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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쥐소동

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이다.
개나 고양이, 소, 돼지와 같은 가축말고 사람과 가까운 포유류 동물은 쥐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쥐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다.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지만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이다.
요즈음에는 아파트 1층에 있던 쓰레기 투입구가 모두 폐쇄되어 도시에서는 쥐를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쓰레기 투입구가 있을 때까지만 하여도 쥐들은 아파트까지 따라와서 인간과 동거(?)를 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일년에 한두 차례 쥐잡기 운동이 벌어졌고(그때는 무슨무슨 운동하는 것이 많았다)

그 증거로 쥐꼬리를 잘라서 두개 이상씩 담임선생님에게 제출하여야 하였다.
친구들과 같이 쥐를 잡으러 마을안과 들판을 헤맸지만 쉽게 잡혀 줄 쥐가 아니었다.

죽은 쥐를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꼬리를 자르려고 가까이 가보면 그 쥐는 이미 꼬리가 없는 쥐였다.
때로는 군인들이 삽과 몽둥이를 들고 몇명씩 몰려서 들판을 뒤지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어떤 군인의 손에는 쥐가

들려져 있는 것을 보면 쥐를 잡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한달에 한번씩인가 쥐잡기 날을 정하고 쥐약을 놓곤 하였지만 쥐들은 끈질기게 종족을 이어갔다.
아래에 쥐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사촌누님 친구분 가슴속으로 뛰어 들어간 쥐
'90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우리가 살았던 집은 '30년대에 지은 아주 낡은 집이었다.

천정과 지붕 사이에는 공간이 있었고 이곳은 쥐들의 활동공간이고 성역이었다.
밤이면 천정에서는 쥐들의 운동경기가 매일같이 열렸고 하도 시끄러워 고양이 소리를 내거나 천정을 한번 치면 잠시 조용하였다가는 다시 우당탕퉁탕하는 쥐들의 올림픽이 벌어지곤 하였다.
고2 때의 일로 기억된다.하루는 사촌누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웃에 사는 누님 친구분이 누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집을 방문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대문위에서 쥐 한마리가 우발적인 사고인지는 몰라도 누님 친구에게로 떨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헐렁한 상의를 입었던 누님 친구분의 가슴속으로 쥐가 들어 갔다.
누님 친구는 비명을 지르고 펄펄뛰고 나는 어쩔 수가 없어 당황하고 있고 마침 어머니가 오셔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누님 친구분은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하였을 것이다.

2. 수많은 식솔들을 먹여 살린 돼지 우리
내가 성년이 되기도 전에 선친께서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의 교육과 생계유지의 무거운 짐을 떠맡으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돼지를 기르셨다.
우리 돼지 우리는 쥐들에게는 의식주가 보장되는 파라다이스였다.
어머니는 시내 이집저집에 리야카를 끌고 다니시며 짬밥을 모아다가 돼지를 기르셨는 데 돼지 우리에는 돼지 먹이를 넣어 두는 큰 드럼통이 있었고 부뚜막에는 죽을 쑤는 큰 솥이 걸려 있었다.
돼지가 먹이를 먹고 나면 주위를 배회하던 동리 개들이 와서 돼지가 먹다 남긴 먹이를 먹었다.

개들이 먹고 나면 참새 등 새들이 와서 먹고 가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안보이는 시간에는 쥐들이 향연을 벌렸다.
이렇게 어머니 덕분에 돼지, 개, 참새, 쥐 등 많은 식솔들이 배를 불리며 살았다.

그런데 쥐는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어느날 반에서 쥐약이 배급나와 돼지 우리 이곳저곳에 쥐약을 놓았고
쥐약을 먹은 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였는 데 죽은 쥐들을 모아보니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한삼태기는 되었다.
나는 그렇게 많은 쥐들을 그후에는 본적이 없다.

3. 꼬리가 잘린 쥐
교직에 들어온 후 11년간을 외지에서 근무하다가 '85년에 집이 있는 춘천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집안에 개와 오골계를 길렀다.
쥐들이 들끌을 수밖에.
오골계가 먹던 사료를 쥐들이 먹었는 데, 사료를 먹은 쥐들은 영양상태가 좋와서 털에는 윤기가 흘렀다.

이 쥐들은 사람도 무서워 하지 않아서 변소를 가느라 닭장 앞을 지나가도 먹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변소에 갔다 오던 나는 닭장 먹이통에서 닭 사료를 먹고 있던 쥐에게 접근을 하였다. 쥐는 먹는 데 열중하여 내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쥐의 꼬리를 잡았다. 꼬리를 잡고 공중에 몇 바퀴 회전시키다가 땅에 메때려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쥐꼬리를 들고 두어바퀴 공중에 회전을 시켰을 때 갑자기 쥐꼬리가 끊어지며 땅에 떨어진 쥐는 도망을 갔고 손에는 쥐꼬리만 달랑 들려 있었다.
다음해 쥐약을 놓아 쥐를 대대적으로 소탕하였는 데 죽은 쥐 가운데에는 꼬리가 없는 큰 쥐가 한마리 있었다.

4. 천정에서 발견된 쥐의 시체
지금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30세된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 가기 전의 일이었다.

냄새를 잘맡는 딸아이는 천정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이어서 아내도 냄새가 난다고 하였고 마침내는 둔감한 내 코에도 이상한 냄새가 전해졌다.
나는 의자를 놓고 천정을 오려낸 뒤 천정 속에 머리를 집어 넣고 후라쉬를 비쳐 보았다.

천정 속에는 커다란 쥐한마리가 자연의 섭리를 따라 마지막으로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며 분해가 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 쥐를 뒤뜰에 묻었다. 역한 냄새에 몇번인가 000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교실 안의 쥐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때로는 교실이나 교무실에 쥐가 나타날 때가 있었다.

남자 학교에 쥐가 나타나면 쥐를 본 아이들은 신이 난다.
쥐를 잡겠다는 지원자는 넘쳐 나고 아이들과 쥐는 쫒고 쫒기기를 계속하고 숨기를 잘하는 쥐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들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여자 학교에서는 그 반대다. 여자 아이들은 쥐만 보면 비명을 지르고 소동이 일어난다.
춘천여중에 근무하던 '87년도로 기억이 된다.
수업을 하는 중에 옆에 반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뛰어가 보니 70명 가까운 여학생들과 사범대학을 갖나온 여선생님이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업 중 교실에 쥐가 나타났다고 한다.
쥐 한마리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호통을 쳐서 소동을 가라앉혔지만 아마 그 시간의 수업은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6. 피아노 속에 둥지를 튼 쥐
양구중학교에 근무하던 1995년도의 일이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후 대청소를 할 때의 일이다.
20대 후반이던 음악선생님이 나에게 달려왔다. 피아노를 점검하다 보니 피아노 속에 쥐가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음악실에 들어가 보니 청소당번 아이들이 벌써 쥐둥지를 꺼내어 놓았다. 둥지 속에는 털도 안난 작은 생쥐가 5-6마리 꿈틀대고 있었다.
비슷한 경험이 횡성에서 근무할 때도 있었다. 방학중에 집을 비우고 춘천에 와 있다가 개학을 하여 세든 방에를 가보니 책장 사이에 쥐가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7. 쥐때문에 경보기는 울리고.
10여년전까지만 하여도 학교에서는 숙직이라는 것을 하였다.
남자선생님들이 순서를 정하여 학교의 기능직인 기사분들과 같이 숙직을 하였는 데 '90년대 중반부터 세컴 등 보안 회사에 경비 용역을 주고 숙직실 대신 관사나 가정에서 재택 숙직을 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97년에 양구군에 소재한 민통선 밑에 있는 방산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내가 숙직이라 세컴 장치를 하고 관사에 돌아와서 잠을 자고 있는 데 새벽에 경보음이 울리고 보안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잠을 자다 깨어 학교로 가서 현관문을 열고 경보를 해제하고 있자니 파출소와 보안회사에서 춮동을 하였다.

같이 점검을 하였으나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보안회사 직원이 아마 쥐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교무실에서 생쥐를 본 적이 있다고 하자 쥐가 센서 옆을 지나가서 경보가 울린 것 같다고 하였다.

다음날 쥐포수라는 쥐를 잡는 기구를 이용하여 쥐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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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있던 쓰레기 투입구가 폐쇄되고 음식물 분리수거를 한 후 아파트에서 쥐를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쥐의 개체수도 도시에서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하수구나 농촌에는 많은 쥐들이 서식하고 있다.
쥐를 전문으로 퇴치하는 회사도 생겼고, 쥐를 잡는 기술도 발전하지만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쥐들의 적응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결국 인간과 쥐는 서로 쫒고 쫒기며 같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아무리 미워도 인간에게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고 사람도 아무리 노력하여도 결국은 쥐들과 한 하늘 밑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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