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때 배운 노래 중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잠꾸러기는 게으름뱅이고 늦잠을 자는 것은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배웠다.
여름방학때는 마을별로 조기회라는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조기회에 출석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같은 마을에 사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매일 아침 6시까지 마을 공터에 모여 상급생의 지도로 출석을 부르고 체조를 하고 헤어졌다.
선생님이 돌아보신다고 했지만 오신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조기회에 결석하면 개학후 혼나는 것으로 알고 거의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아침마다 조기회를 한 것은 방학때 아이들이 늦잠을 자는 등 생활습관이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아침형 인간이 되도록 교육을 받는다.
지각을 한다는 것은 규칙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게으른 학생으로 담임선생님의 특별지도 대상이었다.
내 경우 아침형 인간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었다.
중학교 2-3학년때는 십리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을 했는 데 가끔 지각을 했다.
일찍 일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집에 계셨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다른 곳에서 근무하시는 관계로 평소에는 집에 안계셨기 때문에 게으름이 가능했었다.
어머니의 엄명을 받은 동생들이 깨웠지만 마지막에 어머니의 엄명이 있고서야 일어나곤 했었다.
고등학교를 온 후에는 철저한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했다.
고3 올라가기 직전 한창 공부에 몰두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다가 등교를 했다.
우리반에서 가장 먼저 등교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2학기 들어 체력이 달리고 지쳐서 끝까지 전력질주를 하지 못한 것이 대입에 낙방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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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철저한 아침형 인간은 못되었다.
몸이 아파서 늦은 경우외에는 한번도 지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일찍 출근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억지로 일어나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데 바빴었다.
다행히 먼거리를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원거리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보다는 아침에 여유가 있었다.
내 자신이 부지런하지 못하면서도 지각하는 녀석들은 엄하게 다루었다.
지각을 하면 심하게 질책을 받거나 청소를 해야 했다.
원거리에서 다니는 애들이 지각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각을 하는 녀석들은 거의가 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녀석들이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시골에서 근무할 때 아침을 먹지 않고 등교하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85년 춘천에 와보니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춘천여중의 최승희 교장선생님은 여학생들의 생활습관을 잘 이해하고 계셨던 것 같다.
다른 학교보다 20분정도 늦게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아침 자율학습을 하고 조회를 하고 9시쯤 1교시 수업을 시작하였는 데
최교장선생님은 등교 즉시 1교시 수업을 시작하게 하였다.
1교시가 끝나고 교직원 조회를 하고 학생들의 아침조회를 하였다.
주번교사(당시에는 주번교사제도가 있었다) 당번때 교실을 돌아보면 그때 도시락을 먹거나 매점에서 빵 등을 사다 먹는 아이들이 많았다.
1교시를 끝내고 조회를 하는 것은 교장선생님께서 아침식사를 못한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개출석 학급(결석이 한명도 없는 학급)을 만드는 것이 담임들의 목표였다.
한달간 개출석인 학급은 많았고, 아주 드물지만 1년간 개출석 학급의 신화를 만든 학급도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무리하게 개출석 학급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교직생활 10년이 넘도록 아침 결식을 하는 경우 학생 본인이 게을러서 식사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챙져주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우리 세대에게는 식량이 떨어졌다면 몰라도 엄마가 게을러서 애들 아침을 굶겨 등교시킨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늦게 일어나서 아이들이 아침을 먹지 못하고 등교하는 경우도 드문 경우지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춘중에 근무할 때였다.
진호라는 녀석은 거의 매일 조회를 시작 시간에 맞추어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들어왔다.
때로는 지각을 하기도 했다.
진호 엄마의 이야기로는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해 매일같이 등교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회 시간에 진호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늦나보다 하였는 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3교시가 시작되었는 데도 등교를 하지 않았다.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엄마의 말이 아침에 깨우다가 지쳐서 그냥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진호녀석은 4교시가 시작되고 나서야 등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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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에선가 저녁형 인간이 증가하고 있고 젊은이들 중 저녁형 인간이 많다고 보도하였다.
자식들의 생활습관을 보면 이말이 이해가 갔다.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이나 방학때면 예외없이 늦잠을 잤다.
성년이 넘은 자식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니 그대로 둘 수밖에....
12시가 다되어서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하고 새벽이 다되어서야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올빼미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아침 잠이 없어져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아침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그때문이라고 했다.
40이 넘으면서 내 자신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같으면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하기가 바빴을 터인데 40대 중반이 되자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장에 가서
아침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퇴직을 하기 전 4년간 집을 떠나 홍천에서 근무하였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터밭에 나가 일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하였다.
아침형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은 아침형 인간이다.
여름 한낮에는 온도가 30도를 넘는다. 이때 일을 하다가는 열사병에 걸리기 쉽다.
여름에는 한낮에 일을 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날이 밝아서부터 한낮 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 아침형 인간이 요구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가지 이유는 밤이 되어 캄캄하면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해가 있을 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등잔불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아침형 인간의 필요성은 감소하게 된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으니 굳이 해가 있을 때 일을 마쳐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통금이 없고 상가나 거리가 환하니 밤에도 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낮에는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던 일도 밤에는 집중적으로 학습을 하거나 과제해결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의 성격과 사회구조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니 저녁형 인간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교육행정을 맡고 있는 서울, 강원 등의 지방에서 9시 등교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저녁형 인간으로 바뀌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어떤 경우든지 부지런한 인간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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