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지금도 마로니에는... ”라는 노래를 들었다.
불현 듯 반세기 전 노래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과에 다니던 동기 J의 생각이 떠올랐다.
같은 과 입학 동기이지만 내가 고교 1년 선배라 어떤 서열의식이 있어서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지는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냈던 사이였다.
마로니에 노래를 들으며 J를 떠올린 것은 J와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4학년 때이던 1972년 J는 ROTC 2년차였다.
6월엔가 ROTC 페스티벌이 있었는 데 반드시 여자 파트너를 데리고 참가하는 순서가 있었다고 한다.
여자 친구가 없었던 J는 난감했었다.
갑자기 파트너를 구할 수도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한번만 동행해 줄 파트너를 찾는 것이었다.
아마 J는 마로니에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시중을 들던 아가씨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카페에 가서 아가씨에게 사정을 말했고 아가씨는 J의 요청에 선뜻 응했고, 그래서 둘은 파트너가 되어 페스티벌의 순서에 동참할 수 있었다.
남녀의 사이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를 계기로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2학기가 되어 개강을 했는 데 둘의 뜨거운 사이는 과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손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아기씨가 J에게 하는 연락은 과 사무실 전화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실험을 할 때 가끔 아가씨가 J에게 전화를 했고 실험실과 붙어있는 과 사무실에서는 J에게 전화가 왔다고 알려주어 科友들 전체가 알게 되었다.
9월 중순쯤엔가 J는 아가씨와 약혼을 한다고 전체에게 공개를 했다.
그런데 약혼식 날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아가씨가 잠적을 했다고 했다.
J는 상심을 했다.
아마 이곳저곳 연고를 찾아 아가씨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가씨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찾는 것을 단념한 후부터 J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얼굴에는 수심히 가득하였고 활기가 없었다.
아가씨가 무슨 이유로 잠적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J는 기타를 잘쳤다.
수업과 수업 사이 휴식시간이나 수업이 빈 시간에 J는 정원에 앉아 계속 ‘지금도 마로니에...’라는 곡을 기타로 연주했다.
이 곡을 반복하여 듣게 되자 음악에 둔감한 필자도 연주 소리만 들으면 이 곡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10월이 되어 가을은 깊어갔고 비례하여 J의 우수에 찬 표정도 깊어갔다.
또 J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도 점점 그 슬픔을 더하여 가는 것 같았다.
J는 아가씨가 일했던 마로니에라는 카페의 상호를 생각하며 아가씨를 연상하였을 것이다.
J가 연주하는 기타는 단순한 물리적인 음파가 아닌 갑자기 떠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감정이 어우러진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무 아래에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던 우수에 찬 J의 모습이 생각난다.
‘
1972년은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일으킨 10월 유신이 일어난 해였다.
10월 17일 유신을 단행한다는 중대 발표가 있었다.
18일 학교에 등교했으나 군인들이 교문을 봉쇄하여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오랜 기간 휴교를 하였고 유신 개헌 국민투표가 끝나고 상당기간이 지난 12월이 되어서야 개강을 하였다.
학교에 등교를 못하니 더 이상 J의 기타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곧 기말고사가 있었고 방학을 했고 졸업식을 했다.
J는 ROTC 장교로 군입대를 했고 나는 대학원에를 진학했다가 가정 형편 때문에 1년 후 중학교 교사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자연 J에 대한 일도 마로니에도 기타소리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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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의 세월이 흘렀다.
원주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J를 만났다.
J는 옆에 있는 여자를 소개하였다. 얼굴을 보니 낯이 익었다.
국어 교육과에 다니던 후배였다.
둘은 갖 결혼을 한 사이였다.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사랑의 상처는 세월이 가면 잊혀지고 치유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아니면 못살 것 같았지만 시간이 가면 상처도 치유되고 마음에 드는 새로운 상대가 나타나면 예전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상대에게 몰입하여 그와 짝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삶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후 몇 년에 한번은 어떤 계기로 J의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마로니에, 우수에 찬 J의 표정, ‘지금도 마로니에는...’ 라는 기타소리가.
그리고 왜 마로니에 카페의 아가씨는 J와 소문난 불꽃 같은 사랑을 하고 약혼날까지 정하고 갑자기 사라졌을까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며칠 전 마로니에라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자 오랜 시간동안 기억의 깊은 연못 속에 잠겨있던 추억이 의식 세계로 떠올랐다.
그리고 컴 앞에 앉아 생각나는 것을 글로 옮겼다.
지금도 그 아가씨가 갑자기 사라진데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아마 J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을 것이다.
J가 마로니에 나무를 본다거나 음악을 들을 때면 아주 가끔은 옛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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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연주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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