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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단상

토끼사냥의 추억

나는 어린시절 한곳에 오래 정착하여 살지 못하고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가며 살았다.

그래도 가장 오래 머물러 살던 곳이 양구군 동면 지석리 고인돌 마을이다.

이곳에서 만 3년간(1960.4-1963.4,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2학년)을 살았다.

나에게 고향처럼 생각되는 곳이 고인돌 마을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마을의 모습과 골목길과 이 길을 끼고 살던 이웃들이 생각난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여러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인돌 마을에는 사냥을 잘하는 동네 형이 있었다.

형의 이름은 웅재였는 데 당시 대부분의 또래가 그렇듯이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있었다.

형의 나이는 17-18세쯤 되었는 데 사냥을 잘했다.

겨울에 형이 산에 가면 가끔씩 토끼 등 사냥한 동물을 지게에 매달고 왔다.

형은 옹로(올무)를 잘놓는다고 했다.

산토끼는 다니는 길이 있어 그곳에 올무를 놓으면 토끼가 걸려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걷어오면 되었다.

지금같으면 밀렵이니 해서 단속 대상이지만 당시에는 농촌에서는 밀렵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친구들과 같이 산에 갔을 때 토끼길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토끼는 같은 이동통로를 따라 반복하여 이동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길이나게 되어 잘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는 웅재형이 지게에 고양이보다 더 큰 새끼 호랑이처럼 생긴 짐승을 한마리 묶어 매달고 마을로 왔다.

어른들은 살쾡이라고 했다. 녀석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어느 청년이 막대를 가지고 약을 올리자 녀석은 더 으르렁 거리며 막대를 세게 물었다.

만약 사람이 물렸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그뒤 살쾡이를 어떻게 처분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가죽을 벗겨서 팔았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때의 겨울로 기억된다. 지석리 4H에 가입하였는 데 당시 농촌 청소년들은 대부분 4H에 가입되어 있었다.

하루는 기와집말에서 회의를 한다고 했다.

회의에 참석했더니 저녁식사가 나왔다.

산토끼 고기를 넣고 끓인 무국이 나왔는 데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동네 형들이 올무를 놓아 잡아온 산토끼로 요리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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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후의 일이다.

하루는 전교생들을 동원하여 토끼사냥을 한다고 했다.

아마 학생들에게 단결심 고취와 체력단련 등을 목적으로 토끼사냥 행사를 실시했을 것이다.

전날 눈이 와서 산에는 눈이 덮혀 있을 때였다. 모두 큰 몽둥이를 하나씩 지참하고 오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전교생(모두 450명 정도, 여학생이 150명 정도)들이 토끼사냥에 동원되었다.

여학생들도 동원이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양구 한전리 인근의 도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야산으로 기억된다.

산토끼는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 산 위로는 빠르게 달아날 수 있지만 산 위에서 산 밑으로는 잘뛰지 못한다고 한다.

전교생들은 수색작전을 펼치듯 야산의 능선을 에워싸고 골짜기로 토끼를 몰아서 골짜기 입구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이 토끼를 잡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능선을 에워싸고 있던 우리는 작전개시 명령(?)이 하달되자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몽둥이로 나무 사이와 풀숲을 휘저으며 골짜기 입구를 향해 서서히 내려왔다.

여기저기서 "토끼다"라는 함성이 들렸다.

우리쪽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토끼가 산골짜기를 향해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토끼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포위하고 있는 학생쪽을 향하여 뛰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토끼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려고 계획한 것 같았다.

와~ 하는 함성이 들리며 토끼를 향해 가까이 있는 학생들이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토끼는 재빨리 몽둥질을 피해 산위로 달아났다. 토끼를 놓친 것이다.

골짜기 쪽에서 "잡았다"라는 함성이 들렸다. 몰이를 끝내고 내려와 보니 토끼 두마리와 너구리 두마리가 사냥되어 있었다.

모두 다섯마리의 토끼를 발견하고 몰았는 데 세마리는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고 운 나쁜 두마리가 몽둥이에 맞아 즉사를 했다.

원래 너구리 사냥을 하려고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너구리는 운나쁘게 토끼들이 사는 곳에 있다가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다.

발견된 토끼를 모두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학교로 돌아왔다.

그뒤 2,3학년때는 토끼사냥 행사가 없었다. 아마 내가 중1때 토끼잡이 행사를 했던 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춘천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에도 토끼사냥 행사는 없었다.

모교 역사편찬 작업을 하며 앨범을 보니 필자의 몇년 선배들까지는 토끼사냥 행사가 있었으나 우리 때에는 실시되지 않았다.

교련이 부활된 '70년대 초 어느 핸가 한번 토끼사냥 행사가 실시된 것을 끝으로 학교단위 토끼사냥행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아마 장소를 선정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곳까지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고, 자연보호 운동 등이 전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실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끼사냥의 모습 - '50년대 중반 모교의 선배들 앨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