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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단상

성황당 나무, 권력이동

앞에서도 소개한 바와 같이 고인돌 마을은 서른 집 정도가 사는 양구읍에서 남면 용하리를 거쳐 동면 임당리로 올라가는 도로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이고 엉성한 나무 울타리로 집의 경계만 표시하고 살다보니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개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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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황당 나무 밑에서 용변을 본 천래

 

고인돌 마을에서는 늦가을에 일년에 한번씩 고사를 지냈다.

우리가 학교에 등교한 시간에 고사를 지내는 관계로 고사지내는 것을 본 일은 없다.

동네 고사를 지낼 때는 돼지를 잡았는 데 이때 돼지고기를 나누어 팔았다.

(돼지 머리는 고사에 제물로 썼을 것이다)

 

동네 고사 지내는 날은 일년에 몇번 안되는 돼지고기 먹는 날이었다.

돼지고기도 지금처럼 삼겹살로 구워먹는다거나 편육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김치찌개로 해서 먹는 것이지만

설과 추석을 포함해 일년에 다섯번 맛보기 힘든 별미를 먹는 날이라 즐거운 날이었다.

이렇게 돼지고기를 먹고 나면 예외없이 설사를 했고...

어른들은 '돼지고기는 잘먹어야 본전'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학교로 넘어가는 지름길은 작은 야산을 넘어가는 길이었다.

이 길은 잘 사용하지 않는 길이지만 가끔 학교에서 집으로 올 때 이용을 했다.

가을에 지름길로 오다보면 무밭에서 무를 뽑아먹을 수가 있었고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따서 구워먹을 수가 있었다.

서리가 내릴 무렵에는 콩을 야적해 놓은 콩더미에서 콩단을 뽑아다가 쑥대와 같이 불을 태워

콩을 구워먹기도 했다.

그때 고소한 콩맛은 지금도 입에 기억이 된다.

 

우리 마을에 6학년 동급생이라고는 상옥이와 나 둘뿐이었고

우리 마을을 지나 학교를 가야 하는 후곡리 약수터에 도영(도영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임.

현재 인천거주)이를 비롯한 세명의 동급생이 있어 모두 여섯명이 몰려서 다녔다.

 

그중에 나와 같이 고인돌 마을에 사는 상옥이가 골목대장이었다.

약수터에 사는 네 친구들 중 천래라는 녀석은 상옥이의 비서격으로 상옥이 옆에 붙어 다녔다.

녀석의 집은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했는 데 가끔 건빵이나 과자 등을 가져다가 상옥이에게만 주었다.

 

천래는 아주 단순한 녀석이었다.

약수터에서 약수를 잘 먹는다고 하니 맥주잔으로 다섯잔을 마시기도 하고

(우리는 잘해야 두잔 반을 마셨다)

또 친구들이 추켜 주니까 간장을 한사발이나  들이킨 일도 있다고 한다.

 

한번은 학교에서 야산을 넘어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천래 녀석이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하더니 마을에서 고사를 지내는 문창호지를 묶어 놓은 성황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성황나무 밑에서 용변을 보면 동티가 난다고 말렸지만 천래 녀석은 괜챦다고 하면서

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이었다.

천래는 나무에 동여놓은 창호지를 뽑아내더니 그것으로 밑을 닦았다.

우리는 크게 놀랐지만 녀석은 씩 웃으며 "괜챦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크게 염려를 했지만 녀셕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자 성황나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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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권 교체

상옥이는 우리 여섯명의 리더였지만 신망받는 리더는 못되었던 것 같다.

나이가 또래들 중 가장 많고 덩치가 있고 해서 리더가 되었지만 군림을 하는 리더였고 베푸는 형은 아니었다.

특히 재웅이는 상옥이에게 찍혀서 많은 억압을 받았다.

나는 한동네에 살고, 아버지가 선생님이라는 빽(?)으로 상옥이에게 물리적인 억압을 당하지는 않았다.

 

후곡리에 사는 네명 중 상옥이에게 가끔 뇌물로 고이는(?) 천래를 제외한 세명은 상옥이와 관계가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6학년 2학기때 낙연이가 전학을 왔다.

낙연이는 우리보다 일년 위였는 데 가정사정이 복잡해서 다른 곳에 전학을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1년을 묵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다시 전학을 왔다고 했다.

낙연이는 약수터가 있는 후곡리에서 살았다.

낙연이는 상옥이보다 위라 낙연이가 오자 상옥이는 꼬리를 팍 내릴 수밖에 없었다.

후곡리 애들 네명은 자연히 낙연이와 어울렸고

나도 후곡리 애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어 상옥이는 외톨이가 되었다.

 

상옥이에게 눌려지내던 재웅이나는 낙연이가 오자 노골적으로 상옥이에게 대들고 반발했다.

상옥이는 졸업한 후 외진곳에서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했다.

그러나 당장은 낙연이가 뒤에서 버티나 어쩌지를 못했다.

 

평소 신망을 얻지 못했던 상옥이는 외톨이가 되었고

같은 마을에 사는 나조차 그와는 상대적으로 멀어졌고 가끔 천래가 낙연이와 상옥이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상옥이와 어울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와 도영이는 양구 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시험에 떨어진 두명은 성애 고등공민학교로 갔고

상옥이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농사일을 돕게 되었다.

 

지금 일곱명중 마을에 남은 것은 상옥이 뿐이다.

상옥이는 초등학교 기능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몇년 전 정년퇴임했는 데

도영이와 더불어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 어릴 적 친구다.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은 늙어 가고....

 

 200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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