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년도가 시작된지 한달이 지났다.
일곱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내 삶은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삶이 5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매일 학생들을 대하며 가끔은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 올챙이적 생각을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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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려움으로 시작한 학교생활
원래 마음이 모질지 못하고 겁이 많았던 나에게 춘천에서 학교생활의 시작은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의 시작이었다. 그 두려움이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더욱이 양구 촌놈이 춘천으로 왔으니 아는 형들도 없는 실정이었다.
거센 바람에 혼자서 맞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에 대한 두려움은 앞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번에는 같은 또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춘중을 졸업하고 춘고에 올라온 친구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학교만 옮긴 것이니 고교 입학이 아니라 4학년에 진급하는 격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에 이식된 나무와 같은 처지였다.
1학년 2반에 배정되었지만 아는 녀석들은 한명도 없었다. 양구서 같이 나온 중학교 동기들이 있었지만 한명도 같은 반이 되지 못하였다.
실장으로 용환이가 뽑혔다. 용환이는 성격이 온순하고 원만하였기에 믿을만한 존재였다.
그러나, 완력이 세어 보이는 몇몇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K는 보기만 하여도 겁에 질릴 인상이었다.
K는 우리반을 장악하였다.
한번은 반 전체를 옥상으로 데리고 가서 기압을 준 적도 있었다.
뒷번호의 등치가 큰 몇몇이 엎드려 뻗치라는 K의 말에 뻣뻣이 서있었지만 K가 나와 1:1로 맡붙으면 나를 이길 녀석도 있겠지만 내 뒤에는 조직이 있다는 말에 모두 뻗혀를 하고 말았다.
60명이 K에게 꼼짝을 못하는 것이었다.
학급에서 돈을 걷을 일이 있어 회의를 하는 데 甲論乙駁이 벌어질 때 K의 말 한마디면 그가 정한 수준에서 걷을 돈의 액수가 결정되었다.
그런 K가 어느날 점심 시간에 옥상에서 보자고 하였다.
나는 겁에 질려 K를 따라 옥상에 올라갔다. K는 돈을 꾸어 달라고 하였다.
시내버스비 정도의 돈밖에 없어서 이것 뿐이라고 하자 씩 웃으면서 센터를 하겠다고 하였다.
몸을 뒤져도 돈이 없자 그는 그 돈을 가지고 내려왔다.
양구서 같이 나온 최무성이가 나를 보고 염려스러워서 어떠냐고 물었는 데 K는 무성이를 불러갔다.
그러나, 내가 무성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성이가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나에게서 꾼(?) 돈으로 빵을 사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훗날 K와도 친해지게 되었지만 시골에서 온 촌놈에게는 그가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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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습시간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선생님이 바쁜 업무에 수업에 들어가는 것을 깜빡 잊었거나 수업 시간을 착각하여 안 들어오는 경우, 수업시간이 바뀐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등 - 나도 이런 저런 이유로 수업을 깜빡한 경우가 더러 있었음)인 자습시간은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K는 이런 자습시간을 주도하였다.
주로 여자 꼬이는 이야기 등 성의 실무에 대한 교육을 하였는 데 순진한 녀석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영규가 K의 여자 꼬이는 방법에 대한 특강이 끝나자 "그럼 애기가 생기면 어떻게 하니?"하는 질문을 하여 교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 일이 있었다.
내가 주번일 때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있었다.
주번이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에게 수업시간이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 하기에 내가 선생님을 모시러 가려고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뒤에서 욕설이 들렸다. 입을 가진 60명이 모두 한마디씩 하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수업시간은 자유시간이 되었고, 여러 녀석들이 여학생 꼬이는 이야기, 사창가 다녀온 이야기 등 성교육(?) 등의 특강을 하였고 그러다가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교무실에를 다녀오라고 하였고, 교무실에 가서는 선생님에게 즉시 내려오지 않았다고 혼나고....
당시 교실에는 큰 주전자가 있었고, 몇개의 물컵이 있었다.
물을 떠오는 것은 주번의 몫이었다.
체육시간이 끝난 후와, 점심시간이 가장 물의 수요량이 많은 시간이었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나서는 한 주전자의 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면 물을 떠오라는 불같은 독촉이 있고.... 주번은 물을 뜨러 쏜살같이 수도가로 달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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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 정도 청소당번이 돌아왔다.
분단별로 청소를 했는 데 7-8명이 한분단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청소를 안하고 뺑손이를 치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러면 남은 당번들이 도망간 녀석들의 몫까지 담당을 하여야 했다.
남은 녀석들은 겁이 많거나 소심한 녀석들이어서 도망간 녀석들 몫까지 청소를 하면서도 속으로 불평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못했다.
어느날엔가 나혼자 남은 적이 있었다.
청소를 안하면 담임에게 혼날 것 같고, 나 혼자서 교실청소를 다하였다.
그 뒤 내가 담임을 할 때 가능한한 청소검사는 직접하였고, 뺑손이를 친 녀석들은 한달간 고정 청소당번을 시킨 것은 위의 쓴 경험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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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학반의 폭발사고
교실과 교무실 등이 있는 건물과는 별도의 건물에 도서관이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1학년 5반 교실도 있었고, 이곳을 제주도라고 불렀다.
도서관 뒤 미군부대 쪽으로는 공장이 있었는 데 판금실, 기계실 등 실습시설이 있었다.
아마 종합고등학교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대로 인문계 고교로 유지하였던 같다.
당시 춘고에서는 매년 여름방학에 모형 로켓트를 소양강변에서 발사하였다.
'50년대 말 인하공대에서 모형 로켓을 발사하였는 데, 이를 본따서 로켓발사를 해온 것 같다.
과학반 학생들이 모형로켓을 만들었는 데 이성찬, 소명식 등이 이 작업에 참석하고 있었다.
1학년 여름방학때 공부를 한다고 학교 도서관에를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지 졸음이 오게 되었고,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는 데,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오후 4시엔가 미군부대에서 대포를 쏘았는 데, 포를 쏠 시간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잠이 깨었다.
창밖을 보니 공작실 쪽이 연기로 자욱하게 덮혔고, 어느 청년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물리를 가르치는 김진수선생님이 공작실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뛰어 나와 아래로 내려와 보니 소명식이와 이성찬이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다른 선배나 친구들도 있었는 것 같지만 두명만 기억이 남)
내가 성찬이에게 괜챦으냐고 묻자 성찬이는 나를 보고
"내가 살았니? 죽었니?" 하는 것이었다. 명식이와 성찬이는 넋이 거의 나간 상태였다.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하대학교 로켓트 반장을 하던 선배가 방학 중 내려와서 로켓제작을 지도하였는 데 사고로 오른손 손목을 절단하였다고 하였다.
과학실의 로켓 폭발사고는 나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계는 무서운 것으로 인식되었고(뒤에 중학교 1년 선배가 정미소에서 팔이 절단된 사고를 당한 일이 있었음) 내가 공대를 지원하지 않았던 것은 이 영향을 크게 받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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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가 가면서 우리반 및 다른 반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여 가면서
학교생활과 친구들에 대한 두려움도 엷어지며 사라져 갔다.
2학기가 되자 축구를 하는 종석이가 우리반으로 전입을 왔고 k와 세력균형을 이루게 되어 더 이상 K가 급우들 앞에서 설치는 일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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