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박을 좋와한다. 호박으로 만든 음식도 좋와하지만 호박이라는 식물 자체와 호박꽃 역시 좋와한다. 갖피어난 호박꽃은 무척 아름답다. 못생긴 여자를 호박꽃에 비유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비유라고 본다.
호박은 애호박때 볶아 먹거나, 전을 붙여 먹거나 하여도 맛있고 조금 늙은 것은 호박장을 끓여 먹으면 좋다. 늙은 호박으로는 밀가루를 섞어 범벅을 만들어 먹어도 맛이 있다. 호박범벅은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인데 해마다 가을이면 먹고 싶어 아내에게 이야기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해주지를 않아 먹어 본지가 몇해전인지 알 수 없다.
'98년 양구 방산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학교 주변 공터에 호박을 몇구덩이 심었다.
교감선생님이 명당 자리를 먼저 선점하신 터라 나는 억지로 몇구덩이를 심었는 데 호박농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구덩이만 파고 호박모를 심었다. 비료를 주니 호박덩굴을 무성하게 자랐다. 애호박도 가끔 따먹었는 데 눈에 띄지 않아 늙어 가는 호박도 있었다.
그런데 호박이 늙어 가다가는 졸기에서 떨어져 더 이상 익지를 못하는 것이다.
아주 늙은 호박이 아니고 어중간하게 늙은 호박은 아무데도 쓸 곳이 없다. 교감선생님이나 마을의 다른 분들이 가꾸는 호박에서는 누런 호박이 늙어 가는 데 내가 심은 호박은 늙어 가는 것이 없이 모두 중간에 떨어지고 마니. 나중에 그 까닭을 알았다. 비결은 밑거름을 주는 것이다. 돼지나 소의 똥을 호박 구덩이에 밑거름을 주고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과거에는 인분을 밑거름으로 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호박구덩이에 인분을 갔다 넣던 기억이 났다)
다음해에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 호박을 심으려 하였으나 그때는 운전면허도 없는 시절이라 소똥 등을 구해 올 길이 없었다. 마을에서 얻어 오면 되는 데 리야카를 끌고 가서 얻어 오기도 그렇고 하여 왕겨를 발효시킨 유기질 비료를 밑거름으로 호박구덩이를 파고 호박을 심었으나 작황은 전해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99년 춘천으로 온 후에는 호박을 심을 곳이 없어 호박을 심지 못하다가 금년도에 변두리 시골학교로 옮긴 후에 다시 호박을 심기로 하였다. 학교 운동장 주변에 명당자리를 골라 9개의 구덩이를 팠다. 가장 효과가 좋다는 닭똥을 사다가 밑거름으로 주었다. 호박모는 제주도가 고향인 선생님이 제주도에서 가져 왔다는 우량종의 종자를 모를 부었다가 모종을 하였다.
호박은 밑거름 덕분인지 시커멓게 줄기를 뻗으며 자랐다. 하루에도 몇십 cm식 덩굴이 뻗어 나갔다. 호박 모종을 좀 늦게 심어서 호박이 달리는 시기가 늦었다. 여름 방학 직전에 호박이 달리기 시작하여 겨우 세개를 땄는 데 방학을 하였고 인천에서 연수가 있어 한달동안 학교를 비우게 되었다.
개학을 하고 학교에 와보니 나무를 감고 올라간 호박은 덩굴이 무성하였으나 땅위를 기게 한 호박은 원줄기가 말라 죽었고, 몇개의 호박이 늙어 가다가 줄기가 말라 죽어 쓸모 없게 되었다. 나무를 감고 올라간 호박은 덩굴은 무성하였으나 늙어 가는 호박은 두 구덩이에서 겨우 세개였다. 그런데 두개는 늙다가 썩어서 떨어졌다.
계속 내리는 비는 호박의 수분을 방해하였다. 암꽃의 봉오리가 맺히기는 하는 데 호박은 달리지 않았다. 덩굴 밑에를 보면 수분이 되지 않아서인지 호박의 꽃봉오리가 상해서 떨어진 것만이 있었다.
어쩌다가 몇개의 호박을 수확하였다. 지금까지 아홉구덩이에서 15개 정도를 수확하였을 것이다. 늙어 가는 호박은 3개다. 두개는 덩굴속에 숨어 있어서 알지 못하였던 것인데 이것을 발견하엿을 때의 기쁨이란? 그래도 추석때 몇개의 호박을 수확한 것이 최대의 기쁨이었다.
우기(?)가 끝나고 나서야 암꽃이 피기 시작하고 자라기 시작한다. 그런데 벌써 새벽에는 서늘하다. 이제 생장기간은 계절적으로 볼 때 끝나가는 것이다. 올해의 호박 농사도 또 실패다. 밑거름을 주고, 그 뒤에 비료도 주었지만 잦은 비는 수분을 방해하여 호박이 제대로 달리지를 못하였다. 옥수수, 무, 배추, 들깨, 고구마, 감자 등도 이제는 아마추어 수준은 되었는 데 호박은 계속 실패만 거듭한다. 출퇴근을 하며 마을 주민들이 길가에 심은 호박을 보면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누런 호박들이 뒹굴면서 늙어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호박 농사를 성공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을 알고 계신 분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2003. 9. 24 '느릿느릿'에 올린 글
덧붙임 : 여러 해의 시행착오를 거쳐 호박이 낙과가 되지 않게 되었다. 비결은 구덩이를 깊게 파고 밑거름(시판 퇴비나 소똥 등)을 충분히 넣는 것이다. 호박덩굴이 풀숲에 가려지면 생존에 에너지를 쏟아 열매가 달리는 시기가 늦어지게 된다. 울타리에 올리거나 섶을 만들어 올리면 호박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애호박으로 먹을 것이면 호박이 열리는 대로 계속 따주어야 된다. 애호박을 방치하면 호박은 늙으며 크게 자라는 데 영양을 소비하여 더 이상 애호박이 열리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