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농사일을 하다보면 힘이 들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은 경험하기 힘든 재미난 일을 겪기도 한다.
사마귀가 짝짓기를 하다가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모습을 목격한다거나, 한삼덩굴에 걸린 꿩을 맨손으로 잡는다거나 새집을 발견하는 일, 고추 지줏대 사이에 끼어 죽은 물까치를 발견한 일, 이상하게 생긴 열매나 식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일, 콩꼬투리를 가지고 쥐와 뺏기고 뺏는 싸움을 한 일, 땅콩을 캐다가 쥐의 번식용 굴을 발견하여 쥐새끼들을 꺼내놓고 점심을 먹고 왔더니 어미쥐가 새끼들을 모두 구출한 일 등 흥미있는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지난 달(9월 14일) 수동리 밭에서 일을 하다가 수수를 보호하기 위해 친 그물망속에 갇힌 비둘기를 맨손으로 생포한 일이 있었다.
꿩이나 비둘기 등 날 수 있는 동물을 맨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자연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이 덩굴에 걸리거나 그물망 속에 갇히거나 하여 자유를 잃어 동작이 느린 나에게 생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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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조를 심어 조가 잘 자라 탐스럽게 조이삭이 여물어서 많은 수확을 기대했으나 새떼의 공습으로 2/3이상이 새 사료가 되고나니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새나 짐승에게 큰 피해를 당하는 농작물은 심지 말자고 작정을 했으나 그 결심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아이를 낳느라 진통으로 고생한 여자가 또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올해는 조가 아닌 수수를 심었다.
이미 수수가 새에게 피해를 당한 일이 있는지라 수수가 여물기 시작할 때 피해 방지를 위한 대비를 했다.
수수 위에 그물망을 씌우는 것이다.
재작년 조에도 그물망을 씌웠으나 이삭 위에만 씌웠기 때문에 새떼가 그물망 밑으로 들어가 알갱이를 먹었기 때문에 올해는 그물망을 땅에 고정시키고 이삭 위에까지 망을 덮어 새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로 했다.
수수의 가장자리에 180cm짜리 고추 지줏대를 박고 그물망을 구입하여다가 아래로부터 이삭위에까지 그물망을 씌웠다.
어디에도 새가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아보였다.
올해는 새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새들이 우리보다 한수 위인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수수가 자라서 이삭이 그물망에 닿게 되었다.
하루는 아내가 수수의 윗부분이 새에게 먹혀서 빗자루처럼 되었다고 하였다.
가보니 새들이 그물망 위에 앉아서 부리가 닿는 부분의 수수알갱이를 모두 먹어버린 것이 아닌가?
당장 수수를 베고 싶었으나 덜 여문 것 같아 더 여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며칠 있다가 가보니 그물망 위에 앉아있던 비둘기떼는 다 도망가버리고 출구를 찾지 못한 두마리의 비둘기가 망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고 이리저리로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같이 협동하여 비둘기를 끝으로 몰아서 한마리를 생포했다. 한마리는 어느 틈으로 탈출을 했고
비둘기는 이삭 윗부분만 먹은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틈을 찾아 그물망 안으로 들어와 망 속에 있는 수수를 맛있게 잡수신 것이다.
비둘기가 망 아래에 있는 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포된 비둘기는 날아가려고 몸부림치지도 않고 눈만 껌벅거리며 붙잡힌 채로 조용히 있었다.
증거 사진을 찍고 비둘기를 끈으로 묶어 지줏대에 고정시켜 두려고 했다.
수수를 공짜로 먹은 데 대한 벌이기도 하고 다른 비둘기에게 경고를 주고 집에 올 때 풀어주려고 계획하고 비둘기를 묶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항을 하지도 않고 조용히 있던 비둘기가 갑자기 몸부림을 치더니 방심하고 있던 내 손을 벗어나 깃털만 몇개 뽑아놓고 날아가 버렸다.
몇년전 사로잡았던 꿩도 그렇게 놓쳤는 데 비둘기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놓쳐버린 것이다.
누가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하였는가?
새들은 나를 속일만큼 영리하였다.
아니 나보다 한수가 위였다.
수수를 덮은 그물망 위에서 부리가 닿는 범위의 알갱이를(수수의 절반 이상) 먹었고, 아래의 틈으로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망안으로 들어와서 마음껏 수수를 먹은 것이다.
10여년 전 밭에 고라니가 들어와 콩잎과 고구마 잎을 뜯어먹었는 데 그때도 울타리를 쳤었다.
고라니는 울타리의 지줏대 사이에 망이 쳐져서 낮아진 곳을 찾아 뛰어 넘었고, 나중에 뛰어넘을 곳이 없자 그물망 아래를 뚫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막는 자의 허를 찌르고 자신들이 먹고 싶은 것들을 먹었다.
그동안 경험으로 깨달은 것은 먹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항상 막으려는 우리보다 한수가 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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