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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사꾼의 농사 이야기

서리 오기 전에 바쁜 호박 넝쿨

 

나는 호박을 심고 가꾸는 것을 좋와한다.

호박을 심기 전에 구덩이를 파고 밑거름을 한번만 주면 다시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고

농약을 주지 않아도 되니 농사의 초보자도 가꾸기가 쉽다.

그보다 가느다란 풀줄기에서 커다란 호박이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호박이 가꾸기가 쉽다고 해서 심어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호박은 대개 울타리나 언덕진 땅에 심게 되는 데, 언덕진 땅에 심는 경우 잡초와 경쟁을 하게 된다.

잡초가 너무 성하여 호박덩쿨을 압도하게 되면 잡초를 제거하여 주어야 한다.

또, 초기 생육상태가 나쁘면 비료를 조금 줄 필요도 있다.

서리 오기 전까지 두어 늙힐 호박과 애호박으로 따먹어야 할 것을 잘 결정하여 생육 초기에 열린 호박은 늙도록 둔다.

그렇지만 애호박으로 먹을 것은 적당한 크기가 되면 계속 따주어야 한다.

풀 속에 숨어서 눈에 띄지 않는 호박은 발견되었을 때 애호박으로 따기에는 너무 커서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서리 오기 전까지 늙힐 수가 있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푸르딩딩하고 덩치만 크지 쓸모가 없다.

일단 호박이 크기 시작하면 그 덩쿨에서 다른 호박이 열리지를 않는다.

따라서 애호박을 먹으려면 계속해서 따주어야 한다.

 

호박을 늙히는 것도 기술이다.

10여년전 처음 호박을 처음 재배할 때의 일이다.

호박이 다 늙기도 전에 꼭지가 말라 떨어지며 더 이상 숙성이 안되었다.

농사꾼들이 심은 호박은 누렇게 늙어 가는 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호박을 심기 전에 밑거름을 충분히 주어야 하는 것을 일반 농작물의 모종을 심듯햇으니 거름 부족으로 성숙이 되지 않은 것이다. 

호박에는 인분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인분을 쓰기는 어렵고 차선으로 소똥이 좋다고 하는 데 이를 구하는 것도 번거롭고

퇴비를 사다가 듬뿍 넣고 호박을 심으니 늙은 호박을 생산할 수 있었다.

 

2005년 광판중학교에 있을 때였다.

학교 옆에 폐가가 있어 그집 울타리에 호박을 심었는 데 덩쿨이 뻗어 울타리를 넘어 지붕으로 올라갔다.

애호박을 따려 해도 호박이 보이지를 않는다.

덩쿨만 무성하니 열매가 맺지 않나보다 하고 호박 따는 것을 포기했다.

추석 무렵 2층 과학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폐가 지붕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이만한 호박이 지붕위에서 늙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호박은 가을과 더불어 늙어 갔고 서리 오기 전에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가 누런 호박을 수확하였다.

무려 8kg이 넘는 큰 호박이었다.

내가 생산한 호박 중 가장 큰 것이다.

그 호박을 키우느라 덩쿨은 다른 호박을 맺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는 호박에 기생하는 과일파리라는 것이 극성을 부려 많은 호박에 벌레가 들어 낭패를 보기도 했다.

금년에는 지난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서 그런지 과일파리는 극성을 부리지 않았다.

 

올해도 학교와 수동리 내땅에 호박구덩이를 파고 한포기에 500원하는 호박을 심었다.

수동리와 학교에 판 호박 구덩이는 15개쯤 되었다.

방학 전 조생종 호박 몇개를 수확하고 호박을 거의 수확할 수 없었다.

8월부터 추석때까지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니 벌들이 활동을 못해 수분이 되지 않고 님을 못본 암꽃은 열매를 키우지 못하고 떨어졌다.

추석 무렵부터 호박이 달리기 시작했다.

추석 전에 애호박 한개에 4천원을 했는 데 추석 연휴로 집에 가기 전 서석에서 7개의 애호박을 땄다.

추석 다음날 수동리에서는 11개의 호박을 수확했다.

그뒤 지금까지 매주 평균 10개 정도의 호박을 수확했다.

늙은 호박은 몇개 못땄지마 대신 어느 해보다 많은 애호박을 수확했는 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처음 호박이 달릴 때 비가 와서 수분이 되지 않아 호박을 열지 못한 덩쿨이 비가 그치자 암꽃이 수분이 되며

열리기 시작했다.

계속 따주니 축적된 양분은 호박덩쿨로 하여금 계속 호박을 달리게 했다.

호박 덩쿨도 어느해보다 무성했다.

비가 계속 내리면서 덩쿨만 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해보다도 많은 양의 호박잎을 수확했다.

호박잎을 쪄서 된장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또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웰빙 식품이다.

학교에서 열리는 호박과 호박잎은 동료들에게 선심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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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서리가 내리게 된다.

황혼기에 접어든 호박들은 무척 바빠졌다.

수많은 암꽃을 피우고 벌들의 도움을 받아 수분시키고 열매를 키우고 있다.

하나라도 더 자손을 남기고 세상을 뜨려는 호박덩쿨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어제와 오를 학교에 심은 호박에서 한푸대의 호박잎과 10개가 넘는 호박을 땄다.

내일 수동리 농장에 가면 또 10개가 넘는 호박을 딸 수 있을 것이다.

예년보다 서리가 늦게 내리는 덕에 많은 호박을 수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10개 정도를 수확하면 올해의 호박 농사는 끝나게 된다.

늙은 호박의 생산은 줄었지만 애호박은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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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가꾸며 몇가지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선 심은 것이 없으면 거둘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호박을 심고 덩쿨이 뻗는 곳의 잡초를 제거하는 수고를 했기 때문에 호박을 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된서리를 앞두고도 끝까지 열매 맺기에 힘쓰는 호박의 모습이다.

비록 내일 모레 덩쿨이 얼어 생을 마감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숙연함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도 위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생도 이제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서리를 앞둔 호박이 마지막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우듯

우리의 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호박을 기르며 깨달은 평범한 삶의 진리다.

 

2010. 10. 22 춘천고 40회 동창회 카페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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