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이는 내가 2년 동안 다녔던 양구 광덕초등학교(현재 폐교됨) 동기로 3, 4학년을 같이 다녔다.
내가 5학년 때 10리쯤 떨어진 원당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그후에도 가끔씩 한길이네 집에 놀러가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한길이는 김화로 전학을 가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한길이가 전학을 간 후에도 가끔씩 편지를 주고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에 낙방을 한 후 재수라는 것을 하고 있을 때 서울에 가서 출판사에 다니던 한길이를 7년만에 만났다.
그후 얼마 안되어 한길이는 군에 입대하였고, 나는 대학을 다녔다.
내가 교사 발령을 받은 후 한길이 소식이 궁금하여 김화 집으로 편지를 했더니 한길이 여동생이 답장을 보냈다.
오빠가 서울에서 신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나는 방학때 서울에 가서 몇년만에 한길이를 만났다.
그후 한길이는 목사가 되어 서울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나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재작년에 퇴직했지만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기도 하는 가장 오래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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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에서 4학년에 올라갈 때로 기억된다.
한길이에게는 한참 위인 형과 세학년(나이로는 5-6세 위)이 위인 누나가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둘인가 있었다.
한길이 누나의 이름은 옥녀였는 데 반에서 1등을 하였고 부반장을 맡는 등 활동적이고 똑똑했다.
당시는 2-3월이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는 시기였다.
어느 날 한길이네 집에 놀러갔었다. 방안에는 한길이 아버지와 한길이 누나 그리고 한길이가 있었다.
누나는 아버지에게 중학교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안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누나는 양구중학교가 안되면 학비가 적게 드는 성애중학교(고등공민학교)도 가게 해달라고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길로 12km 정도가 되었고 지름길로는 8km 정도가 되었다.
누나는 걸어서 다니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성애중학교도 안된다고 거절하였다.
누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서든 중학교에 가도록 해달라고 애원을 했고
아버지는 줄담배를 피워가며 안된다고 강하게 거절하였다.
그때 나는 보았다. 누나의 눈에서는 쉬임없이 눈물이 흘러 떨어지고 있는 것을....
결국 누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말았다.
몇년후 누나는 야촌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제대군인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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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말 당시 시골에서 중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반의 반도 못되었다.
초등하교 졸업식 때는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졸업생들과 더불어 "가사에 종사하는.... " 이라는 언급이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여학생들은 소리를 내어 울었다.
졸업식장은 울음바다였다.
그런데 불과 3년 후배인 우리가 졸업을 할 때는 우는 애들은 거의 없었다.
우리 초등학교 동기들도 남학생를은 2/3 이상이 중학교나 고등공민학교라도 진학을 했지만
여학생들은 8명 중 2명만 중학교에 진학을 했고 그중 한명은 도중에 학교를 중퇴하였다.
그후 교직에 입문하던 '70년대 중반 시골 중학교 진학률은 80%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일부가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고등공민학교나 재건학교 등으로 진학을 했는 데 이 비율까지 합하면 거의 대부분이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80년대가 되면서 부터는 초등학교 졸업생 거의가 중학교에 진학을 했고, 중학교 졸업생들도 거의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대부분이 중등교육 이상의 교육기회를 갖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 중 부적응으로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녀석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70-'80년대에 시골의 경우 해마다 학급당 평균 1-2명 정도는 중도 탈락을 했다.
대부분의 이유는 가정빈곤으로 인한 학습의욕 상실이나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어서인데 담임교사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내가 담임한 제자들 중에도 중퇴자들이 나왔다.
집에까지 찾아가서 부모님을 만나기도 하고, 당사자를 설득하기도 했지만 상담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자퇴를 막지는 못했다.
그후에도 학교를 중퇴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친구 누님의 생각이 났다.
그렇게 중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못가게 되어 눈물을 흘리던 누님의 생각이.....
어떤 사람은 그렇게 가고 싶어도 못가는 학교를 다니기 싫다고 떠나는 것과 너무나 대조가 되었다.
이제 친구 누님도 칠순이 되어 간다.
아마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었을 것이다.
20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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