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수가 적정 밀도 이상으로 증가한 멧돼지는 아주 골치아픈 유해 조수(鳥獸)가 되었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혀 천덕꾸러기가 되었는 데 본의 아니게 아프리카 돼지 열병의 전파자가 되어
접경지역에서는 엽사(獵師)들의 사냥대상이 되었다.
자유롭게 오가던 산하는 휴전선에 의해 막히더니 멧돼지 방지용 울타리에 막혀서 자유로운 이동이 방해를 받게 되었다.
십여년 전만 하여도 멧돼지가 이정도로 천대를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산간 지역의 농경지에 피해를 주는 경우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 정도가 광범위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끌지는 않았다.
그러나 천적이 없어 번식이 제어되지 않자 개체수가 급증하게 되고 먹고 살자니 경작지를 침범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니 사람들과 부대끼게 되었다.
필자도 농사를 짓기 전에는 멧돼지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멧돼지가 적정한 정도로 서식하고 있는 것이 생태환경에 좋다고 생각했다.
또 필자가 어렸을 때나 농촌지역에서 근무할 때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 멧돼지 문제와 접하지 않았지만 당시에 멧돼지 피해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50대가 되며 필자가 농사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고 현직에 있으며 여가시간을 이용한 소규모의 농사였기 때문에 멧돼지와 부딛힐 일은 없었다.
그러나 2011년 필자가 퇴직을 하고 전업농(?)이 되어 산 가까운 곳에 밭을 구하여 농사를 짓다보니 멧돼지와 부딛치게 되었다.
처음 2-3년간은 멧돼지가 밭에 내려오지 않아 멧돼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심고싶은 농작물을 재배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멧돼지가 내려와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수확하기 하루 이틀 전에 모두 결딴을 내어 거둘 것이 없게 되었다.
땅콩밭을 들 쑤시며 땅콩을 캐먹어 캘 것이 없었다.
고구마도 마찬가지였다.
땅콩과 콩 고구마는 고라니까지 덤벼서 잎을 먹어 버리니 주인 몫은 없었다.
고라니는 집념이 강해서 울타리를 해도 뛰어 넘거나 아니면 망을 뚫고 들어와서 막을 수가 없었다.
효과가 있다는 퇴치방법을 썼어도 처음 며칠만 효과가 있었을 뿐 소용이 없었다.
고구마와 땅콩 콩을 심는 것은 포기하였다.
옥수수는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점이 많았다.
거름만 충분히 주고 생육초기에만 잡초제거에 신경을 쓰면 옥수수가 커서 잡초를 제압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또 수확을 한 후 들깨를 그루갈이로 심을 수가 있어서 좋왔다.
운에 맡기고 재배 규모를 줄여 옥수수를 심었다.
멧돼지가 오는 해도 있었고 오지 않는 해도 있었다.
멧돼지가 오면 그해는 수확이 전무했다.
최근 몇년간은 멧돼지와 옥수수를 놓고 경쟁을 하였다.
멧돼지는 큰 산에 가까운 곳부터 훑으며 내려왔다.
수확을 빨리하면 피해를 면할 수가 있었다.
옥수수를 하우스 안에서 포트에 재배를 해서 일찍 모종을 했다.
덕분에 멧돼지가 오기 전에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수확을 끝내자 마자 멧돼지의 습격을 받았다.
옥수수를 따고 덜 여문 것만 남겨둔 상태였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언제 멧돼지의 피해를 당할지 몰라 올해부터는 수동리 밭에는 옥수수를 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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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퇴직을 하고 동해안 삼척지역 바닷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 며칠을 머문 적이 있었다.
다음 해 친구가 정년 퇴직을 하게 되어 이삿짐 운반을 도와주러 갔다가 학교 뒤에서 자생하고 있던 뚱딴지를 얻어왔다.
이것을 밭 가장자리에 심었는 데 번식력이 왕성한지라 몇년이 안가 가장자리를 둘러싸게 되었다.
뚱딴지는 늦가을이나 봄에 언땅이 녹으면 캤는 데 그때에는 별 효용가치가 없었다.
당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팔기도 했으나 미처 소비하지 않은 뚱딴지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뚱딴지가 자라는 곳이 밭 주변이라 띠처럼 길게 둘러있어 아무리 멧돼지라고 해도 한꺼번에 모두 캐먹을 수는 없었다.
자연 필자와 뚱딴지를 두고 경쟁이 벌어졌다.
필자도 다른 농작물 수확도 있어 한꺼번에 캘 수가 없으니 멧돼지와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가 뚱딴지를 캐먹은 곳은 경운기로 간 것보다 더 흙이 파여 있었다.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였다.
멧돼지가 딴지를 캐나가다가 건너뛴 곳이 있었다.
뚱딴지가 남아있어 기쁜 마음에 캐보면 캘 것이 없었다.
캐보아야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멧돼지가 건너뛴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를 몰랐고 나에는 혹시나 해서 캐보면 헛탕이었다.
그런데 2-3년전부터는 필자도 당을 관리하여야 할 필요가 생겨 뚱딴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멧돼지가 뚱딴지를 캐먹기 시작했다.
가을에는 수확에 무척 바빴다. 들깨와 김장채소 콩 등을 수확해야 했다.
멀칭했던 비닐도 걷는 등 밭정리도 해야 했다.
자연 뚱딴지를 캐는 것은 다음해 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멧돼지가 와서 주인보다 먼저 수확을 하는 것이다.
올해는 멧돼지가 뚱딴지를 건드리지 않았다
마늘 밭에 난 발자국을 보면 분명 멧돼지가 다녀가기는 했는 데 뚱딴지를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착한 멧돼지가(?) 다녀갔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뚱딴지를 수확하고 알았다.
뚱딴지가 필요하다는 이웃도 있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당관리를 해야 하는 데 뚱딴지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서둘러서 뚱딴지를 캐기로 했다.
이제는 뚱딴지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애물단지가 아닌 감자 고구마처럼 필요한 농작물이 된 것이다.
열심히 뚱딴지를 캐었으나 헛탕이었다.
캐 보니 콩알만 하거나 밤톨만 한 것 몇개가 있을 뿐이었다.
대궁은 무성하고 컸지만 달린 뚱딴지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식용가치가 있는 크기의 뚱딴지가 나왔다.
해마다 60kg 이상이 수확되던 것이 20kg도 나오지를 않았다.
이웃에서 농사를 짓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골짜기에서 대규모로 뚱딴지를 재배하는 분이 있어 해마다
장비를 이용하여 캐내어 트럭으로 싣고 갔는 데 올해는 별로 수확을 못했다고 했다.
춘천 지방의 금년 농사는 대체로 흉작이었다.
여름에 50일이 넘는 장마가 졌고 가을에 두달 가까이 비가 내리지 않아 가을에 뿌리나 열매 씨앗이 성숙하는 농작물은 흉작이었다.
고구마 들깨 김장 채소 등 대부분의 농작물의 수확이 줄었고 뚱딴지도 이를 비껴가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내 깨달았다.
멧돼지는 영리하고 똑똑하다고.
옥수수 고구마 등의 농작물을 사람이 수확하기 직전에 먼저 수확하고 뚱딴지가 달리지 않은 곳은 아예 캐지도 않을 정도로 거둘 시기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는 데에는 사람보다 한 수가 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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