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우리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으며 지구촌에서 함께 살아왔다.
원래는 잘날 수 있는 야생닭이었는 데 사람이 길들여 가축으로 삼고 오랜 시간동안 품종 개량을 한 결과
오늘날과 같은 닭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닭 몇마리, 돼지 한두마리, 집에 따라서는 소 한두마리 정도를 길렀다.
우리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소나 돼지를 기르지 않았지만 닭과 토끼는 길렀다.
닭은 하루에 두번 옥수수 등을 먹이로 주었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땅을 파헤쳐 가며 먹이를 찾았다.
이른 봄에는 어머니가 닭장 안에 둥지를 만들어 주셨는 데 암탉은 둥지에서 알을 품었고
어느 날엔가 노란색깔을 띈 병아리들이 부화되어 나와 어미닭을 따라 다니며 삐약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미닭은 병아리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았다. 먹이가 있으면 불러서 먹였고, 날개밑에 품어 주기도 하였고
병아리들은 어미닭의 등위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
병아리의 노란색털이 하얗게 되고 병아리가 커지면 병아리의 행동반경도 넓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병아리의 모습이 사라지고 어미의 반만큼 컸을 때 어미닭은 병아리를 자립시키는 시도를 한다.
어미 곁에 오면 병아리를 쪼아서 쫓아 버린다. 어떤 녀석은 어미에게 쪼여서 피가 나기까지 하였다.
이런 행동은 개에게서도 관찰되었는 데 강아지가 어느정도 크면 가까이 오는 강아지를 어미개가 깨물어서라도
쫓아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도 늦게 이유를 하는 엄마가 있는 것처럼 자기만큼 큰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고, 다 큰 강아지를 젖을 먹이는
어미개가 있기도 한다.
어렸을 때 기른 어느 어미닭은 약병아리만큼 자란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였는 데 어미닭이 알을 낳으면
병아리들이 주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기도 하였다.
우리집에서 가장 최근에 닭을 기른 것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전 옛날 집에서 살 때인 20년 전이었다.
당시 지은지 50년이 넘은 우리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밖에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집 마당과 뒷뜰의 화장실 사이에 닭장을 지어놓고 오골계와 닭 몇마리를 길렀다.
그중 병아리를 부화한 닭이 있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어미닭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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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는 닭을 기를 수 없었다.
그러다가 4년전에 춘성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 데 4H에서 지원한 예산으로 학교에서 닭을 기르게 되었다.
4H를 담당한 미술을 가르치는 허남훈선생이 닭을 기르는 것을 맡았는 데
전해부터 기르던 겨울을 난 닭 두마리가 있었다.
그래서, 부화장에서 병아리를 구입하여 기르게 되었는 데 사용하지 않는 학교 숙직실에 난방을 하고 병아리를 80마리쯤 사다가
길렀다. 그러나, 사육기술의 부족 등으로 30여마리가 폐사를 하고 50마리 가량이 자라서 닭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겨울을 지낸 암탉이 알을 낳아 한쪽 구석에서 알을 품었다.
원래 암탉에게 병아리를 부화하게 할 계획이 없었는지라 둥지를 만들어 주지 않아 암탉이 땅을 파고 집 등을 가져다가 품었는 데
아무리 알을 품지 못하게 하여도 고집스럽게 알을 품어 그대로 두었더니 20여일이 지나자 병아리 네마리가 부화되어 나왔다.
어미는 네마리를 정성껏 길렀는 데 학생들에게 좋은 구경꺼리가 되었다.
숙직실에서 기른 병아리와 닭장에 있던 병아리 가족 여섯마리가 한 우리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병아리가 어느정도 자라 약병아리가 된 여름방학을 할 무렵 운동부 아이들의 영양보충용으로 20여마리가 희생되고
교직원들의 회식에 10여마리가 희생되었다.
백령도에서 해병대 취사반에서 근무하였다는 문선생님은 닭죽을 쑤는 데 일가견이 있어 아주 맛있는 닭죽을 쑤어 교직원들과 운동부 학생들의 입을 즐겁게 하였다.
닭들이 어느정도 자라자 닭의 사회에서도 서열이 생기게 되었다.
당연히 먼저부터 있던 한쌍의 어미닭들이 대장이 되었다.
겨울을 지낸 수탉은 닭장 전체에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옆에는 병아리를 부화했던 암탉이 함께 하였다.
부화장에서 구입한 병아리들이 자라 알을 낳게 되었는 데 이 암탉들까지 대장 수탉이 거느리게 되었다.
먹이를 주면 대장 수탉이 모이통을 차지하고 옆에는 조강지처인 암탉이 함께하고 후궁들 중 서열이 높은 암탉이 같은 모이통에서 먹었지만 다른 수탉들은 근처에 얼씬댈 수도 없었다.
닭들의 먹이다툼을 피하게 하기 위하여 몇 개의 모이통을 더 마련하여 주었는 데 주류에서 밀려난 암탉들과 다른 수탉들은 대장 수탉이 먹는 모이통이 아닌 다른 곳에서 먹이를 먹어야 했다.
다른 수탉들은 항상 대장의 눈치를 보며 대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지냈다.
모든 암탉들은 대장 수탉이 독점하였는 데 가끔 다른 수탉들이 다른 암탉과 기습적으로 짝짓기를 하다가 들켜서 대장에게 호되게 혼나는 경우도 관찰할 수 있었다.
개학을 하고 나서 가을을 지내며 또 몇 마리의 닭들이 숙청(?)되었고 수탉 4마리와 암탉 10마리 정도가 남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대장 수탉이 간택되어 닭장을 떠나게 되었다.
어느 선생님이 손님접대에 필요하다고 하며 암탉 두 마리와 수탉 한 마리를 가지고 갔는 데 지금까지 운좋게 화를 면하였던 대장이 간택되게 되었다.
이 수탉은 행복한 닭이었다. 수탉으로는 드물게 겨울을 나 장수하였고(?) 조강지처가 있었고 병아리를 부화하여 자손을 남겼다. 또, 여러 마리의 암탉을 후궁으로 거느리고 여러 마리의 수탉들을 지배하는 닭장안의 최고 통치자로 몇 달간 군림하기도 하였지만 그도 닭으로 태어난 운명을 비껴가지는 못하였다.
대장 수탉이 숙청되고 6-7마리의 암탉과 3마리의 수탉이 남게 되었다.
닭장에서는 통치자의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대장에게 눌려서 몇 달간 구석으로 쫒겨 다니며 지냈고 함께 고락을 같이하였던 수탉 세 마리가 대장이 숙청되자 암탉들을 사이좋게 나누어 살림을 차리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겠지만 동물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대장이 숙청된 다음 날 닭장에 가보자 남은 자들 중 가장 큰 수탉이 암탉들을 거느리고 먼저 대장이 차지하였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은 두 마리의 수탉은 여전히 구석으로 물러나 있고
새 대장은 우렁찬 소리로 울었고 암탉들을 거느리고 닭장 안을 순시하였다.
먼저 대장밑에서 기지개 한번 제대로 못펴고 대장을 피해 다니며 고락을 함께 하던 동료의 모습이 아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새로운 서열이 정해졌다.
남은 몇 마리의 닭들이 겨울을 나게 되었는 데 사육의 어려움도 있고 하여 다음해에는 닭을 기르지 않게 되어 이웃학교로 기르던 닭과 토끼를 보내게 되어 닭장은 화원으로 바뀌게 되어 더 이상 닭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년간 닭을 기르며 닭의 생태에 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닭들에게 서열은 엄격하였고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었다.
지배자인 수탉은 암탉을 보호하였고(어렸을 때 매 등이 나타나면 수탉이 경고를 발하여 암탉과 병아리들을 대피시킨 후 자신도 피하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먹이가 있으면 암탉을 불러 먹이기도 하였다. 대장 수탉은 단순히 억압과 지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義務를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것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강한 수탉이 암탉들을 독차지하는 것은 강한 개체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자연계의 법칙일 것이다.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고 보호하는 모성애는 자식의 양육을 포기하는 부모가 증가하는 요즈음 세태에 많은 교훈을 준다.
또, 병아리들이 어느정도 자라면 자립을 시키는 어미닭의 모습에서 나이가 먹어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캥거루족이 늘어가는 세태에 교훈을 주고 있다.
4년전 일년간 닭장을 관찰하며 닭의 생태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인간생활과 대비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200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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