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만나고 부대끼는 과정에서 서로 호감을 가지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늘 좋은 관계만 맺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는 경우도 있고, 부담을 느끼며 대면해야 하는 관계도 있다.
많은 만남 중에는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왔을 그런 만남도 있다.
학교나 직장 군대 이웃에서 특별히 갈등을 일으키며 사는 경우들이 종종있다.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해자에게 응어리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라는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왔을 그런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만남에 대해 쓰려면 한이 없겠지만 본고에서는 사제간의 만남에 대한 한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는 철이 들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6년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교직을 평생직장으로 생활하다가 퇴직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 경험의 범위는 주로 학교와 관련이 되는 좁은 범위일 수밖에 없다.
본고에서는 스승승과 제자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만남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필자의 경우는 교직생활 기간 중 은사님과 같이 근무한 경우는 초임 시절 두차례 뿐이었다.
처음 부임하였을 때 교감선생님이 고교시절 선생님이었지만 직접 우리반 수업을 담당하지시는 않았다.
그렇지만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교사로 은사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의지가 되었다.
두번째도 역시 같은 학교에서 은사님을 교감선생님으로 만났다.
직접 수업을 담당하셨고 내가 선생님의 과목에 흥미가 있었고 성적도 좋왔기 때문에 학생때도 선생님의 인정을 받았었다.
1년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교감과 교사라는 공적인 관계를 떠나 사제간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후 오랜 기간 동안 선생님께 새해에는 세배를 갔었다.
10여년전의 일이다. 하루는 카풀을 해서 출근하는 데 교장선생님께서 원로 교장선생님 몇분이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성함을 여쭈어 보니 은사님이 계셨다.
제자인 내가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씀 드려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2교시가 끝나고 교무실에 오니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은사님이 병환으로 오시지 못했으니 점심식사 대접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몇달 후 은사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그때 찾아뵙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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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경우는 나를 가르쳐 주신 스승님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갔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고교 동기인 S가 그런 경우다.
고교 시절 선생님 한분의 이야기다.
당시 선생님은 40세 정도였는 데 상담부장의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다.
선생님의 인상도 중후하셨고 수업시간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선생님은 검정고시를 거쳐서 교사가 된 분이었는 데 후에 교장과 교육장을 역임하셨다.
선생님이 퇴임을 하신 후의 일이다.
S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을 호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아주 나쁜 인간이라고 했다.
내가 반문을 했다. 어떻게 스승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S는 그런 이유를 말했다.
처음 공무원을 나갔을 때 학교 서무과(지금의 행정실)에서 근무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 학교 교장으로 근무하셔서 사제간이 한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행정실 업무가 학교 살림을 맡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S는 출납 업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예산의 집행과정을 잘알 수밖에 없었다.
교장선생님이 예산을 불투명하게 집행을 하고 일부를 착복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예산의 수립과 집행과정이 투명해졌고,
예산의 수립과 집행이 실무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정의 소지가 많이 줄었지만 당시는 그러지 못했다.
당시 학교의 예산 집행은 행정실과 학교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업무도 전산화되어 있지 않았고
학교장의 재량권이 넓었기 때문에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공금을 유용할 소지가 컸었다.
물론 상부기관에서 정기적인 감사를 하여 부정을 막고자 했지만 단위 기관에서 증빙서류만 잘 갖추어 놓으면 그물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은 아주 컸었다.
교장선생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금의 일부를 유용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후원금의 일부도 손을 댔다고 한다.
S가 특히 분개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운동부 학생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일부만 쓰고 나머지를 교장이 유용을 하다보니 애들의 급식이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또 시설 공사를 하는 경우도 업자에게서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비품을 구입하는 경우 품질이 낮은 것을 구입하도록 압력을 가했는 데 이는 업자와 뒷거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탐욕에 이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욕설까지 섞어 가면서 옛 스승을 원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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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필자와 직접 인연을 맺은 분들의 이야기는 아닌 다른 사제지간의 이야기다.
횡성지역 어느 작은 중학교에 고교 시절 선생님과 담임을 했던 제자가 교감과 교사의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YMCA 중등교사 협의회(나중에 전교협을 거쳐 전교조로 발전)라는 임의 단체가 교육민주화 운동을 전개하던 시기였다.
당국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억압하여 집회가 있으면 참가를 막아 원천 봉쇄를 하려고 했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여 Y교사가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설득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활동 교사들은 장학사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효과가 높은 방법은 가까운 선배나 직속 상관을 통한 만류였다.
위의 학교의 교사는 Y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교사여서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만류하라는 지시가 학교장에게 떨어졌다.
교장선생님은 옛 담임었던 교감에게 참가를 막도록 설득하라고 부탁을 했을 것이다.
집회 참가 문제를 두고 사제지간에 의견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교사는 자신이 Y의 핵심적 인물로 집회를 주관해야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참석을 해야만 했다.
교감선생님은 상부 기관에서 참가를 막도록 지시를 받았으니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교감선생님은 자신이 옛날 담임이었으니 자신이 설득하면 제자가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의 만류에도 참가를 고집하였고 마침내는 언성이 높아지게 되었을 것이다.
화가 난 교감선생님은 이미 성년이 된 제자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 소문이 쫙 퍼졌었다.
이 사건을 두고 한편에서는 제자가 스승의 만류에 따랐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아무리 옛 제자라지만 30대인 교사의 뺨을 때린 것은 너무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활동하려던 제자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이를 만류해야 했던 스승 모두 딱한 처지였다.
스승과 제자는 타의에 의해서 서로 못할 일을 하고 말았다.
차라리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위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을 터인데..........
필자는 다행히 人福이 많아서 다소 꺼끄러운 관계의 만남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갈등 관계를 해소하였고 응어리진 감정을 계속 이어간 경우는 없었다.
이는 내가 남을 이해하려고 하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남 또한 나에게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나를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헤어졌다. 그리고 일부는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중에는 친밀하고 가까왔던 사람들도 있고, 그저 스쳐 지나간 경우도 있고,
만났을 당시에는 가까왔지만 서로의 삶에 바쁘다 보니 소식이 끊어져서 가끔씩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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