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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짝퉁이 판을 치는 시대

필자가 고3때인 41년전의 일이다.

시립 문화관에서 안병욱 교수님을 초청하여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으나 안교수님이 '순 진짜 참기름 팝니다'라는 간판의 표제를 화두로 불신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했던 것이 분명하게 기억난다.

 

참기름 자체가 기름 중의 기름이라는 뜻인데 '진짜'라는 말로도 모자라 '순'자까지 넣어서 참기름이 진품임을 강조해야 하는 불신시대를 안박사님은 탄식했다.

그후 40년이 더 흘렀지만 불신시대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말이 있다.

어떤 물건이 있을 때 독일 사람은 얼마나 튼튼한가를 따지고, 프랑스 사람은 디자인을 따지고, 미국 사람은 경제성을 따지는 데 우리나라 사람은 물건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따진다고 하였다.

한때 우리나라가 짝퉁 물건의 왕국이었던 적이 있다.

세계 유명 제품의 짝퉁이 우리나라에서 쏟아저 나왔다.

보통 사람은 진위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온갖 짝퉁물건이 생산되어 수출까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진짜를 만드는 나라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경제가 발전하고, 통상이 확대되며 짝퉁의 생산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등에서 짝퉁 한국산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짝퉁 라면, 초코파이 등에서부터 짝퉁 한국산 승용차까지 생산이 되게 되었다.

이렇게 짝퉁 왕국을 중국에 넘겨 주었지만 가짜나 짝퉁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을까?

 

물건의 짝퉁으로 인한 불신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공산품 등에서는 짝퉁이 줄었지만 식품 등에서는 아직도 짝퉁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양식 물고기를 자연산이라고 속이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 하다.

관행 농법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유기농 제품이라고 속이는 경우는 유기농 제품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유기농 생산 농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가져 온다.

중국산을 국산 농산물이라고 속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속인 사람은 일시적인 이익을 얻겠지만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은 판로가 막히게 되고 마침내는 가짜에게 밀려서 도산하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나 호주산 등으로 속여 팔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정부의 대책을 불신하게 된다.

 

과거 단순히 물건의 짝퉁에서 이제는 우리 삶의 전 영역으로 짝퉁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위조 문서도 일종의 짝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학위 역시 일종의 짝퉁이다.

심지어는 행사장에 함께 나가 부모를 대행하는 짝퉁 부모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아니, 상견례에까지 함께 나가는 짝퉁 부모가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데 더욱 기가막힐 일은 짝퉁 종교까지 생겨서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4일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한국의 신흥종교를 연구하다가 순교한 고 탁명환 장로의 차남인 탁지원 소장을 초청하여 특강을 실시한 일이 있었다.

필자는 30여년전 고 탁명환 장로님과 서신을 교환한 일도 있고, 그분의 책을 여러 권 읽었고, 직접 강연을 들은 적도 있기에 고인의 뒤를 이은 둘째 아드님의 강연을 관심이 있게 들었다.

 

한 세대를 격한 두 부자분의 강연을 들으며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 탁명환 소장이 한국의 신흥종교를 연구하던 때에는 이단이나 사이비로 지목을 받던 신흥종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당시의 통일교, 전도관(천부교), 동방교, 용화교(불교계) 등은 그 명칭에서부터 다른 교파와는 구분이 되었고 정체성이 분명하여 정통 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종단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탁지원 소장의 강연에서는 이름만 보고 그 정체성을 알 수 없게 소위 이단 사이비 종파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정통 기독교단이 아닌데 00장로교회, 00침례교회 등 정통 기독교단의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00선교회 등 정통 교단의 산하단체의 이름을 사용하여 정통 교단과 이름만 가지고는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건 짝퉁 시대가 사라지면서 종교 짝퉁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재학시절 전도를 강조하던 학원 선교단체에서 양육을 받은 일이 있다.

이때 거리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 전도를 하기도 하였는 데,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라는 말로 대화의 끝맺음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교회 간판만 보고 아무 교회나 출석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00학교, 00의원, 00성당 등은 어느 곳이라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공신력을 갖고 있어서 마음을 놓고 자신을 맡길 수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알지 못하는 교회를 처음 나갈 때 어떤 곳인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세태가 되었다.

 

정통을 가장한 사이비 종단의 전략 때문에 건전한 교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짝퉁 교회를 만든 사이비들이 행하는 잘못된 행위로 인한 비난까지 진짜 교회가 고스런히 떠맡는 부담까지 지게 되었다.

마치 짝퉁 때문에 손해를 보는 진품과 같이.....

짝퉁 물건은 이제 종교까지 짝퉁이 출현하게 하고, 교회에도 짝퉁이 나타나게 되었다.

참으로 어지러운 짝퉁의 전성시대가 아닐 수가 없다.

 

2008년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