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 시절의 단상

어린시절의 단상 - 삐라에 얽힌 추억

타의에 의해 분단되었지만 분단된 남과 북은 동족이지만 어느 적대국보다 더 치열하게 싸웠다.

어른들에게 들은 6.25 이야기인데 미군이나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힌 인민군이나 국군은 살았지만 국군이나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히면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같은 동족끼리 더 적대감을 가지고 싸웠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과 북은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치열한 심리전을 전개했다.

대적 방송이나 삐라 살포 등은 이러한 심리전의 한 수단이었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양구지역에는 북한에서 보낸 많은 삐라가 떨어졌다.

학교에서는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주으면 읽지 말고 파출소나 학교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50년대 후반이나 '60년대 초반에 삐라를 신고한다고 해서 포상을 받은 기억은 없다.

물건을 잘 찾지 못하는 나는(소풍가서 보물찾기를 한 기억이 거의 없음)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주은 기억이 별로 없다.

중학교때 토끼풀을 뜯으러 갔다가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우연히 주은 적이 있다.

타블로이드 판의 크기로 신문형식으로 구성된 삐라였는 데 표제가 '광명'이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월북한 병사가 잘 살고 있다는 내용과 군인들의 월북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삐라는 남북 사이에서만 교환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삐라 살포도 있었다.

아마 6.25 기념행사때로 기억된다.

행사가 끝나고 정찰기로 보이는 비행기에서 삐라를 살포했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삐라가 햇볕을 받아 반사를 하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아이들은 이것을 줏으러 달려갔다.

내용은 6.25를 상기하거나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이를 기억하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무슨 궐기대회나 반공행사가 있을 때에는 행사 마지막에 삐라 살포가 있었던 것 같다.

=======================================================================================================================

 

춘천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에는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74년 모교에 교사로 부임한 후 수시로 조종례 시간에 북한의 삐라를 줏으면 읽지 말고 즉시 학교에 가져 오거나 파출소에 신고를 하라고 시달했다. 적어도 1주일에 한번 이상은 시달을 했던 것 같다.

어느 선생님이 북한에서 넘어온 선전물 중에 책자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줏어서 신고한 것인데 책이었다. 제목이 '달무리'였던 것으로 기억나는 데 겁이 나서 내용은 읽지 못했다.

심지어는 성경책 표지를 한 것도 있었다.

성경은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이들 중 어느 한권만 책자로 만든 것인데 쪽복음이라고 불리웠다.

요한복음이라는 쪽복음의 표지를 한 것이었는 데 표지만 성경이었고 내용은 북한을 선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북한이 매우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에서 날아온 선전물을 신고하지 않고 보관하거나 돌려 읽으면 큰 벌을 받는다고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어느 어린이가 삐라 뭉치를 줏어서 딱지를 접어서 쳤다가 적발이 되었다거나

누가 북한의 선전물을 줏어서 신고하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적발되어 처벌을 받았다거나 하는 내용들이었다.

 

'97년부터 '99까지 양구 방산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아침이나 저녁때 산책을 하다보면 삐라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어려서는 잘 발견되지 않았던 삐라들이 전방지역이 가까워서인지 곧잘 눈에 띄었다.

그런데 지질도 조악하고 인쇄 상태도 형편없었다.

대남 선전물이라 딴에는 최고급 용지에 신경을 써서 인쇄를 했을 터인데도 우리나라의 상품 선전지의 수준에 비하면 너무 조악했다.

우스운 것은 '97년 당시 대통령이 여자를 끼고 있는 사진이었다.

상의를 벗은 대통령이 여자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는 데 합성된 것이었다.

대통령의 머리부분과 다른 사람의 몸통부분을 합성하였다는 것이 금방 드러나는 엉성한 사진이었다.

어떻게 이런 조잡한 것을 선전물로 내려보낼 수 있는가? 혹시 선전물을 만든 사람이 반공투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산책때 줏는 삐라는 학생들이 줏어온 것과 같이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김대중대통령때인지 노무현대통령때인지 북한과 합의하여 삐라 살포와 대적방송 등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한 후 북에서 내려오는 삐라는 거의 사라졌다.

필자는 남북간의 평화공존은 중요하지만 선전행위를 중단한 것은 우리가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이 성숙해져서 북한의 선전에 현혹되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

개방된 사회기 때문에 북한에서 폭로하는 것이 있다고 해도 남쪽에서 받는 충격파는 그리 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월등한 경제력과 생활수준의 격차 때문에 북이 내세울 것이 체제선전과 대남비방 말고는 별로 없게 되었다.

그러나 대북방송이나 선전물에서 북한이 받을 충격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통제되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금지된 사회라 삐라 등에서 폭로하는 내용이 북에게 줄 충격파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가끔 탈북자 단체 등에서 살포하는 선전물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종이에 의한 선전물 즉 삐라 등은 그 효옹성이 크게 줄었다.

이제는 사이버 매체를 통한 선전활동이 그 주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남북사이에는 치열한 사이버 전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에 미칠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고 북한은 거의 무한정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비대칭적이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국민수준이 높아 북의 사이버 선전전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삐라에서 시작된 대적 선전활동은 사이버전으로 진화하였다. 

남과 북이 화해하거나 통일이 되어야 상대방을 향한 적대적 심리전이 종결될 것이다. 

어린 시절 비행기에서 살포되던 삐라를 줏으로 달려가던 생각을 하면서 짧은 단상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