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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엑스(X) 할머니

x(엑스)는 수학에서 미지수를 나타내는 기호다.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정해지지 않은 인물이나 사물 수치 등을 나타낼 때 쓰인다.

필자가 이글에서 나타내려는 x(엑스) 할머니 역시 한분으로 국한할 수 없는 미지의 할머니를 말한다.

 

필자가 농사를 짓는 밭 주변에는 마을이 있다.

마을이 있으면 당연히 주민이 생활하고 있고, 요즈음 대부분의 농촌이 그러하듯 주민들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장수국의 반열에 들다보니 연세가 높으신 어른들이 많게 되었다.

사람의 일생에서 노화란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다.

또 나이가 들면 육체나 정신이나 그 기능이 노쇠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단순히 기능만이 쇠퇴하는 것이 아닌 판단력과 분별력도 함께 퇴화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농촌에서 80대 90대인 어르신들은 1940년대-1950년대에 유소년기를 보내신 분들이다.

이분들은 대부분 농촌에서 태어나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사신 분들이다.

산업화가 되고 도시로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시기에도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농촌을 지키신 분들이다.

특히 할머니들의 경우 딸들은 교육을 시키지 않는 당시의 풍조때문에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된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가사일을 돕고 동생을 돌보다가 대부분 이웃 마을로 출가를 해서 힘든 농사를 지으며

가사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평생을 보내었다.

자식을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데 온갖 희생을 다한 세대다.

교육을 마치고 장성한 자식들은 취업하고 결혼하여 도시로 떠나고 노부부만이 텅빈 집을 지키게 되었다.

남편을 사별한 경우 혼자 사는 독거노인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데 가장 안타까운 것이 치매다.

본고에서는 치매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겠다.

치매로 인한 인지능력과 판단능력 분별력의 쇠퇴는 정상을 벗어난 행동을 유발시키는 경우가 있게 된다.

 

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고추를 재배했는 데 첫물 고추를 따고 두물 고추를 따려는 데 수확량이 첫물보다 적었다.

맨 위 두 이랑의 고추는 딸 것이 별로 없었다.

대개의 경우 두번째 세번째 수확에서 가장 많은 고추를 따는 데 두번째 수확량이 첫번째보다 적은 경우는 이례적이다..

우리 밭의 인근에서 생활하며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이장댁 아주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같은 마을에 사는

X 할머니가 한 일같다고 했다.

버섯을 재배하는 데 어떤 때는 바구니를 가지고 버섯 재배사에 와서 표고버섯을 따가기도 하고

다른 농작물도 마치 자기것처럼 걷어 가서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우리 고추도 그 X 할머니가 땄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렇게 거둔 농작물은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팔아 용돈으로 쓴다고 했다.

그리고 시내에서 또 다른 X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마을에 와서 농작물에 손을 댄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한 마을에서 살았으니 심하게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 X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남의 농작물에 손을 댄 것은 아니다.

치매가 심해지며 판단력과 분별력이 흐려져서 남의 소유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해부터인가 X 할머니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없게 되었다.

우리야 큰 피해를 본 것이 없었지만 이장댁의 경우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X 할머니가 기력이 쇠하여서 거동을 잘 못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에 할머니를 도시에 사는 자식이 모셔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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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년 전 밭에 냉이가 나와서 냉이를 캐러 가보면 누군가 냉이를 다 캐가서 우리가 캘 냉이가 거의 없었다.

밭 가장자리에 달래를 심은 것도 주인보다 누가 먼저 수확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봄에 밭이나 들판에 돋아나는 달래 냉이 쑥과 산나물 등은 누구나가 수확해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다른 X 할머니도 소시(少時)때 하던 습관대로 우리 밭에 나는 냉이나 달래 등을 캘 수도 있겠다고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호박이 달려 딸 때가 되어 따러 가면 누가 먼저 따갔다.

가을에 호박잎을 수확하려 했더니 누군가가 호박잎을 모두 채취해 가서 우리가 거둘 호박잎이 없었다.

이장 댁 아주머니는 다른 X 할머니가 농작물에 손을 댄다고 했다. 

이장 댁에서 재배하는 채소 등을 먼저의 X 할머니 처럼 수확해 간다고 했다.

또 우리 밭 이웃에서 생활하는 장로님 댁에서도 머위 등 농작물을 다른 X 할머니가 손을 댄다고 했다.

 

그러다가 2-3년 전부터 밭에서 일어나던 소소한 피해(?)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X 할머니가 기력이 쇠하여져서 잘 거동을 하지 못하신다고 했다.

이 X 할머니는 앞에서 언급한 X 할머니가 활동할 때에는 활동을 하지 않던 분이었는 데 그 할머니가 활동을 중지한 몇년 후부터 먼저 X 할머니를 이어 활동을(?) 하셨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밭의 농작물을 외부 사람이 손을 댄 일은 없었다.

밭 이웃에 사는 분들도 소소한 피해를 보았다는 이야기도 없었다.

X 할머니는 심성이 나쁘거나 도벽이 있는 분은 분명히 아니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으며 힘든 시기를 버텨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식들을 길렀고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게 한 유공자들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치매라는 질병으로 인해 인지능력이 쇠퇴하고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져서 본의 아닌 행동을 한 것이다.

 

농촌뿐 아니라 고령의 어르신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치매로 인한 이상 행동이 발생할 수 있고 당사자와 가족들과 이웃을 힘들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치매 노인들을 가족들에게만 돌봄을 맡긴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 너무 큰 짐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

다행히 국가와 지역사회에서도 치매 노인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누구나 표출 형태와 증상은 다르지만 X 할머니와 X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범 국가적 대책이 더욱 정교하게 짜여지고 효율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