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을 하기 좋와하지만 어려서는 어머니가, 가정을 이루어서는 아내가 어디 다니는 것을 만류하여 여행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
생활이 어려우니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도 내가 어디를 다니지 못한 원인의 하나다.
학교에 다닐 때 수학여행도 비용 때문에 가지 못하였다.
6.25때 피난을 간 것을 제외하면 강원도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고3때 경희대에서 주최하는 학력 경시대회에 참석하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아 볼 정도로 집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햇다.
대학교 3학년때 CCC의 행사로 대전에 간 것이 가장 먼 곳으로 간 여행이었다.
이때 대전에 이모댁에 며칠간 머물며 대전 구경을 하였다.
대전에서 인천으로 갔다.
인천에는 당숙이 살고 계셨는 데 당숙 댁에 며칠 머물며 인천 구경을 다녔다.
인천 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 데 곽선희 목사가 담임목사였다.
강대상 구조가 아주 권위적이었던 것이 기억에 남고 축도를 하던 이기혁 목사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린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주일학교 교육을 참관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군대에 입대한다고 강릉에서 집결하여 논산으로 갔는 데 이때 피난 이후 처음으로 경상도 땅을 거쳤다.
‘73년 교사 임용시험을 대구에서 보았는 데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를 갔다.
춘천에서 서울로, 경부 고속도로로 대구까지 갔으니 혼자서는 가장 먼 곳을 가본 경우가 되었다.
대구에서 본 임용고사는 합격을 하였으나 발령이 나지 않아 학기 중간에 강원도에 응시하였고 ‘74년 교사로 임용된 후에도 내 활동영역은 강원도와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75년 큰 여동생을 시집 보내느라 충남 강경에를 갔다.
동생의 시집이 있는 전북과 충남의 경계가 되는 망성라는 곳에를 갔었는 데 이때 처음으로 전라도 땅을 밟아 보았다.
‘76년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온양과 속리산을 다녀 왔다.
청주를 들어갈 때 가로수가 플라타나스인 도로가 인상적이었다.
그해 수학여행을 인솔하여 부산과 경주를 갔는 데 이때 처음으로 멀리 여행을 했다.
경남땅과 부산땅을 처음으로 밟아본 것이다.
‘79년에 1급 정교사 강습을 청주에서 받아 청주에 한달간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 초정약수와 화양계곡 등 청주 인근을 가보았다.
시조와 윗대 조상의 묘역을 다녀 온 것도 이때였다.
‘81년 장인 어른이 별세하셔서 장례식 관계로 전주 봉동에를 갔다.
처음으로 호남땅을 밟아 본 것이고 넓은 호남평야를 보았다.
‘82년 수학여행을 인솔하여 다시 경주와 부산을 다녀 왔다.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내 계획은 번번이 아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없는 살림에 모든 것을 초긴축을 하여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고는 먼 곳에 다닐 기회가 없었다.
‘87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아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였다.
진서가 그의 아버지와 여행을 하였던 사진을 본 것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하였다.
대전 동생집에를 들리고,후배인 심영기 박사와 최만용 박사가 근무하는 화학연구소와 표준 연구소를 방문하고, 심박사의 배려로 과기대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경주를 거쳐 부산까지 가서 기영이 아저씨 댁에서 하루를 자고 함영일이를 만나고, 서정오 목사를 방문하고 태종대와 용두산 전망대를 관광하였다.
‘93년 2월 신혼여행 후 처음으로 아내와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였다.
아내와 같이 집에서 출발하여 신혼여행을 갔던 온양의 여관에서 일박하였다.
다음 날 장항선을 타고 장항에서 내려 군산에를 갔다.
군산 시내를 관광하고 아내의 고향인 봉동에를 가서 1박하였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부여와 공주로 갔다.
부여에서 박물관을 관람하고 공주로 갔다. 공주에서 우연히 무령왕의 진짜 능에를 들어가 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해에 양구로 전근을 갔는 데 수학여행 답사를 갈 때 아내와 같이 경주와 부여를 여행하였다.
‘97년에는 광주에를 처음으로 갔다.
광주에서 고교 교사로 근무하는 조카네 집에를 갔는 데 둘째 딸을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목포를 방문하고 유달산에도 올라가 보았다. 또, 진도 대교를 건너 진도 땅을 밟아보기도 하였다.
해외여행의 붐이 일었지만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
2004년 1월 인하대에서 한문 부전공 연수를 받을 때 중국을 여행하였는 데 이때가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아내와 동행하였는 데 아들이 인천 길병원에 인턴으로 들어가는 소식을 들으며 출발하게 되어 무척 기뻤었다.
2005년 처가 식구들과 같이 보성으로 해서 이순신 장군 유적지를 돌아보며 고흥에를 갔다.
녹동항에서 회를 실컷 먹는 등 많은 추억이 남기도 하였다.
2007년 학생부장 연수가 있어 두 번째 중국 여행을 하였다.
북경과 길림성 연길과 용정, 백두산을 여행하였다.
2009년에 처음으로 제주도를 여행하였다.
2009년에는 1월에 교회 벧엘 성서 연구의 수학여행과 동행해서,
여름에는 돌봄학교 관련 프로그램으로 한해에 두 번이나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2009년 과학교사 테마연수로 백령도에 다녀 왔다.
풍랑으로 뱃길이 막혀 사흘을 늦게 돌아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수학여행을 인솔하기도 하고, 체험학습을 인솔하기도 하는 등 여러 곳을 다닐 기회가 전보다는 훨씬 많아졌다.
이상이 그간 내가 돌아다닌 기록이다.
================================================================================================================
아래는 2008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고교 동창인 인원이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신안군 증도와 목포 안면도를 여행한 기록이다. 원래 목적지는 동소우이도로 이 섬에서 생활하는 오제신 장로와 지정희 권사 부부를 만나기 위해 섬으로 가기로 했으나 태풍으로 일정을 바꾸어 부여와 안면도를 여행하게 되었다.
8월 8일
9일부터 11일까지가 여행 예정일이다.
교회에 다녀와서 아내와 같이 준비를 하였다.
동소우이도에 가는 데 과일이 필요할 것 같아 수박과 복숭아, 참외 등을 샀다.
여행 보따리를 싸고... 아내는 늦게가지 준비를 했다.
8월 9일
7시 30분이 출발 예정인데 인원이는 7시에 벌써 왔다고 한다.
인원이 부인인 신집사가 올라와 거들었다.
8시 10분에 출발을 했다. 증도로 향하기로 했다.
서울로 해서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으로 내려갔다. 광주 부근 백양사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서 함평 방향으로 가다가 현경 해제 방향으로 가서 지도로 들어갔다.
지도는 원래 섬이지만 간척으로 연륙되어 있어 육지와 마찬가지다.
지도에서 사옥도를 거쳐 증도로 갔다.
세 개의 다리를 건너 증도로 들어간 셈이다.
증도대교를 못가서 차를 멈추고 쉬면서 사방을 돌아 보았다.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절경이었다.
그곳에서 춘천에서 군생활을 하였다는 사람 부부를 만났다.
증도 대교를 건너기 전 휴게소에서
증도대교를 건너 태평염전으로 갔다.
소금박물관이 있었는 데 소금을 만드는 과정과 소금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박물관에 나와서 염전을 돌아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염전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염전으로 바닷물이 들어가는 수로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방조제 안 펄에는 엄청난 수의 게들과 고동이 보이며 함초라는 풀이 자란다.
개펄의 생태계는 정말 풍요롭다.
염전을 관람하고 문준경 전도사님 순교 유적지로 향했다.
중간에 짱뚱어 다리라는 곳에를 들렸다.
개펄 위에 다리를 놓아 개펄을 가로지르면서 개펄을 내려다 보게 설계한 곳이다.
장뚱어라는 펄에서 사는 물고기가 수도 없이 많이 보인다.
개펄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처럼 움직인다.
또 수없이 많은 방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정말 개펄은 풍요로운 생태계의 보고다.
개펄을 보존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 장소에는 기념비와 무덤이 있었다.
남편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육신의 자식은 두지 못했지만 수많은 믿음의 자녀를 낳은 분이다.
11개의 교회를 설립하고 30여명의 목사를 배출한 분이다.
그의 행실이 아름다워 시집식구가 모두 예수를 믿고 시집 고향 사람들을 변화시킨 문전도사님.
증도는 주민의 9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한알의 밀알이 떨어져 그대로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례다.
문전도사님 순교 유적지를 보고 갯풍식당에서 장뚱어 요리로 식사를 하고 화도로 향했다.
일몰이 아름답고 장관이었다.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촬영한 곳이라 한다.
숙소가 있는 대초리에 와서 대초리 경로당에서 1박을 했다.
다음 날 동소우이도 오장로댁을 방문해야 하는 데 태풍이 올라온다고 한다.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든다.
8월 10일
날이 잔뜩 흐리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목포로 향했다. 목포의 갓바위 공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바닷가 탐방로를 걸었다.
평화광장이 있는 곳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를 갔는 데 태풍이 온다고 해서 배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해양박물관(해양유물 연구소)으로 이동하여 신안 유물과 신안 앞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배를 보았다.
2000점이 넘는 도자기와 28톤의 동전과 자단목, 수많은 생활용품 등을 인양했다고 한다.
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 데 소원을 풀었다.
고려시대의 유물이 700년 가까이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고속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고 안면도로 향했다.
목포 갓바위 탐방로 입구에서
오던 길을 거슬러 갔다. 네비를 최단거리로 해 놓아 주로 국도와 지방도를 타고 올라갔다.
영광 부안을 거쳐 김제 등을 지나며 호남평야의 너른 들을 볼 수 있었다.
강경에 들러 젓갈 시장을 돌아보았으나 값이 비싸 사지를 않았다.
올라가다가 부여를 지나게 되어 부여의 낙화암에를 갔다.
입장권을 구입하여 경내로 들어 갔다.
낙화암과 고란사까지 2km가 되었다. 가끔 비가 조금씩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우산을 쓰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낙화암에를 도착했다. 백마강이 내려 보이는 절벽이다.
1300여년전 백제의 왕성인 사비성이 함락될 때 살아서 욕을 당하는 것보다 깨끗이 죽음을 택한 백제 여인들의 안타까운 최후를 생각해 본다.
역사는 백마강처럼 흘러갔고, 그날의 아우성과 탄식은 들리지 않고 허공 어디엔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고란사에서 석간수를 마시고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을 타니 낙화암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상류쪽으로는 사대강 공사를 하느라 파놓은 모랫더미가 보인다.
명승지 앞에서까지 공사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낙화암에 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사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경부고속도로와 같이 先見之明이 될지 낭비의 반면교사가 될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유람선을 타고 내려와서 입장을 한 곳까지 한참을 걸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본 낙화암
다시 차를 타고 안면도를 향했다.
6시가 다되어 출발하였다. 차는 충남의 중심부를 횡단하여 북으로 올라갔다.
보령과 홍성을 지나고 서산을 거쳐 태안으로 들어 갔다.
안면도에 도착한 것은 8시가 되어서였다.
인성모텔이라는 곳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곱창전골로 식사를 하였다.
돌아오니 9시가 다되었다. 피곤해서 곧 잠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다는 호남평야를 종단한 것이, 그것도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와 지방도를 경유해서 호남평야의 넓은 들을 잘보며 지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다.
한편 방향이나마 지평선이 보이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호남평야를 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8월 11일
7시 20분경에 여관을 나가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안면도 남쪽으로 향했다.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안면도는 조선왕조시대에 왕실에서 쓸 소나무를 공급한 곳이라 송림이 잘 가꾸어진 곳이다.
아산공원이라는 이름에서 정주영회장이 휴양림을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송림과 각종 나무가 우거진 숲, 산책로, 식물원과 연못 등이 잘 어우러진 곳이나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좀 흠이었다.
좋은 공기를 호흡하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심신이 편안해졌다.
휴양림을 나와 꽂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꽃 박람회가 개최된 곳이다.
해수욕장의 남단으로 갔다. 태풍이 지나간다고 해서인지 해수욕장은 한산하다.
그러나, 충남 서해안은 태풍의 경로에서 벗어나 있어 구름만 끼어 있어 덥지도 않은 좋은 날씨였다.
개펄에서 홍합도 잡고 돌굴을 깨 먹기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물웅덩이에는 소라게 등 각종 생물들이 우글대고 있었다. 개펄의 생태계는 풍요롭다.
개펄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1시 반이 넘어 영목항으로 출발했다. 영목항에서 유람선을 탔다.
안면도와 육지 사이에 들어와 있는 천수만 입구를 관광하였다.
원산도 효자도 등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가 눈에 들어 온다.
또, 양식을 하는 시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보령화력발전소의 굴뚝이 바로 앞에서 보인다.
멀리 대천항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넓은 평야지대와 나지막한 언덕들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이 된다.
1시간 10분 가량 유람선을 탄 후 다시 항구에 돌아와서 해물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4시경 서해대교를 건너고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원주로 나와 국도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태풍경보로 관광객이 거의 없는 안면도 곶지 해수욕장 개펄에서
춘천 새술막 막국수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와서 인원이 부부와 헤어졌다.
2박 3일의 여행이 끝났다.
7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었지만 증도 개펄의 풍요로운 생태계와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 유적지를 보았고,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신안에서 인양된 무역선과 그 배에 실려 있었던 도자기들을 보았다.
또, 넓은 호남평야를 종단하였고, 백제의 한이 서린 낙화암과 백마강을 관광하였다.
안면도에서 잘 가꾸어진 송림을 보았고 휴양림에서 심신이 편했다.
또, 꽂지 해수욕장 개펄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영목항에서 배를 타고 천수만과 그 남쪽에 펼쳐진 섬들과 육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좋와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여행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나에게 이번 여행은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기회가 되었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역사문화 탐방기(1) 부산항 - 일본 후꾸오까 (0) | 2015.01.21 |
---|---|
금강산을 다녀 와서(2003년 1월) (0) | 2014.02.06 |
청연서당의 학인들과 함께 한 강화도 여행 (0) | 2014.01.25 |
오랫만에 본 토종닭(연변 백두산 여행 중) (0) | 2013.12.23 |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0) | 2013.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