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교장선생님을 만난 것은 교장선생님이 방산중학교에 부임하기 위해 도착하신 다음 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아침 6시쯤 일어나 운동장에 나갔는 데 테니스코트가 있는 쪽에서 당시 교무부장이던 이호성부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계신 교장선생님을 뵈었다.
나는 처음 교장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듣기에는 교장선생님은 환갑을 넘기신 연배라고 들었는 데 테니스코트 옆에 서 계시는 분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분이어서 일순간 정신의 혼란을 가져왔다.
그래도 교장선생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사를 드리러 가니 이호성부장님이 교장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하시는 것이었다.
이것이 교장선생님과 나와의 첫만남이었다.
너무 젊어 보이는 그리고, 인자하심이 외모에 풍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제자인 박선석선생님(원주중 과학교사)이 중학교때의 스승이신 교장선생님에 대하여 존경하는 스승이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훌륭하신 교장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하였다.
더욱이 나와는 같은 과목이라서 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1년반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교장선생님과 한 학교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을 두서없이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교장선생님은 전공 교과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의 제자이신 박선석선생의 말에 따르면 교장선생님이 평교사시절 어려운 과학교과를 잘 지도하여 주셔서 교장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학급은 항상 다른 학급보다 앞서 갔다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교과 지도에는 역량이 있으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교장선생님과 같이 근무하며 교장선생님의 교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에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이 장학직과 교감으로 계시는 기간이 10년이 넘으셨다니까 현장에서 직접 수업을 하신 것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이나 과학교과는 수업을 하지 않으면 교과 내용을 많이 잊어 버리게 된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물리(교장선생님의 전공은 생물이시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교장 선생님의 교과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소규모 학교라 내가 업무에 바빠 경시대회를 지도할 수 없음을 아시고 교장선생님은 3학년 해당 학생들을 불러서 직접 교재를 작성하여 배부하시고 물리나 화학의 고난도 문제를 지도하셨다.
어떤 문제는 현장에서 지도하고 있는 나도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를 지도하시는 것을 보고 교과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역량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또, 교장선생님은 과학 영재 교육에 대하여 관심이 많으셨다.
원주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강원도 과학 경시대회는 원주중학교가 상위 입상을 석권하였다.
‘98년도 강원도 과학 경시대회에서 상위 입상(은상 이상)은 절반 이상을 교장선생님이 재직하시던 원주중학교에서 쓸어 가서 원주중학교의 잔치판이 되고 말았다.
나 역시 과학 영재학생의 교육에는 관심이 조금 있어 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능력을 신장시켜 주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나의 경우는 초보적인 실천에 머물러 있었다면 교장선생님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그 성과를 거두신 것이다.
금년에 새로 설립되는 강원 과학 영재교육센터에 72명의 수학과 과학영재를 모집하는 데 내가 근무하는 춘중에서 13명이나 합격하고 보니 교장선생님께서 느끼셨던 기쁨을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둘째로 교장선생님은 행정업무에 무척 밝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안되는 각종 계획서와 보고서가 교장선생님의 손을 거쳐 지도를 받으면 換骨奪胎되어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훌륭한 계획서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또, 현황판이나 게시자료의 작성, 심지어는 페인트 칠이나 실내 정리 등의 잡다한 일에까지 교장선생님은 막히심이 없었다.
작은 규모의 학교라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의 바쁜 업무를 이해하고 선생님들을 할 수만 있으면 도우시려고 애쓰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장실에서 결재만하고 지시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적은 규모의 학교라 선생님들이 여러 가지 업무에 바빠하는 것을 보시면 교장선생님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시고 솔선수범하여 선생님의 일을 도와 주셨다.
게시판 정리나, 현황판 작성, 챠트작성, 각종 계획서 작성 등 교장선생님의 손길이 가면 내용이 가다듬어지고 체계적이고 一目瞭然하게 된다.
내가 공문서 등의 처리에 바쁠 때면 게시판에 게시될 자료를 손수 제작하여 게시하여 도와 주시곤 하였다.
작년에 과학작품 제작으로 바쁠 때 교장선생님은 나의 수업까지 대신하여 주셔서 뒤에 결강을 보강하는 수고를 덜도록 배려하여 주셨다.
그렇게 보살펴 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교장선생님을 끝까지 보필하지 못하고 춘천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나는 항상 방산중학교에서 맺은 교장선생님과의 인연을 가장 값진 만남으로 기억하고 있다.
교장선생님은 건강을 관리하시는 데도 모범을 보이셨다.
교회 장로님이라 술과 담배는 물론 안하시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테니스를 치시거나 조깅을 하거나 하시며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신다.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교장선생님을 뵈었을 때 한순간 교장선생님인지를 의심(?)하게 하였고 연세에 비하여 10년 이상은 젊게 사시는 비결이 되고 있다.
교장선생님은 평교사 시절에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로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으셨고 존경받는 스승이셨으며, 영월군 장학사와 원주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시던 시절에는 교육 행정과 학교 운영에 노고를 아끼시지 않았다.
특히 원주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에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 영재 교육에 힘쓰셔서 그들 중 다수가 과학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그 후에 자연계 대학으로 진학하여 과학 입국을 이룰 꿈나무로 자라고 있다. 방산중 교장으로 재직하시는 동안에는 시골 오지의 방산중학교를 우수학교로 발돋움하게 하시는 등 평교사 시절이나 관리자 시절이나 최대한으로 역량을 발휘하셔서 많은 업적을 남기셨고 후배 교사들의 모범이 되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을 역류할 수 없고, 교육부의 정년 단축으로 아직 더 일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고 풍부한 경륜을 갖추고 계신 데 정년퇴임을 앞당겨 하시게 됨을 아쉽게 생각한다.
교장 선생님 개인적으로 볼 때는 섬기시는 교회의 장로로써 더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학교장으로 근무하실 때보다 더 일이 많고 바쁘시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교직 생활동안 이이균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는 훌륭하신 교장선생님의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는 이런 의문을 가져 본다. 훗날 과연 내가 제자들에게 훌륭한 스승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훌륭한 스승으로 제자들의 존경을 받으시는 교장선생님이 나는 가장 부럽다.
이제 교장선생님이 비록 학교 현장을 떠나시지만 앞으로도 후배 교사들에게 교장선생님이 체험하시며 익히셨던 소중한 현장 경험을 전수하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교장 선생님 퇴임 후에라도 같이 근무하였던 저희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교회 장로로써 더 큰 봉사를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1999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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