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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너무나 극단적인 선택, 정말 이 길밖에는 없었는가?

요즈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의 몇위를 차지할 정도로 자살자수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잘 아는 사람이나 그의 가족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여러번 접하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망감과  현실의 벽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하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을 생각하였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대폭 감소할 것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 한때 현실이 괴롭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생각을 하였던 적이 있다.

다만 그 생각을 구체화하거나 실행하려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한 경험을 가진 분들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인생을 회고하는 시점인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힘든 고비였고, 이 위기를 지나고 나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경우도 거의 대부분은 그 위기만 넘기면 새로운 활로가

생겼을 것이다.

이것을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승과 완전한 격리를 뜻한다면 세상을 등진 자는 고통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의 슬픔은  세상을 등진 자보다 몇배 아니 몇십배가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의 주변에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슬픔속에서 파행적인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이들이 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은 자들에게 너무 큰 짐을 떠넘긴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작년 9월 하순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50세 가량의 가정주부가 아파트에서 투신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래는 그날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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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90년사 편찬 관계로 총동창회 사무실에 갔었다.

편집회의를 하고 편집위원들과 같이 회영루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 돌아온 후 쉬는 데 전화가 왔다. 급히 차를 빼달라는 것이었다.

주차 장소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누가 투신을 했다고 했다.

내 차를 움직여야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고 했다.

급하게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갔더니 가정주부가 투신을 하여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가 와 있었다.

즉시 차를 움직여서 다른 곳에 세워두고 가보았더니 구급대원들이 투신한 여자를 들것에 옮기고 차에 실었다.

초등학교 5-6학년쯤 된 여자 아이가 울면서 따라가려 했으나 태우지 않고 환자만 태워서 차는 출발을 했다.

아이는 울부짖으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으나 엄마가 투신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이에게 전화를 달라고 해서 아이의 아빠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이가 계속 울고 있어 이웃 아줌마들이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으나 혼자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 수속 중이라고 하면서 울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 있으려니 아내가 전화를 해서 밭으로 갔다.

차에서 짐을 내리는 데 차의 오른편에 피가 튀어 혈흔이 묻어 있었다.

 

물로 핏자국을 닦아냈다.

피를 닦아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차에 묻은 핏자국은 물로 닦아내면 되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 생긴 핏자국은 무엇으로 닦아낼까?

이제 12-3살된 아이는 부모의 이혼 소송과 별거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함께 있다가 투신을 했다.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이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추락하면서 나무에 걸려 충격이 완화되고 화단이 흙이라서 충격이 또 완화되어 일단 생명은 구했으나 호흡만 할 뿐 의식은 없었다고 한다.

차에 튄 핏자국으로 보아 나무와 부딪히면서 몸에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아이의 엄마가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다.

엄마의 의식이 회복되고 상처가 치유된다고 해도 아이의 충격과 놀램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될 것 같다.

큰 충격을 받은 어린이가 심리적 외상을 속히 치유하고 정상적으로 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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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에 들은 이야기다.

투신을 한 가정주부는 딸이 투신하려는 엄마를 붙잡았는 데 뿌리치고 뛰어 내렸다고 한다.

나무에 떨어지면서 나무가지가 부러져서 치명상을 입혔기 때문에 다음 날 불행하게 사망하였다고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 데 전년에도 한번 투신 소동을 벌려 119가 출동하고 경찰관이 옥상에 가서 설득을 하여 투신을 막았다고 한다.

추락하려는 엄마를 붙잡았으나 힘이 부쳐서 끝까지 이를 막지 못한 데 대한 상처가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될 것이다.

투신을 하여도 아이가 안보는 데서 할 일이지 하필이면 아이가 붙잡는 데 이를 뿌리치고 뛰어내려야 했을까?

딸이 받게 될 마음의 상처를 조금만 생각하였다면 딸 앞에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조금만 폭을 넓혀서 생각한다면

남아있을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