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최근에 한 일을 잘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친구나 제자들에 대하여 생각을 하려는 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아주 드물게 어쩌다 있는 일이었는 데 요즈음에는 그 빈도가 점차 잦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파트 단지내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도 며칠 지나면 어느곳에 세워두었는지를 몰라서 찾아 헤매는 경우도 자주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런 나를 아내는 힐난하지만 같이 늙어가는 아내도 경우는 다르지만 금방한 일을 자주 잊어버리는 것은 나와 오십보 백보다.
최근 일은 잘 잊어 버리지만 어렸을 때의 일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뜻을 알 수 없는 말들이 있었다.
한자를 배우지 않았고 어른들에게 설명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사전도 있고, 컴퓨터로 검색을 하면 금방 알 수 있지만 사전조차 없던 시절에 어른들에게 묻기 전에는 알 길이 없었다.
어렸을 때 그뜻을 오랫동안 알지 못해 의문을 가졌던 몇개의 단어를 예를 들어보겠다.
버스를 탔을 때 뜻을 알 수 없는 말들이 몇개 있었는 데 '금연', '인회질물지입엄금', '윤번'이라는 말이었다.
금연(禁煙)은 차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인데 한자의 뜻을 모르니 무슨 뜻인지 알 까닭이 없었다.
인화질물지입엄금(引火質物持入嚴禁)이라는 말은 인화성 물질은 가지고 타지 말라는 이야기였지만 이 역시 무슨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장 의문이 되는 말은 윤번이었다.
당시 버스는 운전수와 조수와 차장이 한팀이 되어서 운행을 하고 있었다.
버스 맨 앞의 이름표에 운전수와 조수와 차장의 이름이 게시되어 있었는 데 어느 버스에나 차장의 이름은 윤번이었다.
처음에는 차장이 성이 윤씨이고 이름이 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차든지 차장의 이름은 윤번이었다.
윤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차장이 그렇게 많을 까닭은 없고...
윤번이 윤번(輪番)을 뜻하고 차례로 돌아가며 일을 맡는다는 것을 이해한 것은 훨씬 뒤 나이가 더 먹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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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터미널 부근에 식당이 많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여름철 식당은 문을 열어놓고 영업을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니 냉방을 할 수도 없었고 문을 열어놓는 것이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때다.
식당앞을 지나다 보면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 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고기는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식당 간판에는 '대중식사'라는 말이 있었는 데 이 말의 뜻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충식사' 간단하게 먹고 가라는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맞는 해석같지 않았다.
대중식사(大衆食事)는 모든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는 데 이 역시 오랜 후에 이해가 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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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농촌지역에서 살았다.
초중학교 시절 등하교 길에서, 또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길에서 잘보이는 논이나 밭에 구호를 적어놓은 팻말 등이 있었다.
추수가 끝나고 나면 '추심경'이라는 팻말이 논의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 데 마침 큰아버지가 집에 오셨기에 질문을 하였다.
가을에 논을 깊이 갈으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당시는 경운기 등이 없을 때라 소에 쟁기를 메워 논을 갈았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닥치기 전에 논을 깊이 갈아두면 표토가 뒤집혀져서 병충해 예방도 되고 다음해에 농사가 잘된다고 해서 늦가을에 논을 갈아두라는 뜻이라고 했다.
봄에는 논에 '소주밀식'이라는 팻말이 세워졌다.
소주밀식, 마시는 소주를 어떻게 하라는 뜻은 아닌 것 같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주밀식(小株密植)은 모내기를 할 때 포기수를 적게 해서 촘촘히 심으라는 뜻이라는 것을 안 것도 먼 훗날의 일이었다.
손으로 모내기를 할 때인에 못단의 모를 여러포기씩 나누어 잡고 드문드문 심는 것 보다 3-4포기로 적게 잡고 베개 심는 것이
더 수확이 많기 때문에 적은 그루로 베개 심으라는 말인데 당시는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5.16이 난 후의 일로 기억이 된다.
"간접침략을 물리치자(분쇄하자?"라는 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간접침략? 간첩침략이 아닌가?
간접침략은 직접침략과 달리 전쟁을 통하지 않고 침략행위가 있는 예를 들면 정부와 국민들을 이간시키거나 내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의마하는 것을 이해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간접침략이 간첩침략의 오기가 아닌가 의문을 가진 것이 생각난다.
위에 나온 낱말을 읽기만 하다가 설명을 듣고 뜻을 이해하던 단계로 언어능력이 발전을 하게 된다.
한자를 공부하고 나서야 정확한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자를 공부하는 것은 70% 이상이 한자어로 이루어진 우리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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