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의 하나가 수능입니다.
올해 수능도 끝나고 입시 일정이 진행되며 머지 않아 성적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앞선 세대의 사람으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썼습니다.
필자의 조언이 수능을 치른 모든 수험생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학문을 하는 분야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가진 수험생들에게 해당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도 있으니 참고가 될 것입니다.
아래는 아기때부터 성장과정을 보아온 이번 수능을 치른 세원이를 수신인으로 하여 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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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원아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통과의례인 수능을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내가 처음 너를 보았을 때가 너의 어머니가 너를 안고 서당에 한문공부를 하러 왔을 때인데 그간 세월이 흘러 네가 수능을 보도록 장성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수능날 하루를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들, 이를 위해 희생해야 했던 많은 일상의 생활을 생각한다면 만감이 교차하리라 생각한다.
수능은 그 과정은 묻지 않고 오직 과목별 점수와 등급만을 한 장의 종이에 출력하여 보내줄 뿐이다.
이 종이에 인쇄된 숫자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며, 학교가 학과가 달라지게 된다.
너의 어머니에게서 가채점한 결과 목표로 한 점수에 못미쳐 네가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교시절만 따져도 3년의 시간이 투입되었고 수능을 염두에 두고 공부한 시간까지 합산한다면 몇배의 시간이 투입되었을 수도 있는 데 목표에 못미치는 결과에 상심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수능은 불수능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어 수학의 성적이 작년보다 내려갈 것이라고 하니 실망하지 말고 결과를 기다리기 바란다.
그리고 논술 고사 잘 보며 수시 전형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대입이라는 게임은 수험생의 0.1%인 600명 정도만 빼고 나머지 99.9%는 참가자 모두 만족할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는 성적이 못미치고,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는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 입학시험의 디렘마이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자신이 취득한 성적과 입학하고자 하는 학교 학과의 합격선 사이에서 최적의 선택을 할 것이고 선택의 적절함에 더하여 상대적인 경쟁과 운이 작용하여 합격 여부가 결정되게 되지.
나는 네가 취득한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고,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응시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원래 목표로 했던 학교와 학과에 진학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예상과 달리 네가 원했던 수준의 학교와 학과에 진학하지 못해 차선책으로 목표를 하향 조정하거나 최악의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경우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여 세원이 보다는 조금 더 오래 살은 앞선 세대의 경험을 말하고자 한다.
40년 가까운 교직생활에서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기간은 초임 교사시절 몇 년간이었고 주로 중학교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대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말할 내용은 위인전 같은 곳에나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고교시절과 대학입시의 경험과 나와 교류하였던 동기생과 선후배들과 가르쳤던 제자들의 사례이다.
이 역시 내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이고 대부분 반세기 전의 사례와 40-50년전의 사례이고 현실과는 부합되지 않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형태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소개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 他山之石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먼저 유념할 것은 인생에서 대부분의 경우 게임은 단 한번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너멘트로 우승자를 가리는 경기나 오징어 게임처럼 단 한명의 승자에게만 모든 것이 가는 그런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인 직진하는 외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게임은 여러 차례가 있고 목표에 도달하는 데 여러개의 길이 있을 수 있고, 우회로도 있고 때로는 목표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는 것은 원하는 학교 학과에 진학하여 단 한번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경우다.
그러나 이것도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의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한 것이다.
입학한 후에도 많은 변수가 있고 극복해야 할 도전이 있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목표로 하는 학교 학과에 순조롭게 진학하여 후에 엘리트 코스를 걸은 예와 재수를 하여 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진학한 경우는 이곳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두 번째 경우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와 학과에 진학한 경우나 또는 상위권 학교가 아닌 그 아래 수준의 학교 학과에 진학한 경우다.
이 경우 많은 학생들이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나역시 그랬었다.
나는 원래 S대 사범대를 가려고 목표를 정하고 공부했으나 역부족으로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부득이 재수를 했으나 자기 관리를 잘못해서 원래에 진학하려 했던 학교에는 도전할 수 없었고 목표를 하향조정하여 지방 국립대로 진학을 했다.
입학후 한동안 방황을 했으나 나의 평생 멘토가 되어주신 홍목사님의 조언으로 마음을 잡고 새로운 비전을 갖고 공부하려 했으나 가정에 연이어 닥친 불행에 좌절하여 버린 경험이 있다.
나의 대학 2년 후배 중에 C고에서 전교 1등을 한적도 있는 IH와 시골 농고를 나오고 입학한 YK가 있었다.
C고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으나 S대에 낙방하여 재수하고 입학한 IH와 시골 농고 전체에서 혼자 예비고사에 합격하여 입학한 YK는 누가 보아도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IH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YK는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기독교 써클에서 활동을 하며 열심히 공부를 했다.
IH는 군에 다녀온 후 졸업을 하고 어느 대기업에 입사를 했고, YK는 ROTC 장교 근무를 하면서도 공부를 중단하지 않고 고려대 대학원 화학과에 입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후 KAIST에서 근무하다가 인제대학교 나노공학부 교수로 옮겨 근무하고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였다.
소개하려는 다른 인물로는 SJ다.
SJ는 세원이 어머니와 같은 고향인 홍천 두촌 출신이다.
C고를 나왔지만 최상위권에는 속하지 않았고 내가 다니는 학과에 입학했다.
집안이 어려워 대학에 다닐 때도 양조장에서 알바를 하며 다녔다.
그는 일본을 거쳐 미국에 가서 공부했고, 암의 발생과정에 대한 연구로 인정을 받아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종신연구원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삼성그룹에서 수여하는 호암 과학상을 수상하였다.
그후 귀국하여 대학 연구소에서 생명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소개하고 싶은 인물들이 여럿 있으나 대학 후배들 중에서는 한명만 더 소개하겠다.
MJ 역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는 데 S대에는 실력이 조금 못미치고 KY는 사립이라 경제적 능력이 못미쳐 내가 다니는 과에 입학했다.
물론 열심히 공부했겠지.
서울대 대학원을 나오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포항공대 교수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하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기대에 못미치는 학교 학과에 갔다고 해도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에 따라 국내 명문대 대학원으로 진학할 수 있고, 해외의 명문대로 갈 수도 있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당뇨병 연구로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던 윤박사님이라는 분은 지방사립대를 나왔지만 캐나다에서 당뇨병 연구로 권위를 인정받자 연세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초빙 받았고 나의 과 선배 한분은 캐나다에서 식품공학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 맥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서울대 교환교수로 와서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성적이 기대에 못미쳐 목표했던 곳보다 낮은 수준의 학교 학과에 진학했다고 해도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제자들 이야기를 하겠다.
내가 양구중에서 근무할 때 가르쳤던 제자 중에 JK라는 제자가 있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평준화가 되기 전이었는 데 가장 입학이 어려웠던 C고를 가지 못하고 다음 다음 순위였던 S고에 진학했다.
대학도 강원대를 나왔다.
내가 춘중에 두 번째 근무할 때인에 선배되는 여선생님이 JK를 아느냐고 했다. 내가 양구에서 근무했다고 하니 그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딸이 있는 데 혼담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그가 귀국해 있어서 JK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가 학문을 하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 데 어떻게 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느냐고.
그는 S고에 왔는 데 짝을 한 친구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와 경쟁을 하며 공부하다 보니 공부에 취미를 붙였고 계속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JK는 지금 충북대 의대에서 기초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교입시 낙방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 목표를 달성한 경우를 예를 들겠다.
내가 두 번째 양구중학교에서 근무할 때 친구 아들의 예다.
YH는 사대부고에 응시했으나 낙방을 했다.
마침 양구종고의 인문계가 미달이 되어 추가입학으로 양구종고에 입학했다.
그는 한번 실패를 교훈삼아 3년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고 농어촌 전형의 혜택이 있었지만 높은 수능성적을 받고 고려대학교의 컴퓨터 분야의 학과에 진학을 했다.
지금은 영국에서 컴퓨터 분야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것은 비록 평판이 뒤진 학교에 진학했지만 꾸준한 노력을 해서 명문대를 나온 것 못지 않은 반전을 한 사례다.
비록 목표로 정한 학교 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그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이것이 절망과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먹기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반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위의 경우와 지금은 시대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지금과는 시대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내가 세원이만 했을 때도 초등학교만 나왔거나 無學인데도 거의 독학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노력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는 기대에 못미치는 학교와 학과에 진학했지만 최종적인 목표를 이룬 사례를 말했다.
그러나 인생에서 목표에 이르는 길은 의사, 교사, 법조인 같은 전문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꼭 대학을 가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 말고도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공부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 이외의 다른 길을 선택한 경우 공부를 하는 경우보다 몇배 몇십배의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나의 70여년의 삶과 40년 가까운 교사생활과 그후 10여년간의 삶의 경험을 통해 말한다면 공부를 잘해서 이를 토대로 사는 삶이 가장 평탄하고 선택의 기회가 넓다는 것이다.
공부외의 다른 길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앞에서 말한 것같이 공부하는 것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한 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장황한 이야기를 했구나.
수능을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제 푹 자고,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기 전 긴장이 풀린 여유있는 시간을 입학때까지 짧은 기간이나마 보내기 바란다.
세원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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