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직업인 전업농을 하는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지만 힘들게 농사를 짓는 이유를 묻는다면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심고 가꾸는 기쁨, 거두는 기쁨, 나누는 기쁨이다.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는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들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기쁨은 체험한 사람들만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 나는 일도 있고, 너무 힘이 들 때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거두는 기쁨을 누릴 때면 과정에서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과 짜증나는 일들을 잊게 된다.
어느 일도 마찬가지지만 일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것이 낯선 경험이 되어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난 파격이 되어 밋밋한 일상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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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늦가을이었다. 밭정리를 하러 갔더니 둔덕 아래에 있는 이웃밭 귀퉁이의 한삼덩굴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조심 스럽게 다가가서 살펴 보니 어떤 새가 갇혀서 빠져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덩굴 속에 손을 넣고 그 새를 몰아가다가 마침내 두 손으로 움켜 잡는 데 성공하였다.
조심스럽게 덩굴밖으로 꺼내 보니 꿩이었다. 성징(性徵)나타나기 시작한 장끼였다.
한손으로 장끼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를 불러 장끼를 잘 붙잡게 하고 멋있는 인증샷을 찍으려고 하였다. 겨우 한컷을 찍었는 데 장끼는 아내의 손을 벗어나 도망갔다.
장끼를 잡았을 때부터 꿩만두를 해먹을 생각은 없었다(만두를 해먹기에는 너무 어렸다)
사진을 찍고 날려보내려 했는 데 녀석은 사진 찍을 기회를 주지 않고 도주하고 말았다.
잡았다 놓친 장끼(수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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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까치의 안타까운 비명횡사
물까치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텃새로 무리생활을 하며 먹이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가족애가 강한 새로 알려져 있다.
6월 중순무렵 물까지떼가 수동리 밭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20-30마리의 무리가 밭에 와서 먹이를 먹기도 하고 뽕나무 위에서 쉬기도하였다.
그런데 6월 19일 아침 밭에 가보니 고추 지줏대 사이에 물까치 한마리가 목이 끼어 죽어있었다.
고추가 쓰러지지 말라고 150cm 알루미늄제 막대를 땅에 박고 끈으로 고추를 묶어 고정시켜 주는 데 맨 가장자리는 힘을 받으라고 막대
두개를 박았는 데 이 틈에 운이 나쁜 물까치 한마리가 목이 끼어 죽은 것이다.
마치 부실공사를 해서 인명사고를 낸 공사 시공자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고춧대 사이가 벌어지게 박은 것이 결국 새 한마리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렇다고 죽은 물까치를 다시 살릴 수도 없고..... 물까치를 잘 묻어 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밭 가장자리에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망초꽃을 깔고 물까치 사체를 올려놓고 그 위에 다시 망초꽃으로 덮은 후에 흙을 덮어 주었다.
그 위에 다시 망초꽃으로 덮어 주고..... 그렇게 해서나마 새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아마 새들 중에서 꽃에 덮힌 장례식을(?) 치르고 땅에 묻힌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아무리 화려한 장례식이라도 살아서 날아다니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 물까치야 정말 무지무지 미안하다.
고추 지줏대 사이에 물까치 한마리가 목이 끼어서 비명횡사를 했다.
물까치는 죽어서야 고추 지줏대 사이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물까치에게 미안한 생각에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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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고비를 넘긴 잠꾸러기 새끼 고라니
필자가 미워하는 포유류 동물 삼총사는 쥐와 고라니와 멧돼지다.
멧돼지는 옥수수, 고구마, 땅콩 등을 수확하기 바로 직전에 농장을 기습하여 1년 농사를 망쳐놓는다.
멧돼지가 다녀간 밭에는 남는 것이 없다.
옥수수를 내일이나 모레 쯤 수확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멧돼지가 습격을 한다.
옥수수를 쓰러뜨리고 몽땅 따먹어서 사람이 거둘 것이 없다. 고구마와 땅콩도 밭을 갈면서 모두 캐먹어서 남는 것이 없다.
고라니는 멧돼지처럼 한번에 싹쓸이를 하지는 않는다.
콩이나 고구마 잎 등을 먹는 데 소식가여서인지 일부만 먹고 간다.
아주 어린 시절이 아니면 콩이나 고구마는 다시 잎이 나서 성장한다.
문제는 한번 찾아온 고라니는 계속 찾아온다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콩잎 등을 뜯어 먹으니 며칠이면 콩잎이 모두 고라니의 사료가 된다.
다시 올라오는 콩잎을 또 먹으니 결국은 콩이나 고구마가 성장하지 못하여서 수확을 못하게 된다.
고라니가 처음 입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한번 입을 대면 계속해서 오는 데 웬만해서는 막지 못한다.
울타리를 뛰어넘고, 넘을 수가 없으면 망을 뚫고 밑으로 기어서 들어온다.
크레졸 비눗물 희석액을 놓아도 냄새에 익숙해지면 다시 찾아오고, 경광등도 깜빡이는 주파수에 익숙하면 그 옆에까지 온다.
일단 한번 맛을 들이면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2012년 봄 고라니 피해를 막기 위해 학곡리 밭에는 철망울타리를 했다. 미터당 23,000원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2012년 고라니에 의한 콩 피해, 울타리 높히기, 크레졸 희석액 설치, 경광등 설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으나 고라니를 막는 데 실패.
2017. 6. 16 이웃 고추밭의 고라니 피해. 고라니가 아주 어린 고춧잎을 먹는 경우는 있지만 어느정도 자란 고춧잎을 먹는 것을 본적은 없다. 고라니가 산 중턱에 있는 이웃 밭의 고춧잎과 대궁의 윗부분까지 먹어치운 모습.
학곡리 골짜기 밭은 우리밭을 비롯하여 이웃밭들 대부분이 철망울타리를 쳤다.
120cm가 넘으면 멧돼지가 넘지를 못한다고 한다.
고라니는 150cm까지 도약이 가능하지만 뾰죽한 철망 끝때문에 넘지를 못한다고 한다.
두달 전쯤 우리 이웃밭에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사람에게는 재미지만 고라니는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였을 것이다)
성숙한 고라니 한마리가 차소리에 놀라 철망 울타리를 넘어서 밭에 들어갔다고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철망울타리를 넘지 못하지만 위기상황이라 고라니가 젖먹던 힘까지 다해 울타리를 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새벽이 되자 고라니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울타리 주위를 뱅뱅돌았다고 한다.
아침이 되고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나자 다급한 고라니는 온 힘을 다해 울타리를 넘기 위해 도약을 했는 데 배부분이 뾰죽한 철망 끝에 닿아 피가 묻고 털이 뽑히는 부상을 입고(?) 겨우 탈출했다고 한다.
어제(7월 1일) 아침 밭에 갔더니 이웃밭의 전씨가 고라니 새끼 한마리를 안고 왔다.
이웃밭에서는 감자를 캐느라 손주들까지 와있었고, 고라니를 안고 오는 것을 보고 이웃들이 몰려왔다.
전씨의 말에 의하면 산밑의 밭에 갔다가 잠을 자는 고라니 새끼를 붙잡아 왔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올라올 때까지 잠을 잤다는 것을 보면 잠꾸러기나 게으름뱅이 고라니에는 틀림이 없다.
전씨는 입양할 사람을 찾았지만 희망자가 없자 새끼 고라니를 붙잡은 곳에 가져다가 놓아주겠다고 했다.
자라면서 농사에 피해를 줄 것이지만 사로잡힌 새끼의 모습은 불쌍하기도 했다.
마음 속으로 제발 산속에서만 살고 밭에는 오지 말기를 바랬다.
사로잡힌 고라니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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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밑과 산기슭에 있는 밭에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때로는 경험하기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런 희귀한 경험은 반복되는 농사일의 단조로움 속에 변화와 파격을 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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