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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이야기

다섯살 셋째 손녀의 남친 두둔하기

셋째 손녀 호은이는 다섯살이다.

태중에 있을 때 태어날 날이 아직도 한참 남았는 데 세상 구경을 빨리 하고 싶다고 서둘러서 며느리는 조산을

방지하기 위해 두달 가까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위의 두 언니는 우리집에 와있게 되었다.

아직 엄마가 절대로 필요한 둘째인 래은이는 17개월밖에 되지 않았는 데 억지로 엄마를 떨어져서 우리집에 와서 지내야 했다.

낮에는 할머니와 언니와 같이 잘놀았지만 밤에는 엄마를 찾느라 많이 보챘다.

큰 손녀는 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언니답게 의젓하여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였다.

외지에서 근무하다가 주말에 집에 오면 매일같이 나에게 책을 읽어 달라거나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하였다.

둘 모두 할머니와 출가하지 않은 고모들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엄마만은 못하였을 것이다.

 

며느리는 두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출산후에도 한달 이상을 산후 조리를 하느라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어쩌다가 서울에 올라온 아이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얼굴만 볼 뿐 놀아줄 수도 없었다.

100일 이상을 우리집에 머물던 두 손녀들은 엄마의 산후 조리가 끝나자 서울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떠나고 보니 집안이 허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의 염려와 기도 속에서 태어난 셋째는 출생 후에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에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병원인 아산병원의 이웃에 살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성장함에 따라 호은이의 건강은 좋와졌고 정상적인 다른 아이들처럼 잘자라 주었다.

두 언니들의 영향인지 인지발달도 빠른 편이어서 집안 식구들은 안심하였다.

또 두 언니들과 경쟁을 하며 자라서인지 말도 빨리 배우고 눈치도 빠르고 의사 표현도 분명하였다.

 

돌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의 집에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아버지가 왔다고 셋이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왔다.

평소 아이들을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해주거나 책을 읽어 주어서인지 첫째와 둘째는 책을 들고 나에게 왔다.

셋째인 호은이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 잘 걷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언니들이 하는 것을 보고 책 한권을 집고 기어서 나에게 오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세 아이들 중 어느 아이가 가져온 책을 먼저 읽어 주어야 할지 난감하였다.

이 순간이 지금도 무척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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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이는 나이에 따른 발달 단계에 맞게 지혜와 키가 자라고 있으며 집안의 귀염둥이가 되어 있다.

말도 잘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네살 위인 큰언니에게서 공부를 한다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책을 가지고 가서 언니 선생님에게서 배운다고 한다.

호은이가 세살때까지는 엄마와 같이 지냈지만 네살인 작년부터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 안간다고 버티기도 했지만 곧 적응을 하고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지난 추석때 아들 며느리와 손녀들이 다니러 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셋째 때문에 한참 웃었다.

교회를 가야 하는 주일이 되면 호은이는 수혁이를 보러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고 한다.

수혁이는 호은이보다 한살 어린 남자아이다.

집에서 수혁이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며느리가 호은이에게 수혁이는 키가 작다고 했다.

한살 어리니 키가 작을 수밖에. 엄마의 하는 말에 호은이는 누구누구는 수혁이보다 더 작다고 대꾸했다.

며느리가 수혁이는 네살밖에 안된다고 말하자 호은이는 누구누구는 세살이라고 맞받아친다.

수혁이에개 불리한 말을 하면 호은이는 수혁이를 두둔한다.

아내와 나는 셋째 손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었다.

추석날 오후 아들네 식구들이 떠난 후에도 우리 부부는 어린이집의 남자 친구를 두둔하는 호은이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옷곤하였다.

아들 녀석이 유치원에 다니던 여섯살 때 한 여자 아이에게 상당한 기간동안 지속적인 호감을 표현하였고 나중에 커서 장가가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웃었던 일이 있다. 나도 초등학교 1학년때 내 짝이었던 여자 아이가 무척 예쁘고 좋와서 나중에 커서 짝에게 장가가고 싶다고 해서 어른들을 웃겼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는 데 이런 일은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는 모양이다.

 

아이들도 발달단계에 따라 성정체성을 갖게 되고 또래의 이성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단계가 있다.

이 발달 단계를 지나면 이성을 멀리하고 동성끼리 어울려 노는 시기가 있고. 이 단계를 지나면 이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춘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자식들도 이런 발달 단계를 거쳤고, 이제 손녀딸들이 이런 발달 단계를 거치며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 할아버지 할머니인 우리는 늙어 가는 데, 나 늙는 것은 잊어 버린채 손녀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 

 

2013.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