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3때였던 '67년 3월로 기억된다. 당시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이던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월남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수근의 월남은 나라를 뒤흔든 큰 뉴스였다. 신문과 방송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당시 동아일보를 구독하던 나는 신문을 통하여 이수근 사건을 상세하게 접할 수 있었다.
북한의 중앙통신사 부사장이라는 고위직에 있으면서 '북한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다'는 이수근 사건은 체제의 우월성 경쟁을 하던 당시 우리 남한에게는 큰 호재였을 것이다. 남측에서는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차원에서 이수근의 월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전국적인 환영 행사를 하였다.
4월초인 어느 토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청광장에서 이수근 환영식을 한다고 하여 동원되어 시청광장으로 갔다. 4월 초였는 데도 그날은 낧씨가 꽤 쌀쌀하였다. 이수근이 오기를 떨면서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렸는 데도 이수근은 오지를 않았다. 아마 세시간 가량을 기다려서야 이수근이 도착하였다.
승용차를 탄 이수근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열광하는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연단으로 향하였다. 이수근은 연단에 올라가 청중들의 환호에 답한 후 환영식이 있었고, 이수근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가 있은 후 짧은 연설을 하였는 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북한과 김일성을 비판하고 남한의 우월성을 찬양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
이수근의 월남 사건후 2년정도가 되었을 때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이수근이 이중간첩이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근후가 소문을 이야기하였다. 이 소문은 춘천에도 퍼졌다. 그런데 신문에는 이수근이 반공강연을 다닌다는 기사가 났다. 헷갈리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수근이 북한으로 탈출하다가 사이곤에서 체포되어 압송되었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수근이 이중간첩이라는 루머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었다.
이어서 이수근이 위장탈출을 하였고, 남쪽에서의 후대에도 불구하고 배신을 하였다는 내용의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이수근의 재판이 있었고 사형이 선고되었고, 집행되었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이수근이 재혼하였던 이모라는 의학초급대의 교수는 미국으로 갔다는 뒷얘기가 어느 잡지에 나온 것은 그 뒤였다.
이렇게 하여 이수근의 위장 탈출 자수 사건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났고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 갔다. ====================================================================
한세대인 30년 정도가 흘러갔다. 잊혀졌던 이수근에 대한 소식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수근의 탈출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복역을 하고 석방된 이수근의 처조카가 이수근이 이중간첩이 아니였고, 중앙정보부의 사건 조작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수근이 위장탈출을 한 위장 간첩이다 아니다라는 공방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이수근이 틀림이 없는 위장간첩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장간첩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공방 끝에 이수근은 분단의 희생자라는 결론이 났다.
북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만을 가진 이수근은 남한으로 탈출을 했지만 중앙정보부의 감시하에서 중정의 각본에 따라 살아야 하는 남쪽의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제 3국으로 탈출을 시도했고,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 후 남쪽에서 이중간첩의 누명을 쓰고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수근은 자유를 찾아서 목숨을 건 탈출을 한 반공투사에서 이중간첩으로 다시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을 받은 어느 곳에서도 정착할 수 없었던 분단의 희생자로 성격이 변하였다. 이렇게 이수근의 성격이 변한데는 냉전 시대가 마감된 데에 따른 남북 관계의 변화 등 큰 시대의 변화가 한 몫을 하였다.
이제 이수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허장강이 어디에 있는 강이냐고 되묻고, 설운도가 어디에 있는 섬이냐고 묻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많은 초등학생들은 김일성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세대에 있었던 큰 사건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여지다가 우리 세대와 함께 역사 속으로 묻혀져 갈 것이다.
2007년 11월 13일 춘천고등학교 40회 동창회 카페에 올렸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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