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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무시무시한(?) 멧돼지의 공격 예고

전업농은 아니지만 텃밭 농사나 주말농장보다는 규모가 큰 농사를 짓는지 20년이 되어 간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였고 조합에도 가입하였으니 형식상은 농업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고 농업소득이 주된 수입원이 아니기 때문에 농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분들이 보면 규모가 크지만 전업농들이 보기에는 소꿉장난 같이 보일 수도 있는 규모다.


어쨌든 밭에 농작물을 심고 가꾸다 보니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농민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은 모두 겪게  된다.

밭에 거름을 펴고 심을 준비를 하고, 심고 가꾸고 거두는 수고는 농사를 짓는다면 누구에게나 의무사항이니 애로사항이라고 할 수 없다.

가뭄이나 수해 습해 병충해 등도 농사를 힘들게 하는 일이지만 자연이 하는 일이니 내 능력밖의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할 수도 있다.


정말 힘들고 화가 나는 것은 동물에 의한 피해다.

이는 가해자가 분명하고, 때로는 마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농사에 피해를 주는 동물들은 쥐, 두더지, 너구리, 고라니, 멧돼지 등 짐승들과 비둘기와 까치 등 새들이다.

쥐와 두더지는 눈에 띄기가 어렵고 한꺼번에 큰 피해를 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경이 덜 쓰이는 동물들이다.

비둘기, 까치 등 조류는 파종한 씨앗을 먹어치우거나 싹이트는 떡잎을 먹어치워 아예 곡식이 자라는 것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포트를 해서 발아를 시키고 모종을 하거나, 모를 붓고 망으로 덮어 주어 싹트는 씨앗을 보호해야 한다.

또 새들은 수확기의 낟알을 먹어치운다.

까치는 옥수수를 파먹고, 땅콩을 기가 막히게 캐먹는다.

새들은 수수의 낟알이 여물기 전에 즙액을 빨아먹거나 낟알을 먹어 수수이삭을 껍질만 남게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줏대를 박고 망을 씌워 주어야 하는 데 엄청난 노동력이 소요된다.


고라니는 콩과 고구마 등의 잎을 먹어 치운다.

고라니는 집념이 강한 짐승이어서 한번 온 곳은 계속해서 오기 때문에 고라니가 오는 밭의 농작물은 수확을 할 수가 없다.

고라니의 식성이 변했는지 전에는 잘 먹지 않던 고춧잎까지 먹어 치워 고추 재배농가를 힘들게 하고 있다.


멧돼지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먹는 양도 많다.

또 개별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어미와 새끼 몇마리가 집단으로 포식행위를 하기 때문에 멧돼지가 한번 덮치면 몇백평의 밭은 한꺼번에 결단나게 된다.

고구마 땅콩 옥수수 등을 먹어치우는 데 후각이 발달된 멧돼지는 수확하기 하루 이틀 전에 습격을 하여 농민들의 몇달

고생을 하룻밤에 무위(無爲)로 돌리고 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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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 멧돼지와 고라니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나서 영농계획을 할 때는 고라니와 멧돼지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었다.

철망 울타리를 해서 방어시설이 되어 있는 학곡리 밭에는 옥수수 고구마 땅콩 등을 재배하지만,

방어시설이 없고 산밑에 있는 수동리 밭에는 멧돼지나 고라니가 포식하지 않는 농작물(들깨, 참깨, 감자, 수수, 조 등)을

심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곡리 밭이 좁아 수동리 밭에 짐승의 피해 가능성이 있는 농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는 데에 있다.

옥수수를 포트에 심어 싹을 틔워 일정기간동안 키워서 밭에 옮겨 심으면 조기 수확이 가능하다.

3월 하순에 하우스 안에서 포트를 하여 싹을 틔워 4월 하순에 모종을 하면 7월 중순경에 수확이 가능하다.

멧돼지는 통상적으로 7월 하순경에 밭에 내려옴으로 옥수수를 조기 재배하면 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지난 3년간 이런 방법으로 멧돼지의 습격을 피하여 옥수수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멧돼지는 수확을 끝내고 몇개 남지 않은 여물지 않은 옥수수가 있는 밭을 습격하여 먹을 것을 찾지 못하자 화가난 듯

남은 옥수수 그루를 짓밟고 갔다.


금년도에도 멧돼지의 이런 습성을 이용해서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가 자라 개꼬리가 나오고, 수염이 난 옥수수 이삭이 달려 여물기 시작하는 단계가 되었다.

그런데 6월 28일 밭에 가보니 옥수수가 이상하였다.

옥수수 몇그루가 꺾여 있거나 쓰러져 있었다.

고라니가 옥수수 대궁을 꺾고 새로 달리기 시작한 옥수수 자루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처음에는 고라니의

행동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웃집 아주머니가 멧돼지의 짓이라고 하였다.

밭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10포기 정도의 옥수수가 일열로 쓰러져 있다.

또 막 달리기 시작한 옥수수 자루를 씹어서 짓이겨 놓은 것이 보였다.

배고픈 멧돼지가 옥수수 밭을 습격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수확기가 많이 남은 옥수수가 덜 여물었기 때문에 맛만 보고 먹기를 포기하고 간 것이다.

수확기가 가까우면 거의 틀림없이 밭을 덮칠 것이다.




멧돼지가  정찰을 하고 간 자취(6. 28)


멧돼지가 덮치면 포트를 만들고 모종을 하고 비료를 주고 가물어 물을 주고 정성을 들여 가꾼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다른 해와 달리 멧돼지가 예고를 했지만 막을 방법이 신통하지 않다.

멧돼지가 싫어 하는 기피제를 놓는 방법도 있지만 가격도 비싸고 효과도 확실하지 않다.

울타리를 치자니 일손이 딸리고 철주를 박고 철망으로 울타리를 하지 않는 한 고라니를 막는 울타리로 멧돼지를

막을 수가 없다.

공항 탑승구 입구처럼 구불구불한 그물망 울타리를 쳐서 멧돼지가 울타리를 무너뜨리면 옥수수와 그물망이 얽혀서

일부나마 포식을 피하게 하는 방법이 떠오르지만 문제는 지줏대를 박고 그물망 울타리를 치는 노력이다.


장마가 지고 나니 다른 급하게 할 일이 많이 생긴다.

날이 뜨거워 한낮에는 일을 하지 못하고 제한된 시간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다 보니 옥수수에 멧돼지

방어시설을 하는 것은 자꾸 미루어지고 있다.

옥수수는 여물어 가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이래저래 속만 타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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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돼지가 초토화시킨 밭의 모습들


멧돼지가 습격한 옥수수 밭(2011. 8. 6)



멧돼지가 습격한 땅콩밭  2011. 8, 6)






멧돼지가 습격한 뚱딴지 밭(2017. 11. 13)

뚱딴지를 주인이 수확할 것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