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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출산율 저하 - 어린이들이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과 농촌학교

농촌에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현상인데 한세대가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때 500명이 넘던 중학교가 50명도 안되게 학생수가 줄은 학교도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심지의 초등학교도 수천명이 다니던 학교가 한창때의 1/10 미만으로 학생이 줄어 통폐합 대상이 되는 경우까지 생겼다.

작년(2013년) 8월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하는 동창과 함께 농촌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인 모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교생이 50명이 안되었다. 한 학년이 10명을 넘는 학급이 한 두 학급밖에 되지 않았다.

6.25동이인 우리 동기도 30명 가까이 졸업을 했고 몇년 후배들은 한 학년이 100명은 넘기도 했는 데 지금은 그 1/10미만으로 감소했다.

 

아기 울음 소리가 멈춘 농촌 마을이 허다하다.

한때 아이들이 북적대던 골목은 가끔씩 노인들만 지나다니는 길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고 하여 큰 우려가 되고 있다.

한 여자가 낳은 평균 출산율이 1.2명정도라고 한다. 인구가 감소될 것은 자명한 일.

이러다가는 3-4백년 후에는 한민족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통계자료도 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전만 하여도 엄청난 인구증가가 큰 문제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 한해에 대구시만한 인구가(80만) 늘어난다고 하였다.

인구 증가율이 2.9%에 달했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는 큰 전쟁을 겪었던 다른 나라가 그랬듯이 베이붐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한해에 100만명에 가까운 아기들이 태어났다.

베이붐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자라서 우리나라 경제를 도약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는 데 지금 이들은 은퇴를 시작하였다.

 

'50년대말부터 인구증가 억제를 위한 정책이 논의되다가 5.16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부에서 가족계획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사회과와 과학과의 관련 교과에서 인구문제에 대한 단원을 설정하고 인구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인구증가 억제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6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한 1974년은 베이붐 세대가 중학교로 몰려들던 시대였다.

중학교는 한 학급 정원이 70명인데 필자는 78명인 학급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중학교는 '80년대 중반에 학급당 인원이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학급당 인원이 35명내외로 한세대 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제는 아기를 낳지 않아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출산율을 높히기 위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어떤 정책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 격감에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어 한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아기를 양육하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고 양육하여도 부모가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너무 적기 때문에 출산을 기피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세대에는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했다.

또 자식들은 농사를 짓는데 꼭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적어도 농사를 지을 땅이 있는 경우 자식들은 노동력과 노후 보장을 담보하는 큰 자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어른들은 제먹을 것은 제가 타고 난다고 말씀하셨다.

낳아만 놓으면 어쨌든 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성들도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사를 전담하던 시절보다 아기를 기르는 것이 훨씬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게 되었다.

임신 진단부터 비용이 들기 시작한다. 아기 양육에 많은 돈이 들어야 한다. 특히 교육비는 가계를 휘청거리게 한다.

과열경쟁으로 인한 사교육비 지출 과다는 서민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교육이 끝난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종결되는 것도 아니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부모가 취업준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자녀의 결혼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도 상당부분 부모가 부담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취업을 못한 자식을 위해 창업자금을 대거나 사업이 어려운 자식을 위해 운영자금을 대는 데까지 이르면 자신의 노후 준비는 소홇하게 된다.

자식이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후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또 능력이 있는 자식이라도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과거 농경사회가 아니고 대부분 아파트로 주거 환경이 바뀌어 설사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싶다고 해도 모시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부모가 농촌에 거주하고 자식이 도시에 가서 생활하는 경우가 아니라도 부모와 자식이 따로 독립하여 사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나중에 혼자 생활할 수 없으면 요양원으로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지금 세대의 노년의 삶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육아의 어려움과 많은 비용 지출과 성년 이후에도 자식을 돌보아야 하는 부모의 일방적인 부담만 있을 뿐 노후 보장에 대한 기대가 어렵게 되자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다.

또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의 등장과 만혼도 출산율 저하에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개인의 일로만 맡겨 두고 방관할 때가 아니다.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국가나 지자체가 부담하고 육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한명, 많아야 두명 정도만 출산하거나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 이를 선택한 개인은 분명 육아로 인한 부담을 줄이고 개인의 생활에 투입할 자원을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모든 젊은이들이 이런 방법의 생활양식을 선택하게 될 때 국가라는 생태계는 쇠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은 현명한 선택을 했지만 그가 속한 집단에는 재앙이 되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농촌 마을서 다시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