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범한 소시민의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이 블로그를 개설한 의도는 필자 스스로가 남보다 잘난 것이 없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필자가 젊었을 때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삶의 형태였다. 아니 삶의 정형이었다.
이는 필자의 연령층뿐 아니라 우리 형님이나 부모님 세대가 그랬다.
물론 평범한 삶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고 이 안에는 엄청 큰 편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란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하며 그 소득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가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기 위해 직장에서 눈치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상사의 부당한 억압에 대해서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남몰래 이를 삭여야 했고, 적은 수입때문에 아내에게 닥달을 당하기도 하고, 아이들 학비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다수의 가장들과 아내들이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어른들이 "헌 고무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또래들은 독신주의자가 아닌 이상 짝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 혹은 누구의 도움으로라도 수준에 맞는 짝을 찾아서 가정을 이루었다.
또 소득의 차이가 있고 직업에 대한 평판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일할 의사를 가진 한 어떤 직업이든 직업을 갖고 일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 또래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을 하고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전형적인 삶의 형태(라이프 사이클)를 보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해서 가족들을 부양할 생활비를 벌고, 아내는 안에서 살림을 하며 자녀들을 양육한다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선배들의 세대에서는 가정주부가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물론 농업이나 상업과 같은 직업의 경우는 자영업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종사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일을 하는 기혼여성들의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도 결혼을 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들어앉았다.
필자의 세대에는 큰 비중은 아니지만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꽤 있게 되었고 이 비중이 점점 높아지다가 어느때부터인가
부부가 같이 경제활동을 하는 맞벌이의 형태가 일반화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전문직종으로 진출이 증가한 이유도 있지만 둘이 벌지 않으면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절박한 이유가 맞벌이로 밀어내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평균소득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괜찮은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전에는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했지만 학력이 높아지고 자신과 부모들의 직업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하며 이른바 3D 업종에 대한 기피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선호하는 대부분의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학력이 요구되었다.
계층 상승욕구가 강한 우리민족이라 이는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경쟁으로 아이들을 내몰게 되었다.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학교는 학교대로 학생들에게 점수따기 경쟁을 강요하게 되고, 학교 교육만으로는 불안한 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을 충족시키기 위해 행정당국은 대학 정원을 늘려서 대응을 했다.
이는 더 높은 수준의 직업을 요구하게 되고, 이른바 괜찮은 직업은 한정되어 있는지라 취직을 위한 경쟁이 입시경쟁보다 훨씬 더 힘들게 되었다.
정보화로 인한 기술혁신은 인력을 절감하게 되어 사무직과 생산직에 종사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구조조정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본격화된 것이 IMF 사태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분하에 구조 조정이 이루어지며 수많은 실업이 발생하였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기왕에 뽑은 인원을 정리해고 하기에 앞서 신규채용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에 새로 노동현장에 유입되는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의 벽앞에 좌절하게 되는 사회 구조가 되었다.
정리해고와 청년실업은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세태를 나타내는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은 이미 고전적인 언어가 되었고 청년실신이니 돌취생이니 인구론이니 열정페이니 자소설이니 하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있다.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이미 고용되어 직장이 있는 사람도 직장이 불안하다.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삶을 살게 되니 자연 결혼을 못하거나 늦추게 된다.
또 "제먹을 것은 타고 난다"라고 하여 낳아만 놓으면 어쨌든 자라서 제 밥벌이는 하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자녀 한명을 양육하는 데 3억이 넘는 돈이 든다고 하니 자식 양육의 부담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앞선 세대의 다수가 살았던 삶의 일반적인 형태인 교육받고(조기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따라 살기 힘들게 되었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엄청나게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그저 물결에 떠밀리듯 앞선 세대가 했던 것을 따라하기만 하면 되었던 평범한 소시민의 삶이 이제는 점점 힘들게 되는 세대가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나라인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
또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는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은 소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삶을 경쟁력 향상이라는 미명속에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좋은 사회는 경쟁에 이기는 사람만 승자독식으로 모든 것을 누리고, 패배하는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패배자도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수 있고, 최소한의 삶은 보장되는 사회일 것이다.
얼마되지 않은 이른바 괜찮은 직장을 놓고 젊은이들은 피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취업에 성공한 소수라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무한경쟁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취업에 실패한 다수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수십번 수백번씩 입사 원서를 제출을 강요하게 되고, 끝내 성공하지 못하면 성공확율이 낮은 자영업으로 내몰리거나 아니면 평생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까지 생기게 된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는 자포자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게 되고 여러 부적응 행동이 나타나 개인에게는 불행이, 사회의 큰 부담이 되게 된다.
다수의 사람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누구나 제 먹을 것은 타고나며 헌 짚신도 짝이 있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공감되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다시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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