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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단상

초등학교 5학년 소년들이 헤어지며 한 우정의 맹세

단기 4294년(1961년) 3월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다.(이 때는 4월 1일이 새학기 시작)

양구 광덕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5학년이 되던 '60년 4월에 원당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에 다니던 광덕 초등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가 방한길(지금 서울에서 장로교회 목사로 목회)이었다.

양구 동면 지석리로 이사를 갔지만 나는 가끔 한길이가 살던 가오작리에 놀러 갔다.

4km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서 놀다가 걸어서 집으로 왔다.

 

5학년 말이던 3월 21일에 한길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한길이네 집이 김화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DMZ 연구 전문가인 중학교 동기 함광복의 글에 보면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울진지방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이때 피해를 입은 이재민 수백 가구를 다음해인 1960년에 김화 민통선 북쪽지역으로 집단 이주시켰다고 한다.

울진이 고향인 한길이 아버지는 동향 사람들이 모여 사는 김화 와수리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하였던 것 같다.

며칠 후 김화로 이사를 가면 만나기가 어려운 아쉬움 속에서 두 소년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맹세의 글을 써서 나누어 갖는다.

 

한길이네는 김화로 이사를 갔다. 한길이는 김화에서 중학교에 진학을 했고 나는 양구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둘은 가끔 편지를 주고 받았다.

김화로 이사를 간 한길이네는 그리 평탄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며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었다. 서로 바빴기 때문이다.

대입에 실패한 후 집에서 재수를 한다고 허송세월을 하던 나는 한길이네 집으로 편지를 보냈고, 그의 동생이 연락처를 알려 왔다.

한길이는 서울에서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서울로 가서 7년만에 한길이를 만났다.

출판사가 있는 종로에서 버스를 몇번인가 갈아타고 종암동의 달동네로 갔다.

한길이는 수도도 들어 오지 않는 달동네의 맨 윗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물을 길러 물지게를 지고 한참 걸어내려 가서 돈을 주고 공동 수도에서 물을 받아 다시 짊어 지고 산위로 올라왔다.

한길이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한길이는 회사로 출근을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해 나는 강원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던 한길이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 초 동해안에서 근무하던 한길이와 몇번 편지를 주고 받았으나 연락이 두절되어 서로 소식을 모르게 되었다.

 

'75년 교사로 근무할 때 한길이가 생각나서 옛주소로 편지를 했다.

한길이의 여동생이 답장을 보냈다. 군에서 제대한 한길이는 서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둘은 7년만에 다시 만났고 그후 지금까지 가끔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헤어지는 한토막의 추억"이라는 글을 써서 서로 교환을 하였는 데 10여년전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짐을 정리하다가 당시의 글을 발견하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울에 가져 가서 한길이에게 보여 주며 추억을 상기하였다.

내가 한길이에게 써준 것은 여러번 이사를 하는 동안에 잃어 버렸다고 한다.

5학년 초등생 치고는 아주 글씨를 잘썼고 그림으로 장식을 했다.

아래는 한길이가 나에게 써준 글의 내용이다.

 

"남자는 뱃짱으로 여자는 절개로 산다."라는 말은 당시의 유행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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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한토막의 추억"

 

"동현아 만나서 헤어지고 헤어져서 만나는 인생의 길이란다."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면 너하고 싸운적도 있고 욕한 적도 있지마는 이제는 찬물에다 손을 씻어 버리드시 다 잊어 주기를 바라는 나다. 그런 줄 알어라.

지금 떠나는 입장에 너도 섭섭하고 나도 섭섭한 감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이 섭섭하구나.

나음 마음은 뱃짱으로 한다. 알고 있어라. '남자는 뱃짱으로 살고 여자는 절개로 산다'는 한 토막의 글도 있는 것과 같이 우리도 남자이니 뱃짱으로 살아가자.

우리는 헤어질 망정 서신 한장으로도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냇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자.

동현아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에 훌륭한 일꾼이 되어 주기를 떠나는 나로서 약속한다.

 

떠나는 楊口에서

 

4294. 3. 21 낮 1시경 한길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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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2월 13일 김화 와수리 방목사 누님댁을 방문하고.

왼편이 방한길 목사. 중간이 방목사 누님. 오른편이 필자. 누님은 '61년에 뵌 이래 53년만에 재회를 하였다.

50여년전 초등학교 5학년이던 두 소년은 서로 맹세한대로 반세기가  넘도록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