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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온 글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인제대 강혜숙 박사의 글)

 

아래의 글은 인제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포스트닥)과정을 하고 있는 강혜숙박사의 글인데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어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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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 두 번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며칠 전에도 그런 날이었다. 굳이 잠들려고 애쓰는 것이 더 힘들 것 같아 평소에 못 보던 성경도 보고 기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몇 가지 기도를 하고 나니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작년 이맘때쯤 전도서를 보며 공감하고는 전도서 3장의 내용을 내 미니홈피에도 올렸던 기억이 있어 다시 전도서를 펼쳤다. 전도서는 '헛되다'로 시작하는 허무주의 책 같아 예전엔 거부감이 컸었다. 그런데 삶의 경륜이 쌓이다 보니 구구 절절이 옳은 말인 것이다. 참고로 내 나이는 꺾어진 칠순이다.^^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면서 아이들 교재가 '새번역'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새번역으로 자주 읽게 된다. 특히 전도서는 새번역으로 읽으면 더 와 닿는다. 사람 맘을 꿰뚫어 보는 듯도 하고 말장난을 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꼭 개그 프로그램 시나리오를 보는 것 같다. 그날 내가 느꼈던 것을 몇 가지 적어보았다.

1:13    하늘 아래에서 되어지는 온갖 일을 살펴서 알아 내려고 지혜를 짜며 심혈을 기울였다. 괴로웠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이런 수고로운 일에다 얽어매어 꼼짝도 못하게 하시는 것인가?

솔로몬 왕도 지혜를 짜내느라 괴로웠구나.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

아는 게 병이다.

2:24    사람에게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하는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

3:12~13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3:22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올해의 말씀으로 정하기로 했다. 지난 2년간 해양대에서 근무하면서 별로 보람도 없었고 불평만 가득했었다.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것 외에 별 볼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인제대로 오게 되었다. 나는 지금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명 포닥 (post-doctor의 준말)이라고 박사 후 연구원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난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계약서 한 장 없는 구두계약 임시직이다. 월급도 늘었다 줄었다 하고 제때 안나오기도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요즘 이 일이 재미가 있다. 내 전공을 이곳에서 필요로 하고 있고, 대학원생들에게 실험을 가르치면서 보람도 느낀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도 있다. 그래서 몸은 좀 힘들지만 이 교수님을 만난 것이 감사하다. 젊은 교수님이라 말도 통하고 나와 코드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전도서의 이 구절들은 한번씩 밀려드는 '신분의 불안정'에 대한 염려들을 버리게 만든다. 문제는 그 효과가 그리 길지 않다는 데 있다. 하긴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만나도 유효기간이 하루, 길어야 이틀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성경은 매일 읽어야 효과가 있다.


4:9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4:11~12    또 둘이 누우면 따뜻하지만, 혼자라면 어찌 따뜻하겠는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11절 말씀을 내가 20대 때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노총각 형제에게서 처음 들었는데, 자기는 꼭 결혼을 할 거라면서 이 말씀을 들먹였다. 그땐 그 형제가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색을 밝히는 아저씨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이젠 공감이 된다. 둘이 누우면 따뜻하다 못해 덥다 그리고 땀도 난다.^^ 얼마 전 부부싸움을 하고는 수요예배에 빠진 적이 있었다. 예물을 드리기 전 형제와 화해하라고 했는데 아직 화해를 못한데다가 좀 피곤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 전에 공부했다는 '결혼 예비학교' 교재를 뒤적이다 그 책에 씌어진 잠언 말씀을 보고는 머리를 한대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잠언 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지만, 소가 힘을 쓰면 소출이 많아진다.

이 말씀에 남편과 화해할 맘을 먹게 됐다. 남편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마다 내가 혼자 살 때는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남편이 있음으로 해서 얻는 유익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 말씀을 떠올리며 감사하려 노력하게 됐다. 전도서에서도 둘이 있으므로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익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5:7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오직 너는,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고 살아라.

어딜 가나 말에 대한 교훈이 빠지질 않는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라 항상 이런 말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찔리기도 한다. 아무튼 입 밖으로든 맘속으로든 하나님이 내 중심을 보시니 두려울 밖에……. 그러나 평소엔 겁 없이 산다. 건망증이 그럴 땐 참으로 편리하기도 하다.

5:18~20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그렇다. 요즘 내 모토는 ‘오늘 행복하게 살자.’ 이다.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다. 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덧없는 것에 왜 이리 힘들게 몸과 마음이 아파가며 살아야하나? 분명 성경 여러 곳에서 답을 해주고 있다. 사람으로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고. 그렇지만 주어진 일 기쁘게 하며 사는 것이 수고로 얻는 몫이라고. 오늘 아웅다웅 산들 어리석은 부자에게 하나님이 네 영을 오늘밤 거두어가면 네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느냐? 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일인 것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산다. 그래, 크게 마음 쓰지 말자. 크게 마음 쓰면 얻는 것은 화병뿐이다.

6:3~5    사람이 자녀를 백 명이나 낳고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자. 그가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재산으로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고, 죽은 다음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한다면, 차라리 태어날 때에 죽어서 나온 아이가 그 사람보다 더 낫다. 태어날 때에 죽어서 나온 아이는, 뜻없이 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그 속에서 영영 잊혀진다. 세상을 보지도 못하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사람보다 더 편하게 안식을 누리지 않는가!

난 아직 자녀가 없어서 성경에 자식 이야기가 나오면 참 맘이 복잡하다. 태의 상급이고 장사의 수중에 화살이라는데……. 그러나 이 말씀은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몇 년 전 내 뱃속에서 죽은 생명이나 동생이 낳았던 죽은 아이가 자녀를 백 명이나 낳고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보다 더 편하게 안식을 누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7:21    남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사람들은 절대 어떤 사람을 칭찬만 하지 않는다. 칭찬을 하면 꼭 흉을 하나 이상 본다.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일까? 자신은 그 사람의 장단점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남의 약점을 들춰내서 자기를 높이기 위함일까?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 사실은 경계해야할 요주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뒤에서는 다르게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 앞에서 싫은 소리를 대놓고 하는 사람이 더 정직하다. 그리고 뒤에서 아주 가끔이라도 내 칭찬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이 좋은 말을 하든지 싫은 소릴 하든지 마음 쓰지 말자. 그것은 깨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착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비추어보자.

7:22    너 또한 남을 욕한 일이 많다는 것을 너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정말 뜨끔한 말이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8:2    나는 권한다.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라.
8:5    왕의 명령을 지키는 이는 안전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를 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상전에게 복종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한 10년 전쯤에는 이런 말이 싫었다. ‘상전이 상전다워야 상전이지.’ 이런 생각이 강했다. 요즘엔 ‘상전 같지 않아도 상전은 상전이다.’라고 느껴진다.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시지 않았는가.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한다. 윗사람 말을 잘 듣자.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다음 말씀으로 또 위로해 주셨다.

8:6    우리가 비록 장래 일을 몰라서 크게 고통을 당한다 해도, 모든 일에는 알맞은 때가 있고 알맞은 방법이 있다.

어쩜 내 맘을 그리도 잘 적어놨을까? 난 정말 지금 내가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때때로 우울하다. 어떤 길도 명쾌하지 않게 느껴지니 말이다. 하나님은 알맞은 때, 알맞은 방법으로 날 인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 불신앙이 문제다. 이런 위로의 말씀들은 어쩌면 그리도 잘 잊혀지고 믿어지지가 않는지. 조금만 힘들어지면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대들던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조금 상황이 나으면 행복해 하다가 조금만 힘들면 다시 불평하고, 하나님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대들기 일쑤다. 언제쯤 이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평안하냐?” 라는 주님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텐데.

9:4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과 일치한다. 여전히 세상은 산자들의 세상이어서 일까? 죽은 자가 편한 안식을 누린다며 위로하더니만 이젠 그래도 사는 게 낫다고 말한다. 그래, 정말 작은 희망이더라도 그 한 줄기 희망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것 같다. 내 이력은 꿰어지지 않은 구슬 같은 느낌이다. 언젠가 잘 꿰어져서 목걸이가 되든지 반지가 되든지 작품이 되는 때가 있겠지.

9:9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솔로몬은 많은 첩을 거느리고 세상에서 안 해 본 일이 없다더니, 사람이 가장 잘 다스려야 할 것은 아무래도 정욕인가보다. 잠언에서는 반복해서 음녀의 호리는 말을 조심하고 아내의 품을 만족하라고 나온다면 전도서에는 아내의 품이 세상에서 수고한 대가라고 말한다. 여러 번 말한 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일 것이다. 잠언에서는 하지 말라는 교훈이라면 전도서는 내게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말해주는 것 같다. 혼자였다면 받을 수 없는 몫이고, 이해하지 못할 말씀일 것이다.

9:10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

놀고먹는 것보다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훨씬 낫다고 나도 생각한다. 몇 년간 뼈저리게 느낀바 있다. 성경도 여러 곳에서 열심히 진심으로 일하라고 말한다. 골로새서의 말씀이 떠오른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골 3:23)’

10:1    향수에 빠져 죽은 파리가 향수에서 악취가 나게 하듯이, 변변치 않은 적은 일 하나가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

처음엔 향수처럼 향기롭고 달콤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 되면 이를 갈고 돌아서서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정치인들만 봐도 사람들에게 칭찬받다가 어떤 일로 명예가 실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 발단이 돼서 그렇게 만든다. 열 가지 잘하다 하나 못하면 그 하나 때문에 '그럼 그렇지' 하는 평을 받게 되고, 열 가지 못하다 나중에 하나 잘 하면 그 사람 철들었다 내지는 사람 됐다고 말한다. 나는 전자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향수를 없애든지 파리를 때려잡든지 해야겠다. 어떤 쪽이 더 좋을까?

10:19    잔치는 기뻐하려고 벌이는 것이다.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 하고,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

아마도 예전에도 잔치 때 싸우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잔치는 기뻐하라고 벌이는데 꼭 술 마시고는 싸우거나 우는 등 분위기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잔치를 벌일 때 정말 기쁜 맘으로 해야겠다. 요즘은 돌이나 칠순 잔치 같은 것도 보면 정말 기쁨으로 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돈은 좋은 하인이자 나쁜 주인이라는 말이 있다. 돈을 하인으로 두면 만사를 잘 처리할 것 같다. 말 잘 듣는 하인이 있어서 대접해 줬더니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려고 한다면 그 하인을 매우 치고 내쫓아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 하인에게 휘둘려 끌려 다니고 있다. 주인인지 하인인지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10:20    마음 속으로라도 왕을 욕하지 말며, 잠자리에서라도 존귀한 이를 저주하지 말아라. 하늘을 나는 새가 네 말을 옮기고, 날짐승이 네 소리를 전할 것이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성경은 우리 속담과 비슷한 말이 참 많다. 또 말에 대한 교훈이다. 무섭다. 언제쯤 말함에 있어서 실수가 없을까.

11:1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

개역한글판에는 ‘네 떡을 물위에 던지라’고 쓰여 있다. 이해가 안됐는데 이렇게 풀어놓으니 쏙 들어온다. 성경엔 경제학도 들어있다더니 정말이다.

11:2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주식투자의 금언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의 원조가 솔로몬인가보다. 여긴 더 구체적으로 일곱이나 여덟으로 나누라고 말한다.

11:10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혈기왕성한 청춘은 덧없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가끔 나이가 들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한해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긴 성장이 멈춘 이후로는 노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늙어가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혈기가 남아있으니 난 아직 청춘인 것 또한 사실인가보다. 걱정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너무 걱정이 없을 때면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걱정을 사서 한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는데 보통으로 치면 나도 인생의 반이 지났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걱정하며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맘 편하게 지내보자. 오늘 실컷 고생하고 언제 어느 오늘에 편하게 쉴 수 있단 말인가? 우리네 인생이 오늘을 살지 내일을 사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12:13~14    할 말은 다 하였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

역시 지혜의 왕답게 결론이 멋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지금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을까? 너무 하나님을 너그러운 아버지로만 생각하진 않는지 돌아봐야겠다. 경외라는 말을 잘 묵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솔로몬의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권세, 명예, 돈, 학식에 지혜까지 골고루 다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전도서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헛되지만 해야 할 것을 마지막에 꼭 짚어줬다. 어쩜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첩들을 기쁘게 하기위해 첩들이 가져온 모든 신들을 허용했는지 모른다. 아마 그가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기는 하지 못한 것을 하라고 일러줬으니 그 아들이 하나님을 잘 섬길 리가 없다. 솔로몬에게서 얻는 타산지석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는 하라고 말한다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부모가 되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인 것 같다. 자식은 나를 따라 할 테니 말이다. 내가 느낀 바를 아무리 잘 일러준다고 해도 내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은 내 아이도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결단하지 않은 이상…….

그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성경을 읽고 묵상한 것이 결국 동틀 무렵까지 지속됐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구절이 마음에 와 닿는다. 같은 구절을 보고도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다. 언젠가 또 다시 전도서를 펼치게 될 때가 있겠지? 그때는 어떤 말씀으로 위로와 기쁨을 주실지 기대된다. 잠이 안 오는 것이 짜증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다.

 

2007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