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할머니는 1889년에 태어나셔서 1963년에 돌아가셨다.
16세에 우리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6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할머니는 만년에 막내 아들인 우리집에 오셔 계시다가 돌아가셨는 데 덕분에 나는 할머니로부터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당시의 할머니들로는 드물게 한글을 읽으실 수 있었다.
할머니는 울긋불긋한 표지를 한 얇은 책을 즐겨 읽으셨는 데 나중에 그 책이 육전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전소설을 공부한 후 딱지본이라고 불리운다는 것과 '50년대까지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치원전, 송죽전, 춘향전, 심청전 등을 읽으시고 그 내용을 손자인 나에게 이야기를 하여 주셨다.
그중 춘향전에서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장면이라든가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제갈공명에게 쫒기는 장면 등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할머니가 어렸을 때 이웃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여 주신 것이다.
할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시기 전에 이웃에 고일천이라는 분이 살았다고한다. 고일천이라는 분은 성이 고씨이고 이름은 일천인데 당시 강원도 홍천에서 갑부였다고 한다. 투전으로 재산을 다 날렸는 데 하룻밤에 천냥을 잃었다고 하여 그후 고일천으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고일천이라는 분이 부자였던 시절 며느리를 보았다고 한다.
이 며느리가 할머니에게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여 준 호랑이를 잡은 새댁이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줄 당시 고일천씨의 며느리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었으니 아마 지금부터 150년전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갑부집으로 시집을 온 고일천씨의 며느리는 엄한 시어머니밑에서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하루에 한마리씩 사라지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혐의를 씌웠다고 한다.
강아지를 어디에다가 빼돌리는지 바른대로 대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매일같이 닥달을 당하던 며느리는 마침내 범인이 호랑이라는 것을 알고 호랑이가 들어오는 길목에 덫을 놓았다고 한다.
고씨집에 개를 물러 들어오던 호랑이는 덫에 걸렸고, 덫을 빠져 나가려고 호랑이는 단말마적인 포효를 하였고.
새댁은 남편을 비롯한 머슴 등 집안 남자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나오지 못하고 방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호랑이때문에 시달렸던 고씨댁 며느리는 북받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어서 장작개비를 들고 나가 덫에 걸려 발버둥을 치는 호랑이를 후려 갈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몽둥이질을 당하는 호랑이는 길길이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악에 받힌 새댁은 호랑이를 두들겨 패고.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니 호랑이가 축느러지며 잠잠하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날이 훤하게 새기 시작하였는 데 그때가 되자 남편, 시아버지, 머슴 등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호랑이같은 시어머니도 밖으로 나와서며느리를 보고 "아가야 괜챦냐?'하더라고 하였다.
할머니가 된 고씨댁 며느리는 필자의 할머니를 보고 그래뵈도 내가 호랑이를 잡은 여자라고 자랑을 하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손자인 나에게 하여 주셨고,
나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우리집 애들과 큰댁 조카의 아들들에게 하여 주었다.
호랑이를 잡은 새댁 이아기는 아마 우리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를 거듭하다가 이야기의 원형이 변형되면 호랑이를 잡은 주인공이 고씨댁 며느리가 아닌 우리집안의 윗대 할머니로 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 작성. 2013년 9월 4일 덧붙임.
덧붙임 : 큰 손녀인 하은이가 옛날 이야기를 듣게 되자 나는 하은이에게 할머니에게서 들은 '호랑이를 잡은 새댁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난 여름방학때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제갈량에게 쫒기는 이야기를 해주었는 데 하은이는 아주 흥미있게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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