는 더욱 무성하게 자라 풀 속에서 땅콩이 자라고, 옥수수 밭 고랑의 풀은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여름철 농사 일의 절반 이상은 풀을 뽑는 일이다.

제초제를 확 뿌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몇번씩 들게 된다.

제초제를 치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내 경우 재배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농사가 전업이 아니니 잡초와 공생을 한다고 하지만 재배 면적이 넓은 경우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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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우거진 제 2농장의 경우 가로 줄의 밭 고랑과 세로 줄의 통행로에 많은 양의 물이 흘러갔지만 토양침식은 일어나지 않았는 데 이는 전적으로 고랑을 덮고 있는 잡초 덕분이었다.

잡초의 엉긴 뿌리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흘렀지만 토양의 침식을 막아준 것이다.

마치 산에 나무가 우거지면 토양침식이 방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농사를 짓는 데 골치거리고, 캐내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잡초가 밭을 지켜 준 것이다.

많은 양의 비가 왔지만, 위의 밭과 우리 밭을 차단시킨 도랑을 메우면서까지 물이 흘러 넘쳐 들었지만 우리 밭이

침식 피해가 아주 적었던 것은 고랑 사이에 엉긴 잡초의 뿌리 덕분이었다.

밭 주인에게 구박을 받던 잡초가 자신이 사는 삶의 터전인 흙을 지킨 1등 공신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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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왜 이런 생물이 존재를 하는가?"라는 불평을 할 때가 있다.

잡초가 그렇고 해충이 그렇다.

장마철에 습한 방에 피는 곰팡이가 그렇다.

그렇지만 이들 생물 모두가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 어디엔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효용성을 모를 뿐일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 이번 장마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진리다.

 

물이 밭고랑으로 흘러 내려갔으나 잡초가 보호하여 고랑의 흙이 파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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