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감히 농사꾼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농사에 대하여 만년 초보이고, 농사가 전업도 아니고 아내가 농사일을 하는 데 조수 노릇이나 하면서 어깨 너머로 농사 일을 배우는 처지에 농군이니 하는 말은 쓸 수가 없지요. 이 글도 서울 안다녀 온 사람이 서울 다녀 온 사람보다 서울을 더 잘 안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읽어 주시면 합니다. 해마다 아내에게 가꾸고 말리기 힘든 고추는 심지 말자고 하는 데 아내는 고추를 반드시 심습니다. 동래 정(鄭)씨 고집이라서 그런지 저는 아내의 고집을 꺾지를 못합니다. 어느 정도 고추가 자라니 줄을 띄워 주어야 했고, 탄저병이나 역병을 예방하기 위해 (아직 유기농을 할만한 실력이 없고 고추와 배추, 무, 참깨 등은 부득이 농약을 칩니다. 횟수는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더운데 분무기를 지고 농약을 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20L 들이 농약통을 등에 지고 마스크를 쓰고 분무질을 하고 나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젓습니다. 고추를 따는 것도 보통일은 아닙니다. 더운 날씨에 고추밭 고랑에 쭈그리고 앉거나 엉거주춤 서서 한개씩 일일이 따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추를 지지하기 위해 매어준 줄에 걸친 고추를 상하지 않게 따려면 더 힘이 듭니다.
고추를 가꾸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은 말리기입니다. 고추에 농약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따온 고추를 욕실에서 숯가루를 이용해서 물로 씼어냅니다. 바구니 등에 담아 물기를 빼고 거실에 널어서 이틀밤 정도를 재우며 후숙시킵니다. 후숙이 끝난 고추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태양에 자연 건조를 시킵니다. 비가 내리는 등 날씨기 좋지 않으면 불을 때서 거실에서 말려야 합니다. 거실을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는 딸들의 불평과 불만을 아내는 간단히 제압하고 거실에 불을 때서 고추를 말리는 데 더운 여름날 불을 땐 거실에서 생활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고추의 건조는 날씨와 관계가 깊습니다. 건조기에 집어 넣고 말리면 별로 힘이 들지 않지만 대규모로 고추 농사를 하는 것이 아니니 건조기가 없기도 하지만 태양초를 만들기 위해 아내는 옥상에서 건조하는 것을 고집합니다. 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 고추를 말리는 일은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작년에는 고추를 말리는 데 크게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여러번 고추를 따다 보니 날씨 때문에 힘든 경우도 있었지만 100% 태양초를 만들었습니다. 고추 말리기에 가장 큰 고생을 했던 것은 재작년입니다. 이틀을 멀다 하고 내리는 비때문에 건조가 잘되지 않고 고추가 곯아 나가는 것이 절반이나 되었습니다. 고집센 아내도 어쩔 수 없이 고집을 꺾고 내 말을 따라 건조기에 건조를 시키기로 했습니다. 마침 친구인 병준이네가 서면에서 고추 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고 건조기가 있어서 그곳에서 말리기로 했습니다. 15km가 넘는 거리를 고추를 싣고 가서 건조기에 넣고 온도를 맞추고 집에 왔다가 26시간 후에 다시 서면으로 가서 초벌 건조된 고추를 싣고 집으로 와서 옥상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해가 날 때는 내널었다가 비가 내리면 다시 거실로 옮겨 오는 해님과 숨박꼭질을 하며 고추를 말렸습니다. 지금 시판되고 있는 고추는 거의 대부분이 건조기에서 하루 쯤 초벌 말린 후에 하우스나 햇볕에 말린 것을 태양초라고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서면에를 몇번 왕복하며 고추를 말리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네번째 수확한 고추가 건조되고 있는 데 거의 두달간 장마가 계속되었지만 고추를 말릴 때부터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 고추를 말리는 데 큰 애로는 없었습니다. 맏물로 16kg, 두물로 46kg, 세번째로 72kg을 말렸습니다. 네번째로 55kg의 고추가 옥상에서 건조되고 있습니다. 한관(4kg)을 말리면 한근(600g)이 됩니다.
작년과 올해는 날씨가 좋와서 말리는 중간에 버려지는 고추가 적었지만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면 말리는 중에 곯아 나가는 고추가 많습니다. 이런 고추를 일일이 선별해 내어야 합니다. 어느 해인가 한번은 바람이 세게 불어 비가림을 해놓았던 비닐이 날아가 비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아내가 서울에 가고 부재 중이라 내가 옥상에 올라가 고추를 넓게 펴고 하는 작업을 하여 겨우 물기를 말렸습니다. 계속 비가 내리다 보니 이틀이 멀다하고 비닐을 걷고, 덮고 하는 일이 아주 번거롭습니다. 고추 말리기가 힘들 때면 다음 해에는 고추를 심으면 절대 조력을 하지 않겠다고 쐐기를 박았으나 통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차라리 고추 가루를 사다가 먹자고 벌써 몇년째 협박과 애원을 했지만 아내에게는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입니다. 내년에도 아내는 고추 농사를 최우선으로 영농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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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8일 작성, 2013년 8월 27일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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