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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살 운명과 죽을 운명

어제 저녁 늘 다니는 등산로(집에서 왕복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해발 300m가 조금 넘는 산)를 따라 안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산길 입구에서 사마귀 한마리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을 보았다.

이 사마귀를 거미줄에 올려놓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사마귀를 잡았다.

앞발을 들어 마주 오는 수레도 들어 올리려고 했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를 가진 곤충의 왕 사마귀라 나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지사.

나는 사마귀의 강한 입에 물리지 않으려 사마귀의 가슴부위와 앞다리를 잡고서 거미줄을 찾으면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마침내 튼튼한 거미줄을 하나 발견하였다. 사마귀를 거미줄에 붙여 주었다.

사마귀가 발버둥을 치면서 거미줄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자 나는 사마귀의 다리들을 거미줄에 착 붙여 주어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사마귀는 곤충의 왕답게 거미줄에 붙지 않은 하나의 긴 앞다리와 머리를 움직이면서 거미를 경계하였고, 이런 사마귀의 모습에 질렸는지 거미는 미동도 하지 않고 한구석에서 가만히 있었다.

자기보다 강해보이는 녀석이 거미줄에 걸리면 몸부림을 치다가 지칠 때를 기다리는 강한 인내심이 거미에게 있다.

이것을 알고 있는 나는 정상에까지 갔다가 하산하는 길에 거미와 사마귀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기로 하고 거미줄이 있는 입구에 나뭇가지를 꺾어서 표시를 하고 산에를 올라갔다.

한 시간이 조금 못 걸려서 정상에 올라갔다가 다시 거미줄이 있는 곳으로 왔다.

거미와 사마귀의 한판 싸움을 보기를 기대하면서 거미줄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거미가 사마귀를 이겼을까? 아니면 거미줄에 걸린 사마귀가 오히려 주인인 거미를 잡아먹었을까?’

온갖 상상을 하면서 거미줄이 있는 곳에를 갔더니 어찌된 일인가? 거미줄도, 거미도, 사마귀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거미줄이 있던 곳이 주목 등 정원수를 심어서 가꾸는 곳인데 한참 아래에서 인부가 풀 깎는 기계로 나무 밑에 있는 풀과 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식물을 제거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인부가 거미줄이 쳐져 있는 나무 밑의 풀을 깎으면서 나무 사이를 의지하여 쳐 놓은 거미줄까지 제거한 것이었다.

덕분에 사마귀는 거미줄에서 빠져 나와 제 갈길을 갔을 것이고, 거미는 버거운 상대를 만나 관망을 하다가  싸울 기회를 놓치고 말았는데, 덕분에 비록 집은 부서졌지만 사마귀에게 잃을 뻔하였던 목숨을 구명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마귀와 거미 중 한 마리는 삶과 죽음의 운명이 한 순간에 뒤바뀌었을 것이다.

거미와 사마귀의 목숨을 건 싸움을 호기심과 흥미로 구경하려고 하였던 나는 둘의 관점에서 본다면 검투사 노예들의 목숨을 건 혈전을 관전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즐겼던 당시 로마 관중과 다름이 없었으리라.

비록 운명을 믿지 않는 나지만 어제 있었던 거미와 사마귀의 예와 같은 것이 운명이 아닐까?

사마귀가 나에게 잡힌 것도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또, 거미줄에 엄청난 손님이 걸려들어 온 것도 거미는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의 호기심 덕분에 둘 중 하나는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풀 깎기 작업을 하는 인부의 덕분에(이것도 일상적인 일은 아닌 일년에 한차례 있는 일임) 둘 다 살아난 것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일일 것이다.

어제는 단순히 거미와 사마귀의 운명의 결전을 방해꾼 때문에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하산하였지만 오늘 곰곰이 생각하여 보니, 거미와 사마귀 모두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그런 결정적인 순간을 지났으면서도 그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를 몰랐을 것이다.



오늘 등산을 하면서 어제의 그곳을 다시 가보니 새로운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어제의 그 거미가 친 줄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거미는 여전히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귀는 볼 수 없었지만 아마 어느 명당자리를 골라서 지나가는 먹이 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부딪히게 되는 많은 일들이 나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왜 일어나는지도 모르게 닥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 넣거나, 아니면 우리가 그 의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하지도 못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어제의 사마귀와 거미의 모습이 아닐는지? 결국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에 얽매어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모르고, 우리가 걸어갈 길을 모르기에 주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할 것이다.

200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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