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지만 농토가 없었고 선친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어려서 농사일을 하지 않고 컸다.
농고에 병설된 중학교를 다닌 관계로 삽질도 하고, 호미로 김도 매고, 퇴비도 베고, 모내기도 하고, 벼베기도 하며 농사일을 조금은 배웠다.
큰댁에서 모내기를 할 때와 벼베기를 할 때 큰댁에 가서 농사 일을 도운 적은 있지만 춘천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에는 농사일과 멀어졌다.
고등학교에 온 후부터는 공부를 합네 하고 전혀 농사일은 하지를 않았고, 교직에 들어 온 후에도 농사 일을 하지 않고 지냈다.
어머니는 무척 부지런한 분이라 집 주위의 공터를 이곳저곳 일구어 채소를 가꾸셨지만 농사일을 거든 일이 없었다.
농촌에서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초등학교때부터 서울에서 산 아내가 어머니를 도와서 농사일의 조수를 하는 동안 어느덧 씨뿌리고 가꾸는 농사짓는 기본 기술을 익혔다.
'94년 어머니가 더 사실 수도 있는 연세에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가꾸시던 땅은 아내가 이어 받게 되었다.
나는 할 수없이 아내의 강요에 의해 투덜대며 농사일의 마무리 작업을 거들어야 했다.
어머니가 벌려 놓으셨던 농사를 억지로 마무리하고 아내가 더 이상 밭을 가꾸지 않으리라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었다.
시어머니를 이어 받아 어머니가 일구어 놓으신 밭을 계속 가꾸었다.
공터에 집을 짓게 되어 밭이 없어지게 되자 다시 우리 집 근처의 공터를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나는 아내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삽으로 공터를 파서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춘천에서 만기가 되어 양구에 가 있는 동안 마지막 2년에는 학교 텃밭을 조금 분양 받아 콩, 팥, 옥수수, 호박, 배추 등을 심었는 데
농사꾼이 보면 소꿉장난 같은 수준이고 실수한 것을 그분들이 아신다면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실 것이다.
앞으로 농작물을 가꾸며 실수한 것들을 연재하려고 한다.
오늘은 지렁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최근의 일을 쓰려고 한다.
밭작물을 가꾸는 데 농약을 쓰지 않아야 하지만, 영농 기술이 부족하고 유기농업에 대한 이해하 부족한 우리는 부득이 농약을 사용한다.
고추와 배추, 무, 파, 마늘 등에 농약을 사용하고 감자, 옥수수, 콩, 들깨 등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농약을 사용하는 작물의 경우도 농약을 치는 횟수가 다른분들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어쨌든 사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옥수수를 수확한 밭을 다시 일구고 당파와 배추를 심기로 하였다.
부득이 밑거름용 비료와 더불어 토양살충제를 주었다.
그리고 3일쯤 지난 후 고추를 돌보러 왔더니 배추와 당파를 심은 밭의 고랑에 지렁이들이 기어나와 떼죽음을 하였다.
지렁이들의 사체 위에는 쉬파리들이 날아 다니고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을 때 농약을 주지 않은 것이 많은 지렁이들이 번식하게 된 것이다.
순간 아내와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지렁아 미안하다." 이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밭을 팔 때 지렁이가 나오면 농약을 뿌리지 않을 곳으로 옮겨 주기는 하지만 모두를 옮기지는 못한 것이 대량 살상을 초래하였다.
고추에 농약을 줄 때 한번은 청개구리가 농약을 뒤집어 썼다.
청개구리와 숨박꼭질을 하여 가면서 청개구리를 잡아다가 물에 씼어서 놓아주었는 데 그 청개구리의 운명은 알 수 없다.
땅이 병들고, 그래서 수확을 하려고 농약을 치고, 농약을 쳐서 땅은 다시 병들고 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3년 고비만 넘기면 농약을 안쳐도 되는 건강한 땅이 된다는데.
농업은 생명산업이고, 하나님이 복주신 산업이다.
얼마전 작고하신 이오덕선생은 농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지금 농업이 가장 하대받는 산업이 되었고, 농민은 저소득과 빚에 시달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농사일을 외면하고 농촌은 이농현상으로 촌락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농촌이 가장 살고 싶은 곳, 매력이 있는 곳이 될까?
다시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곳이 될까?
2003. 9. 3 박철목사님의 느릿느릿 사이트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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