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3주년 기념일인 어제 광우병 가능 미국산 소 수입반대 촛불 시위가 100번째로 열렸다고 했는 데 색소가 든 물을 분사해서 시위 참가자 150여명을 연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광우병 수입 소 반대는 그 근저에 미국에 대한 비판을 깔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8대 총선이 끝나고 미국을 방문하면서 체결된 한미 쇠고기 협정은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는 협정이었고, 검역주권을 포기한 협정으로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초기 대응을 잘하였으면 그렇게 확대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안 사먹으면 될 것이 아니냐는 식의 대응을 하다가 문제를 더 키우고 말았다. 나중에 추가협상으로 일부 문제 조항을 수정하는 등의 보완 조치가 있었지만 성난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광우병에 감염된 소를 먹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런데도 계속 문제 제기가 되는 것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해치는 잘못된 협정에 있었다. ------------------------------------- 냉전시대에 교육을 받은 우리는 철저한 반공과 공산주의 북한 사회에 대한 거부와 경계,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교육받았다. 해방후 분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소련에게 있었고, 미국은 얼마나 통일을 위해 노력을 했는지를 교육했다. 미국은 정의로운 나라이고, 북괴의 남침에서 우리나라를 구원했고 막대한 원조를 제공해서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구원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 우리가 배운 내용이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미국을 비판한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에 우리가 고3때이던 1967년 엄청난 일이 터졌다. 이른바 분지(糞地)라는 소설의 필화사건이다. 남정현이라는 소설가가 현대문학 123호에 '糞地'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는 데 이 소설이 필화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현대문학 잡지에 처음 글이 실렸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 데 이 소설을 북한의 인민일보가 전재하면서 사건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중앙정보부에서는 작가를 연행 구속하였고, 작가를 구하기 위해 문인들이 탄원을 하였고 이 사건을 사법부에서 다루게 되었다. 국어를 가르치시던 박찬도 선생님인지, 아니면 국문학사를 가르치시던 이덕성 선생님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수업시간에 이 사건을 우리에게 말하자 호기심이 강한 우리는 현대문학 123호를 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당연지사. 며칠 후 누구가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현대문학 123호가 우리 반에 들어 왔고 남정현의 분지를 읽기 위해 우리는 줄을 섰다. 며칠을 지나서 123호가 내 손에 들어 오게 되었고 나는 분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8.15 해방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에게 어린 주인공의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하였고, 어머니는 이로 인해 미쳐서 죽게 되었다. 주인공이 자라서 보복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군의 아내를 성폭행하였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미군은 주인공을 체포하려고 하였고 주인공은 이를 피해 向美山 속에 숨었고 미군은 범인인 주인공을 못찾자 향미산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른들에게 6.25때 미군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지라 왜 이 소설이 문제가 되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당시 우리의 의식구조로는 미국을 비판하거나 반미니 하는 감정을 갖기에는 무리였었다. 아마 중앙정보부에서는 북한에서 선전자료로 이용한 이 소설을 반미소설로 보고 반미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봉쇄하려고 필화사건을 일으켰을 것이다. --------------------------------------- 미국에 대한 비판이 표면화된 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부터였다. 10.26으로 유신이 무너진 후 민주화가 될 것으로 열망을 했었다. 전두환이 쿠테타로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광주의 비극이 일어났는 데 미국이 전두환의 손을 들어 주자 미국에 대한 비판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미국이 마음이 좋와서, 선량해서 결코 우리나라를 도운 것이 아니라는 것과 남북 분단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반독재 투쟁과 더불어 반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광복후 60년이 더 지나면서 우리나라가 많은 발전을 하였다. 미국에 대한 비판의식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한 역사의 발전 과정이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어떻게 억압을 하며, 다른 나라의 힘이 약한 농민을 도산시키는지를 알만큼 국민의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미국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6.25가 끝나지 않은 전쟁이고(불완전한 휴전상태가 존속되고 있음) 전쟁을 했던 그 집단이 아직도 적대적인 관계로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힘만으로 국방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우리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협력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나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조건 반미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미국에게 추종하고, 친미국가로 미국의 뜻만을 받들고 미국을 비판만 하면 '좌빨'로 몰아가는 수구 역시 반미 못지 않게 문제가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면서 미국과 협력을 하며 상생적 동반자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40여년전에 읽은 분지라는 단편소설을 생각하면서 그때와는 달라진 한미 관계를 생각하며 두서없는 생각을 적어 보았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 동문들도 있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글을 대하여 주기를 바란다 2008. 6. 16 춘천고등학교 40회 카페에 올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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