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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꼴찌에 대한 소고

경쟁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등과 꼴찌가 있기 마련이다. 마라톤에서 모든 주자가 동시에 결승점에 도달한다거나

똑같이 우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경쟁에서 우승자나 승자에게는 찬사와 영광이 주어진다.

그러나 꼴찌는 패자는 남의 눈을 피해서 퇴장해야 하고 혼자서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한 개인의 일생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입시도 경쟁에 의한 선발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학력을 평가하는 제도도 경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입시에서 합격자에게는 찬사와 축하의 말이 주어진다.

가장 많은 찬사가 주어지고, 합격자가 큰 긍지를 느끼는 시험은 경쟁이 치열한 시험이다.

일류 학교를 나왔다고 긍지를 갖는 사람의 뒤에는 좌절한 훨씬 많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학교 시험에서도 결과에 완전히 초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경쟁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일등이나 상위권에 들기 위해,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질책을 면하기 위해, 꼴찌라도 면하기 위해.

모든 경쟁에서 꼴찌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다.

그러고 보면 사회는 분명 승자만 살아 갈 수 있는, 경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Dawin의 적자생존의 살벌한 사회로 비쳐진다.

그러면, 모든 꼴찌가, 꼴찌에서 가까운 사람이 인생의 꼴찌가 될까? 생의 낙오자가 될까?

인생의 묘미는 어느 슈퍼리그의 축구시합처럼, 모래 위의 씨름판처럼 한판 승부로 일등과 꼴찌가,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욱이 시합의 종류가 단 한가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시합(game)에서 꼴찌가 다른 시합에서 반드시 꼴찌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태어날 때 모든 사람에게 한가지씩의 재능은 다 주셨다. 학교 교육에서는 지적 능력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특수한 능력을 가진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표현할 기회가 없어 뒤로 쳐지게 된다. 도무지 자신의 재능을 표현할 기회가 없다.

그러기에 학교의 열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되는 경우도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 일시적으로 경쟁에 탈락되었다고, 학업성적이 저조하다고 삶 자체를 비관하지 말라.

인생은 한판 승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한 가지 시합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학교생활에 충실해야 사회생활에도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성실히 생활하면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받는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성실한 생활태도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한 설사 지적 능력이 부족하여 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사회의 우등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승자는 자만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여 내일의 영광을 쟁취하기를,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가 되기 위해 분발하기를 바란다.

"Slow and steady  -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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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의 결론으로 써놓았던 위의 문구는 고3  마지막 영어 시간에 영어선생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느릿느릿 정신과도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1984년 11월 정선 고한여중 학교 문집에 올렸던 글로 2004년 2004년 6월 3일 박철 목사님이 운영하는 홈피 느릿느릿에 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