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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맨손으로 사로잡은 꿩

 

 

수주대토()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나무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춘추전국시대)의 어느 농부가 밭가운데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딛쳐 죽는 것을 보고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서

토끼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있는 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꼬는 고사라고 한다.

나무그루터기에 뛰어 오던 토끼가 부딪쳐 죽는 바람에 농부가 횡재를 한 비슷한 일이 9월 24일에 나에게도 일어났다.

한삼덩굴 밑에서 덩굴에 걸려 퍼덕이던 어린 장끼(수꿩)을 맨손으로 잡은 것이다.

 

활동성이 있는 살아있는 동물을 우연히 잡은 일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초임시절이었다. 여름방학때였다. 근무를 하는 날이라 학교에 출근을 했다.

당시 학교의 시설관리가 잘 되지 않아 교실에는 깨진 유리창이 많았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아 학교는 텅비었고, 학교에는 근무조 교사와 행정실 직원들만 몇명이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교무실에는 내또래 여교사인 조선생과 둘이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교실을 순시하러 2층에 올라갔는 데 참새 한마리가 유리창에 갇혀서 퍼덕이고 있었다.

유리창에 붙은 파리가 유리창이 투명하니까 밖으로 가려고 유리창에 붙어서 퍼덕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뒤에서 다가가자 참새는 도망을 가려 했지만 유리창을 통과하여 가려고 하니 유리창에 붙어서 퍼덕일 뿐이었다.

나는 손쉽게 참새를 잡아서 교무실로 왔다.

조선생에게 참새를 맨손으로 잡았다고 하니 죽은 참새거나 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참새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활동성이 있는 참새라고 하자 조선생은 날려 보라고 했다.

유리창을 열고 참새를 놓아주니 참새는 힘차게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참새를 두번이나 더 잡은 적이 있었다.

 

횡성에서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동료교사와 같이 저수지에 낚시를 갔다.

지렁이를 미끼로 붕어를 낚으려 했는 데 시골이라 쉽게 구할 줄 알았던 지렁이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지렁이가 있을만한 땅을 파보았지만 지렁이 구경을 할 수 없었다.

겨우 작은 지렁이 몇마리를 잡아서 저수지로 갔는 데 붕어가 낚이지를 않았다.

낚시에 흥미를 잃고 돌아가려고 하는 데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양파망에 무엇을 잡아서 돌아가고 있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우렁이였다.

낚시에 열중하느라 그 어린이가 우렁이를 잡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엇다.

우렁이를 어떻게 잡느냐고 물어보니 가르쳐 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내년에 우리를 볼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니(?) 눈치가 빠른 아이는 중학교에 안갈 것이라고 쏘아붙이고는 집으로 가버렸다.

 

같이 낚시를 하던 선배인 김선생님과 나는 저수지를 쌓은 돌틈에 손을 넣어 더듬적 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우렁이가 돌틈에 서식하지 않는가 해서였다.

그러나 우렁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돌틈에 손을 넣었더니 무엇인가를 잡은 것 같은 촉감이 느껴졌다.

물고기인 것 같았다. 한참 실랑질을 하다가 손을 빼어 보니 15cm쯤 되는 붕어 한마리가 딸려 나온다.

넓은 저수지에서 돌틈에 있던 붕어를 보지도 않고 맨손으로 움켜낸 것이다.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붕어 한마리를 가지고 가 보아야 의미가 없었다.

물에 방생을 하였다.

결국 낚시를 간다고 멀리 자전거를 타고 저수지에 갔지만 붕어고 잡어고 우렁이고 간에 한마리도 못잡고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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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전인 9월 24일의 일이었다.

밭옆에 차를 세우고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데 아내가 한삼덩굴 아래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덩굴밑에서 퍼덕이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소리를 무시하고 밭에 들어가서 작업준비를 하여 놓고 울타리 밑에 심은 호박이 달린 것이 있는지를 보려고 덩굴 옆을 지나는 데

계속 소리가 났다.

낫으로 덩굴을 걷으며 앞으로 가니 퍼덕이는 소리가 덩굴의 끝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어떤 동물이 도망을 가는 것 같았다.

마침내 덩굴의 끝부분에 이르렀을 때 궁금증을 자아내던 동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한마리의 새였다.

덩굴에 갇혀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불쌍한 새는 내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붙잡아서 자세히 보니 어린 장끼였다.

 

 

 

한삼덩굴 속에 갇혀 있다가 필자에게 사로잡힌 어린 장끼

 

좀 더 컸다면 꿩만두를 해먹을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잡아먹기에는 어려서 사진만 찍고 놓아주려고 생각했다.

손에 잡힌 꿩은 반항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크게 다쳤거나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밭에 들어 와서 한손으로는 꿩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핸드폰 카메라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셔터를 누리기도 힘들었고 한손으로 잡고 찍으니 꿩의 전신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아내를 불렀다.

아내에게 꿩을 잘 붙잡고 있으라고 하고 두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전체 모습을 찍으려고 시도를 했다.

한판을 찍고 더 좋은 모습의 사진을 찍으려 하는 순간 꿩은 아내의 손을 벗어나 거의 수직으로 상승을 하며 날아갔다.

아마 꿩이 위장술을 써서 사람을 안심시키고 방심한 사이에 탈출한 것 같았다.

꿩이 협조를 하여 주지 않아 멋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내가 또 꿩이 오기를 기다리며 한삼덩굴 옆에서 기다린다면 위에서 말한 그루터기 옆에서 토끼 오기를 기다리는 농부와 같을 것이다.

맨손으로 꿩을 잡는 것 같은 우연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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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위에서와 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상못할 일은 행운으로 또는 악운으로 부딛치게 된다.

우연이지만 준비되어 있을 때 행운을 잡을 수도 있고 불운을 막을 수도 있다.

더러는 준비하고 기다리는 데 우연처럼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1993년 1월 부여와 공주를 여행할 때였다.

공주박물관을 관람하고 무령왕릉을 보기 위해서 송산리 고분군으로 갔다.

무령왕릉은 보존을 위해 폐쇄를 한 상태라 왕릉의 내부룰 관람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다 보니 왕릉의 문이 열려 있었다.

아내와 같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릉 내부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비디오 카메라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1971년 릉의 발굴에 참여했던 분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봉쇄된 왕릉에 들어가서 20여년전에 직접 발굴을 한 학자로부터 발굴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작년(2014년) 7월 29일에 춘천 중도의 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유물 발굴현장을 방문한 것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레고랜드 조성사업을 위해 사전에 유적과 유물 조사를 했는 데 29일 하루만 오후에 두시간 정도 공개하였다.

후배에게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가보니 발굴한 유적지의 규모가 상상외였고 발굴한 유물도 박물관을 지을만큼 어머어마한 양이었다.

전문학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이 이런 현장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역시 평생에 몇번 얻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한다.

행운이란 예상하지 못해던 때에 우연히 찾아오지만 준비된 사람만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